16대 대선을 100일 앞둔 지난 2002년 9월, 한일 월드컵 이후 급부상한 정몽준 의원이 출마를 결심하면서
대선 구도가 요동쳤다. '정몽준 바람'은 대세론을 앞세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지지율에서 접전을 벌일 만큼 강력했고 정 의원가 노무현 민주당 후보 간의 단일화 여부가 최대 변수가 됐다.
2002년 9월 24일 기사를 보면 당시 '정몽준 바람'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다.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 독자신당의 정몽준 후보를 포함한 다자대결이 벌어질 경우 이회창 31.6, 정몽준 31.4, 노무현 20.6, 권영길 1.5, 이한동 1.0%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
◈ 안철수-정몽준, 공통점은?
안철수-정몽준 두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양당 구도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기대를 업은 대안 후보라는 점이다. 또 진보 진영의 단일화 대상이면서도 출신 성분면에서 보수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재벌가 출신인 정몽준 의원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안철수 교수 또한 의사인 부친 밑에서 대체로 유복하게 자랐다는 평가다.
또 하나,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두 사람 모두 고향이 부산이라는 점도 묘한 우연의 일치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정몽준 바람'에는 근원적인 차이가 있다.
◈ '비정치권' 안철수 VS '정치권' 정몽준
대선 D-100 기획차 지난 7일 서강대 손호철 교수를 인터뷰했다. 관심은 10년 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최대 변수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 교수였다. 특히나 최근의 '안철수 바람'과 당시 '정몽준 바람'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 ▷기자 |
두 사람 모두 제3 후보로 강력한 돌풍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얼핏 같아 보이지만, '정몽준 바람'은 제도 정치권 내의 세력간 이합집산의 성격이 강했던 반면, 이번 '안철수 바람'은 정당 정치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즉 정치적 변화의 정도를 놓고 볼 때 '정몽준 바람'이 제도권 정치에 근거한 물리적 변화였다면 '안철수 바람'은 기존 정당 정치의 틀을 깨는 '화학적 변화'인 셈이다. (다만 그 화학적 변화가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대의민주 체제에서 순기능으로 작용할지 역기능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만큼 판단을 유보하기로 한다.)
◈ 치밀함의 미학
또 하나 차이점은 안철수 교수의 대권 도전 과정이 기존 정치권을 능가할 정도로 치밀하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이 '타이밍 정치'라는 말을 사용할 만큼 그의 행보는 지지율 변동에 따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채택됐다.
물론 그런 행보가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해석하는 주체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나 내부 사정을 알 수 없는 현 시점에서 '계산된 행보'라는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면 10년 전 정몽준 의원은 창당 과정의 인적 구성이나 단일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허점을 드러냈다는 것이 당시 그를 취재했던 사람들의 전언이다.
정몽준 캠프에 참여했던 상당수 인사들은 민주당에서 넘어간 인사들로 '정몽준 대통령 만들기' 그 자체보다 전체 진보 진영의 승리에 더 충실했다는 설명이다. 정몽준이 됐든 노무현이 됐든 이회창을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안철수 캠프측 사람들은 민주당 후보든 안철수 교수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만 이기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선 구도 자체가 10년 전과 달리 '정치권 대 비정치권'의 구도로 짜여진 결과로 읽힌다. 그 만큼 그 쪽 안 교수 캠프의 준비는 치밀하고 정교하다.
대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안철수 교수로 대표되는 '탈 정치' 바람이 올 대선의 답이 될지 두고 다 함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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