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성폭행 피의자, 서진환을 다시 취재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검찰은 현재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수형자들 가운데 DNA법에 적용되는 사람들의 DNA 감식 시료를 하나씩 채취하고 있습니다. 대상자 가운데 85% 정도 했습니다. 법적 근거는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입니다. 2010년 7월 26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인권 침해 논란도 있지만, 이 법 안에는 소급 조항이 규정돼 있습니다. 법 시행 날짜인 2010년 7월 26일 이전부터 수감돼 있는 자도 검사가 교도소에 위탁해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전과자의 인권보다는 공공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DNA 감식시료, 그러니까 혈액이나 타액, 모발, 구강점막의 정보를 국가에 넘겨준 자는 출소한 뒤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금방 꼬리가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 현장에 흘린 머리카락 한 올, 피해 여성의 몸에 남긴 극미량의 체액. 이 DNA 정보를 국과수에 알려주면, 국과수가 보유한 데이터베이스와 일일이 대조해 용의자가 누구인지 쉽게 특정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국과수가 축적해놓은 DNA 정보가 대체 ‘누구의 것’인지, 김 아무개 것인지 이 아무개 것인지, 수사기관이 사전에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용의자가 특정되면, 잡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나 서진환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건 2011년 11월. 검찰은 이미 2010년 9월 공주교도소에서 서진환의 DNA를 채취해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서진환은 2004년 서울 면목동에서 강도강간죄를 저질러 7년형을 선고받았고, DNA법이 시행된 2010년 7월에도 그 형이 집행되고 있었으며, DNA법에는 강도강간죄의 경우 DNA를 채취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법은 “채취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실제 검찰은 법에 망라된 죄목 모두에 해당하는 수형자를 대상으로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자유의 몸이 된 서진환은 2012년 8월 7일 서울 면목동에서 전자발찌를 차고 30대 주부를 성폭행했습니다. 그런데 안 잡혔습니다. 용의자 특정조차 안 됐습니다. 그러고 13일 뒤, 가까운 중곡동에서 다른 평범한 주부가 안타깝게 살해됐습니다. 뭔가 잘못됐습니다.
2012년 8월 7일 성폭행 사건은 서울 중랑경찰서 관할입니다. 경찰은 성폭행 피해 여성으로부터 용의자의 DNA를 신속히 확보했습니다. 이걸 2012년 8월 10일 국과수에 보냈습니다. 20일 뒤(8월 30일) 돌아온 대답은 “일치하는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졸지에 용의자가 붕 뜨는, 오리무중 사건이 됐습니다. 이상합니다. 분명 검찰은, 서진환이 출소하기 전인 2010년 9월 그의 DNA를 채취해 정보를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국과수는 서진환의 DNA 정보를 분석해 놓고도, 그게 서진환의 것인 줄 즉시 알지 못한 겁니다. 경찰이 용의자를 못 찾고 헤매는 사이, 그는 중곡동에서 주부 살인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검찰이 채취한 서진환의 ‘2010년 DNA 정보’는 어디로 갔을까요. 검찰이 그냥 지금까지 잘 갖고 있습니다. 물론 2012년 8월 7일 면목동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는 결국 서진환으로 드러났지만, 이건 검찰이 갖고 있던 DNA 정보 덕분이 아닙니다. 그가 경찰에 검거됐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13일 뒤 벌어진 중곡동 주부 살해 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뒤 국과수에 (1)검거한 서진환으로부터 채취한 DNA와 (2)2012년 8월 7일 성폭행 피해 여성으로부터 채취한 DNA, 이 두 샘플을 대조 의뢰했습니다. 두 DNA가 같은 인물의 것이라는 결과가 8월 31일에 나왔습니다. 검찰이 2년 전부터 갖고 있었던 DNA 정보는, 이 과정에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검찰과 경찰이 DNA 정보를 따로 따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직도, 인력도, 저장 서버도 별도입니다. 그렇다고 대규모 조직이 둘로 나뉜 것도 아니고, 검찰과 국과수 합쳐서 DNA 업무 인력은 70여 명에 불과합니다. 형이 확정된 사람은 검찰이, 형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은 경찰이 DNA를 관리합니다. 물론 DNA법은 검찰과 경찰이 DB를 따로 구축하고, 상대방 DNA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전산망을 연동해 운영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실제로 두 기관은 DB를 따로 관리하면서 전산망은 연결해 놓았습니다. 경찰이 용의자를 찾다가 없으면 검찰에 물어볼 수 있고, 반대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전자공문을 꼭 보내야 합니다. 이거 답변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꼬박 하루입니다. 검찰과 경찰은 이 정도면 “빠르다”고 주장하는데, 하루면 용의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망가고 숙소 잡고, 밥 먹고, 잠까지 자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우리 수사기관은, 양 기관의 공조가 잘 돼 왔다고 항변합니다. 2010년 7월 26일 DNA법이 시행된 이후, 검경 두 기관이 상대방 DB를 조회하기 위해 전자공문을 몇 건이나 보냈을까요. 국과수가 검찰에 21,642건을 보냈고, 검찰은 국과수에 46,074건을 보냈습니다. 2년 만에 공문 6만7천여 건을 주고받은 겁니다. 이건 수사 공조가 잘 되는 게 아니라 DB가 하나로 통합돼 있으면 보내지 않아도 되는 공문을 그만큼 열심히 보냈다는 뜻입니다. 이름 모를 용의자에게 그만큼 긴 시간을 더 벌어줬다는 얘기입니다.
서로 DB를 실시간 검색하지 못하니까, 말로만 수사 공조일 뿐, 용의자 특정하는데 시간만 더 걸립니다. 이렇게 DNA 정보를 두 기관이 나눠서 관리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세계 유일무이한 선진 시스템이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은 FBI가 통합 관리하고, 일본도 과학경찰연구소 한 곳이 다 관리합니다. 경찰은 이제야, 양 기관의 DB를 실시간 검색할 수 있게 시스템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유사한 성범죄 사건이 터지면, 국과수 DB에서 용의자가 안 나오면, 또 서로 공문 보내고 기다려야 한다면... 국민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DNA 관리 이원화뿐만 아니라, 국과수 유전자 분석 업무의 '과부하'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랑경찰서가 2012년 8월 7일 성폭행 사건 용의자의 DNA 분석을 의뢰한 게 8월 10일이고 결과는 8월 30일에 나왔습니다. 무려 20일이나 걸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늦은 게 아닙니다. 국과수 유전자분석센터에는 지금도 차례를 기다리는 DNA 샘플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8월 30일에 나온 데이터를 검찰이 갖고 있던 '서진환의 2010년 DNA'와 대조하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겠지만, 서진환은 8월 30일 이전에, 너무 빨리 중곡동 살해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범죄 시계가 국과수 분석보다 더 빨랐던 겁니다.
물론 경찰이 '긴급' 딱지를 붙여 국과수에 의뢰했으면 며칠 만에도 결과가 나왔겠죠. 하지만 8월 7일 면목동 성폭행 사건은, 적어도 그 당시 경찰이 보기에는 '흔한 성폭행'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이 특별히 '긴급' 딱지를 붙이지 않더라도, 국과수의 자체 판단에 따라 긴급 분석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국과수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성폭행 사건을 뒤로 제쳐두고, 8월 7일 면목동 사건 용의자의 DNA를 분석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나주 초등학생 어린이 성폭행 사건 등 성범죄가 잇따르자, 국과수는 지금 3주째 주말을 반납하고, 모든 성범죄의 DNA를 '패스트트랙'으로 긴급 분석해 경찰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과수의 인력과 장비를 탓하지 않아도 되는, 담당 직원들이 주말을 반납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언제쯤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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