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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값싼 기름 어디로 갔나?

일본산 경유가 몰려온다

[취재파일] 값싼 기름 어디로 갔나?
일본산 경유가 우리나라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석유제품 수출 강국인 대한민국이 석유가 부족한가? 갑자기 왜 수입하지? 이런 생각이 드시겠지만 내막은 이렇습니다. 정부가 석유 제품을 수입해서라도 경쟁을 촉진시켜 석유제품 가격을 낮춰보자는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석유 시장은 SK, GS, 현대, S-OIL 이렇게 4개 정유사가 꽉 잡고 있습니다. 회사별 점유율도 거의 그대로일 정도로 이른바 독과점 체제입니다. 정부는 경쟁 없는 시장 구조에서는 가격 인하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정유사와 주유소간 수직거래가 아닌 주식을 거래하듯 석유제품을 시장에서 사고 팔게 해서 경쟁을 유발하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인하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석유 전자상거래는 4월부터 본격 시행됐는데 처음에는 시장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정유사들이 석유제품을 내놓지 않으니 거래가 될 리 없었던 겁니다. 보다 못한 정부가 시장 활성화 대책을 또 내놓았습니다. 7월부터 석유를 수입할 경우 각종 세금과 부담을 완화해 준 것입니다. 수입 관세 3% 면제, 수입부과금 전액 환급, 경유에 대해서는 바이오디젤 혼합 의무 면제가 그 것입니다. 이 혜택을 부여하면 수입 경유는 리터당 50원 가량 부담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자 운송비나 가격 경쟁력 면에서 가장 우수한 일본산 경유가 봇물 터지듯 수입되기 시작한 겁니다. 휘발유는 국내 환경 기준이 높은 편이어서 기준에 맞는 외국산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아직은 수입이 적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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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당 50원의 부담이 줄자 전자상거래는 놀라울 정도로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경유 거래량은 하루 기준으로 4월 9만 4천 리터에서 8월 604만 8천 리터로 무려 64배나 급증했습니다. 604만  리터는 국내 하루 경유 사용량의 1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하루 거래대금도 4월 1억 6천만 원에서 8월에 99억 5천만 원으로 61배 이상 늘었습니다. 가격은 어떨까요? 8월 5째주를 기준으로 전자상거래에서 체결된 경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1,659원이었습니다. 국내 정유4사의 평균 공급가격이 1,713원이었으니까 수입 경유가 리터당 54원 저렴한 겁니다.

리터당 50원 가량 싸게 도입된 일본산 경유는 석유 대리점이나 주유소가 사 갑니다. 대리점은 다시 개별 주유소에 경유를 팔 것이고, 개별 주유소는 전자상거래 입찰을 통해 직접 경유를 사가기도 합니다. 역시 수도권 소재 주유소나 대리점에서 가장 많이 사 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기름값 인하 혜택을 보고 있을까요? 이 부분이 아직 명쾌하게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싼 기름이 수입됐고 주유소까지는 들어갔는데 소비자들은 50원 싼 기름을 넣고 있느냐는 겁니다. 전자상거래 제도를 불편하게 지켜 봐온 정유사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합니다. “기름에 꼬리표가 붙은 것도 아니고 일본산 경유를 싸게 들여온 만큼 싸게 팔고 있다는 주유소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물량이 그 정도 풀렸으면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는 체감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석유 전자상거래를 담당하는 거래소측은 어떤 주유소가 경유를 사 갔는지 파악하고 있지만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명단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수입 석유를 사서 얼마에 팔지는 주유소가 알아서 할 일이므로 싸게 팔라고 강제할 수 없지 않겠냐는 겁니다. 다만, 국제 석유가격보다 전자상거래 거래 가격이 안정돼 있고 향후 전자상거래가 더 활성화되면 확실히 가격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제도 자체의 성과를 놓고 성급한 판단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정책을 추진하는 지식경제부는 전자상거래 거래 가격이 국내 정유사 공급가보다 리터당 평균 50~70원 싸게 도입되고 있다면서도 개별 주유소에서 그만큼 싸게 팔리는 지는 아직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막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는 단계라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소비자들이 얼마나 혜택을 보고 있는지 주유소 가격까지 모니터링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가격 모니터링을 한다 해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개별 주유소가 거래 물량을 100% 전자상거래에서 충당한다면 싸게 들여온 만큼 싸게 팔라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기존 정유사에서 몇 %, 전자상거래에서 몇 %, 이런 식으로 물량을 혼합해 팔면 가격을 어느 정도 받는 게 적정한지 따지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자상거래 물량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 정유사에 버금가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대리점, 주유소 같은 시장 참여자들이 선의를 가지고 움직일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거둬야할 세금을 덜 걷으면서까지 시행하고 있는 제도인 만큼 중간에 누군가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소비자가 혜택을 보도록 정부의 세밀한 관리가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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