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흔들리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취재파일] 흔들리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난 9월 3일은 중국 정부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설립한 지 60년이 되는 날입니다. 연변의 중국 발음은 옌볜이지만 조선족들이 연변이라고 부르는 만큼 이 글에서는 조선족들이 사용하는 발음 대로 쓰겠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조선족들이 특히 많이 사는 연길과 도문, 용정 등 6개 시와 2개 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자치주 설립 60주년을 맞아 제가 이 지역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이미지

한마디로 연변은 축제 중이란 말이 딱 어울릴 만큼 곳곳에선 다양한 경축 행사가 열렸습니다.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아리랑 민요가 흘러나왔고 농악대의 흥겨운 공연과 씨름과 널뛰기 같은 각종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습니다. 9월 3일에 열린 공식 기념식에선 학생 2만2천여 명이 민요에 맞춰 장구춤, 부채춤 등 집단 무용을 선보이는 등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족자치주는 지난 60년 동안 모든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는데 특히 경제성장이 두드러졌습니다. 자치주의 지난해 지역내 총생산은 우리 돈 11조6천억 원으로 60년 전에 비해 61배나 늘었습니다. 무역 규모도 지난해 18억5천만 달러를 기록해 무려 5천 배가 증가했습니다.

연변 경제의 급성장에는 지난 1992년 한중 수교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입니다. 중국 동북 변방의 낙후한 농업지대였던 연변을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는 것인데요, 특히 연변의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에서 벌어 송금한 외화는 연변 경제를 발전시키고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의 송금액은 연간 1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내 대도시로의 급격한 인구 유출은 연변 조선족 사회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대신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조선족 자녀들이 탈선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취업 연령이 돼서도 취직을 하지 않거나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해 연변에서도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현지 언론은 외국에 나간 부모가 연변에 혼자 남은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에 우리 돈으로 평균 60만 원 정도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60만 원이면 중국 대졸자 초임보다 많은 액수입니다. 이렇다 보니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소비와 취업 기피 풍조가 만연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연변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대도시로 떠나면서 자치주의 지위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연변주의 조선족 인구는 1995년 86만 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고 있습니다. 한 때 70%였던 조선족 인구 비율도 지금은 36%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소수민족 비율이 30%를 밑돌게 되면 자치주 지정이 해제될 수 있기 때문에 조만간 자치주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와 더불어 가정 해체가 큰 문제인데요, 제가 현지에서 만난 67살 지순옥 할머니의 경우 아들과 딸이 모두 한국으로 가 9살 된 외손녀와 5살 된 친손자를 모두 떠맡아 키우고 있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 마저 요즘 병이 깊어져, 할아버지 돌보랴 손주들 챙기랴 요즘 할머니는 하루하루 살기가 버겁다고 눈물을 지었습니다.
이미지

여기다 최근 급속히 늘고 있는 이혼도 심각한데요, 연변주 주도인 연길에서만 1년에 평균 1,800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주된 이유는 부부 한쪽이 오랜 외지 생활을 하면서 생긴 불화 때문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하지만 연변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란 지적도 많습니다. 이 지역이 북한과 러시아와 접경한 지역으로 중국 동북진흥정책의 핵심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훈춘의 경우 중국이 동해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권을 획득한 나진항과 연결되는 대북 창구이자 하산 등 러시아 극동지역과의 교역 거점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연변의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국내외 기업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면 외지로 나간 조선족들이 되돌아오고 보다 공고한 조선족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