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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보육·장기노인요양 서비스 개혁 시급

'건강한 복지'를 위한 제언

[취재파일] 보육·장기노인요양 서비스 개혁 시급
한국은 ‘보육’과 전쟁 중

요즘 웬만한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려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민간 어린이집도 시설이 좋은 곳은 대기자가 수십~수백 명 밀려 있는 건 기본.  국공립 어린집의 경우는 경쟁률이 더 높아 임신 사실을 듣자마자 병원에서 확인서를 떼어다가 원서를 내고 기다려도  서울 잠실의 한 구립 어린이집은 대기자가 4천 명이나 됩니다.  2~3년을 기다려도 입학하라는 답변은 오지 않아 원서를 넣었던 학부모들은 이런 푸념을 합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것은 로또 당첨과 같다고...”

로또가 되어버린 한국의 보육 현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먼저 보육시설 수부터 보면, 2012년6월 현재 4만1,349곳의 어린이집이 있는데 이 가운데 2,166곳이 국공립입니다. 비율로 보면 5.2%에 불과하고 아동 정원수로 보면 대략 10% 정도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개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민간과 개인을 합쳐 시설수로는 3만7,141곳으로 무려 89.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타 사회복지 법인과 직장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각각 1,449곳, 489곳으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왜 국공립에 보내는 일이 로또에 비유되는지 아실 겁니다. 5%의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고, 설사 원서를 넣더라도 맞벌이 등의 순위에 밀리면 영영 못 들어가는 국공립 어린이집,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셈입니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국공립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사실 똑같습니다.  믿을 수 있다는 거죠.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의 주체이다 보니 일단 믿을만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받다보니 질 나쁜 급식이나 아동 학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학부모들의 이런 마음을 누가 탓하겠습니까?  반면 민간 어린이집은 문제가 그동안 많이 노출됐습니다. 보육에 뜻있는 원장님들이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분명히 있겠지만 국공립과는 영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질 높은 보육과 영리추구. 이 두 가지 속성은 막대로 세게 휘어지면 잘 섞여지는 것 같지만, 결국에 젓는 걸 멈추면 다시 물과 기름으로 나뉘게 됩니다.  적어도 우리 보육 현실에서는...

‘건강한 복지’ 취재를 위해 민간 어린이집의 원장 한 분을 만났습니다.  건물을 매입하는데 20억 원이 들었고, 이 가운데 은행 빚이 10억, 최근엔 인증평가를 받기 위해 4천만 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본인이 애정과 열정을 쏟은 곳인데 함부로 보육을 하겠느냐며 민간 어린이집의 어두운 측면만을 언론이 비춘다며 기자에게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분을 탓하자는 게 아닙니다.  분명 우리의 보육 현실에서 민간 어린이집은 ‘공공서비스’라는 공적 영역과 ‘이윤 추구’라는 사적 영역, 즉 상반된 가치를 추구합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들이 파생됩니다.  지난 2007~2010년까지 민간 어린이집들이 아동수를 부풀리거나 하는 수법으로 부당하게 보육료를 청구한 건수는 3천 건에 육박하고 환수한 금액도 166억 원이나 됩니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는 보육료 등으로 공적인 영역의 서비스를 하면서 개인의 재산을 투자해 이윤을 남겨야 하는 어린이집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도 민간이 대부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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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시행돼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장기요양보험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령화에 따른 중증 노인 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이 제도는 중증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이들 노인을 돌봐야 하는 가족의 부담을 국가가 덜어주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하지만 제도를 5년간 시행해보니 역시 ‘보육’과 비슷한 문제점이 노출됐습니다.  건강보험 납부 대상자한테 장기요양보험료를 거둬 국가나 지자체가 해야 하는 노인요양서비스를 민간 사업자한테 맡긴 겁니다. 

제도 시행 초기 서비스 사업자가 부족해 민간 사업자를 대거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 된 셈입니다.  지금은 방문 요양이나 방문 목욕 업체 같은 재가시설(집에서 서비스하는 방식)들이 설립초기 보다 2배 이상 난립해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당경쟁으로 본인부담금 할인 등 제살 깍아먹기식 경쟁을 하거나 요양보험료 허위청구 등 불법 행위도 많이 적발되고 있습니다.  가족요양보호사 제도를 악용해 같이 살고 있지 않으면서 요양보험료만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SBS 제보란에는 시민들이 요양원의 노인 학대라든가 불량 급식, 보험료 허위 청구 등 불법 행위를 고발하기도 합니다.

복지의 양대축 더이상 민간에만 맡겨선 안 돼..공공성 강화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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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과도하게 보육과 장기노인요양보험 등 공적인 서비스 영역을 민간에게 의지해 왔습니다. 국가나 지자체가 맡기에는 예산이 많이 들고 민간의 참여를 독력해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시행 결과 보육과 노인요양의 질이 높아지기 보다는  공적 서비스가 개인의 사익 추구에 밀려 서비스의 질적 개선은 많이 이뤄지지 못했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입니다. 민간 사업자들도 개인 돈을 들여 공적 서비스를 수행하다보니 보육교사나 요양보호사의 처우개선은 뒷전으로 미루고 투자한 돈을 회수하거나 이윤을 내기에 급급한 것도 사실입니다.  민간 어린이집이 아동 1명당 권리금이 3~4백만원 씩 붙어 거래되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육 교수의 월급은 하루 12시간, 주6일을 일해도 120만원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더 열악해 월 80만원 이하 소득자가 수두룩합니다.  실정이 이런데 질 높은 보육, 노양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제가 취재 도중 만난 전문가와 업계 종사자 모두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보육과 노인요양서비스의 질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더 이상 이런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정부는 단속과 규제에 치중하고, 민간은 어떻게든 이윤만 추구하려 한다면 더 이상 공적 서비스인 보육과 노인요양보험은 설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복지의 양대 축인 보육과 요양 서비스를 재점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취약한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전문가들은 보육의 경우 전체 보육 대상 아동의 30% 이상을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수용하도록 국공립 시설을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선진국의 경우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보면 스웨덴은 80%, 덴마크는 67%, 독일도 31%에 달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국공립 비율이 49.5%나 되고 미국의 경우도 국공립과 비영리 법인을 합해서 65%정도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보육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정부나 지자체, 또는 비영리단체가 맡는다는 얘기입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의 서문희 기획실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공립 어린이집을 30% 이상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는데, 빈곤층을 국공립이 우선적으로 담당하고 나머지 민간 시설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규제를 풀어 다양한 보육 서비스 방식을 도입해 국공립과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또 하루 12시간의 획일적인 보육 방식에서 벗어나 반일제, 시간제 등 보육 서비스 방식을 세분화하고 0~2세의 경우 양육수당 지급을 모든 계층으로  확대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지금보다는 진일보한 방식입니다.      

장기노인요양 서비스의 경우도 정부나 지자체가 사업체를 직접 운영하거나 인증 평가 방식 등을 통해 우수 업체를 선정하고, 객관적인 서비스 질 평가를 통해 부실한 업체는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합니다. 또 민간 사업자에게만 맡길게 아니라 사회복지법인이나 종교법인 등 비영리단체들이 보육과 노인요양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이 마련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 요양보험 재정 징수와 관리는 건보공단에서, 요양센터의 인허가와 관리감독은 지자체가 맡는 이원화된 관리 방식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양자가 상호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법령도 보완되어져야 합니다.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지금 시점에서 공공성을 강화한 장기노인요양 서비스의 전면적인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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