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1990년 출간된 안정효의 장편소설이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0년대 미군 기지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의 충격으로 인간성마저 파괴되는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순수함을 갈구하는 한 여인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원래 1987년 '길쌈'이란 제목을 출간됐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이름을 바꿔 다시 세상에 나왔다. 1991년에는 장길수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품 속 '금산리' 마을에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하나 있다. 마을이 위기에 빠질 때 번쩍이는 은빛 말을 탄 장군이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을 구해준다는 전설이다. 전쟁은 평온하던 마을을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마을 근처에 갑작스레 미군 부대가 들어서고 뒤따라 유곽까지 생기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생겨 난다.
순박했던 산골의 청상과부 '언례'가 미군에게 성폭행 당한 뒤 마을 사람들의 조롱과 따돌림 속에 양공주로 변하고 그의 아들까지 차별을 받으면서 마을 사람들과 대립하게 되는 모습은 이런 과정을 대변한다. 하지만 마을이 철저히 유린당하도록 이들을 구원해 줄 은마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 안철수, 정치권의 '은마'?
대선을 앞둔 정치판에 이런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국민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해결해줄 '은빛 말을 탄 장군'에 대한 갈망이다. 경제 위기 속에 팍팍해진 서민의 삶을 어루만지고 해결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이런 현상을 강하게 부채질했다.
이런 갈증을 해결해줄 인물로 여론이 지목한 것이 안철수 서울대 교수다. 사회적 공헌을 해온 안철수 연구소와 본인의 때묻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지난해 말 자신 갖고 있던 안철수 연구소의 지분 절반을 사회에 기부했다. 액수만 1,500억대로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정치적 준비를 위한 계산된 행보였는지를 놓고 이견이 분분했지만 매번 돈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는 정치권 뉴스에 지쳐있던 국민에게 그의 나눔 실천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자기 말만 쏟아내는 기존 정치권과 달리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모습은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 안철수 신드롬, 그를 '성인군자'로 만들다
안철수 교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동경과 호기심이 뒤섞인 모양새였다. 안 교수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사람들은 그가 정치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안 교수는 지난 7월,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 출간으로 국민의 물음에 답했다. 또 뒤이어 출연한 SBS 힐링캠프에서 그는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진솔하게 내보였다.
대선 출마에 대한 모호한 대답으로 하향세를 보이던 그의 지지율은 반등했고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켰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안철수 신드롬의 최대 피해자는 민주통합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선 구도는 박근혜 대 안철수 구도로 재편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의 이미지는 단순히 깨끗하고 도덕적인 정도를 넘어 '성인군자'와 같은 수준으로 지나치게 미화됐다. 대안 부재론에 시달렸던 야권과 기사 찾기에 목말랐던 언론이 경쟁적으로 안철수 교수 띄우기에 나서면서 나타난 부작용인 셈이다.
여권 등 일부 정치권에서는 안 교수가 이런 '미화작업'을 은근히 즐기는 것을 넘어 기정사실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런 사태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룸살롱' 논란이 그것이다.
룸살롱이라는 업태에 대해 사회적 반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업을 했던 안 교수가 룸살롱에 출입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흠결이 되지는 않는데도 안 교수가 굳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가 당시 찍은 사진이 있다는 등의 말이 여권에서 흘러나오자 이를 시인했다는 것이다.
◈ "안철수 현상, 메시아주의적 냄새까지"
일부 학계와 정치권은 정당 정치로 표현되는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안철수 신드롬'을 낳은 주된 원인으로 지적한다. 공천 장사로 집약되는 우리 나라 정당 정치의 뿌리깊은 부패 고리와 인물 중심의 계파적 정당 운영이 탈정치적 인물을 찾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혹자는 이를 '새 정치'로 규정한다. 기존의 낡은 정당 정치의 틀을 깨는 정치적 변혁의 시험대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시대 정신'이라는 말도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생각해볼 점이 있다. '안철수 현상'의 양면성이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손호철 교수의 분석이 이를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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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좀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낡은 한국 정치에 대한 어떤 국민의 불만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로 나타난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런 어떤 변화에 대한 욕구가 새로운 정치운동이나 이런 것들로 표현되기보다는 안철수라는 한 개인에 대한, 어떤 개인을 하나의 구원자로, 메시아주의적인 그런 냄새까지 나는 것은 아주 우려되는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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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마는 오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은마를 타고 오는 장군을 기다렸던 것 만큼 우리 국민도 구태로 얼룩진 정치를 뒤엎어줄 은마 탄 장군을 기다리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은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안철수 교수가 아무리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해도 그에게 구원자적 역할을 요구한다는 건 무리다. 오히려 그런 요구가 자칫 안교수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보다는 있는 그대로 안 교수를 바라보고 필요한 검증은 철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가 막판으로 치달을수록 각종 비방이 난무하겠지만 흠집내기와 자질 검증을 구별해내는 선구안이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건 국민적 관심 밖에 없다.
현재로선 안철수 교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있는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안 교수가 우리 나라를 맡을 만한 자질과 도덕성을 갖췄는지 철저히 따져보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유권자의 권리이자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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