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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철수의 '카운터 펀치'

[취재파일] 안철수의 '카운터 펀치'
- 무하마드 알리, 32살의 신화를 쏘다

1974년 10월 30일, 자이르의 킨샤샤에서 세기의 복싱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당시 26살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WBA-WBC 통합챔피언인 최고의 '막강 주먹' 조지 포먼과 복서로는 황혼의 길에 접어든 32살의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입니다. 이름값으로 보자면 흥미진진한 경기였던 게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도박사들은 맷집과 파워, 스피드 모든 면에서 조지 포먼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알리는 '얼굴 마담'이었을 뿐 누구도 알리의 승리 가능성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1라운드부터 조지 포먼은 주도권을 잡고 맹공을 시작했습니다. 알리를 링 코너로 압박하며 날카로운 핵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저돌적인 공격에 알리는 전의를 상실한 듯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특유의 스피드를 보여주지 못한 채 방어에 급급했습니다. 7라운드까지 일방적인 현 챔피언의 우세한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알리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포먼은 무수한 강펀치를 쏟아냈지만 치명타라고 볼 만한 펀치를 알리의 안면에 적중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8라운드, 한창 나이지만 20분 넘게 강펀치를 휘둘렀던 포먼의 팔과 다리가 무뎌지기 시작합니다. 이 순간 링 위에서 걷다시피 했던 알리가 특유의 화려한 스텝을 보여주더니 가드를 올릴 힘도 남아있지 않던 포먼의 안면에 단 한방의 카운터 펀치를 적중시킵니다. 세기의 대결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32살 황혼의 복서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이 경기는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로 평가받습니다.
 
- 주도권을 잡아라, '이니셔티브' 전쟁

스포츠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경쟁구도에서는 '주도권'이 중요합니다. 축구에서는 공을 점유한 팀이, 농구에서도 공격 기회를 많이 잡는 팀이 확률적으로도 공격 기회가 많기 때문에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압박축구를 선보이며 '우리만의 축구'로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희대의 베스트셀러 만화인 '슬램덩크'에서 리바운드의 천부적 재능을 선보이며 수많은 반전과 공격기회를 만든 강백호가 주목받았던 이유입니다.

정치에서도 국정 운영에 필요한 법안을 주도하는 여당이, 세계 스마트폰의 판도를 바꾸는 삼성이, 음악의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내는 영, 미 음악이 전세계 대중음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의 수익을 올렸는가, 누가 이겼는가 하는 보이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이니셔티브' 싸움이 더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 '거짓말 논쟁' 안철수 겨냥한 처절한 '검증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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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박근혜 대선후보를 확정한 전후로 공교롭게도 범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에 대한 검증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안랩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매입 의혹, 안철수 교수의 룸살롱 출입 논란, 서울 사당동 재개발 아파트 딱지 구매,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 스톡옵션행사로 막대한 차익 실현, 여기에 '대기업 거수기' 논란까지... 최근 보름 동안 안철수 교수를 둘러싼 수많은 의혹이 언론을 통해 쟁점화 됐습니다.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소속 네거티브 대응팀이 안 교수와 관련한 첩보를 양산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 등 정보기관과 사정기관이 첩보 공급의 중심이라는 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범야권으로의 정권교체를 막기 위해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정해진 시점을 시작으로 순도 높은 정보력을 갖고 있는 범여권이 합심해 검증 공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안철수 교수는 검증공세라는 틀에 갖힌 꼴이 됐습니다. 사실 현재까지 제시됐던 의혹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위법적인 행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안 교수의 저서나 안 교수의 발언이 실제 행동과 달랐던 부분들을 부각시키면서 불거진 '거짓말' 논쟁은 안 교수에 대한 여론을 불리하게 만드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 교수 측의 대응 방식은 의외로 소극적이었습니다. 미온적 대응은 안철수 교수를 겨냥한 검증공세를 촉발시킨 측면이 있었습니다. 여의도 주변에서는 이러다가 안 교수가 출마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섞인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검증 국면을 사찰 파문으로' 아웃복서 안철수의 '카운터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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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의 비공개 '경청 행보'가 계속되는 가운데 어제 오후 안 교수의 측근인 금태섭 변호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페이스북 '진실의 친구들'을 운영하며 안 교수에 대한 방어를 적극적으로 해왔던 금 변호사였기 때문에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에 대한 종합적인 해명 자리가 아니냐는 얘기들이 돌았습니다. 그러나 기자회견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안철수 교수의 뇌물과 여자문제를 거론하며 대선 불출마를 협박했다." 법률전문가의 폭로는 판도를 뒤바꿨습니다. 새누리당과 정부 정보기관의 유착 의혹은 불법 사찰논란을 재점화 시켰습니다. 단 한번의 기자회견으로 일련의 검증공세는 '사찰 의혹'으로 쟁점화됐고 화살을 새누리당을 겨냥했습니다.

협박 당사자로 지목된 새누리당 정준길 공보위원은 26년 지기인 금 변호사에게 시중에 떠돌던 얘기를 전했던 것이다, 불출마를 종용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금 변호사의 폭로는 사실 무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가 나서 친구들 사이에 오갔던 얘기를 사찰 의혹으로 확대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새누리당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정준길 공보위원은 사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기자회견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새누리당이 안 교수와 관련한 20여 가지의 의혹들을 첩보로 갖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정보기관과 새누리당의 유착설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터넷을 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선 경선과정에서 모바일 투표의 공정성 시비로 내홍을 겪고 있던 민주통합당도 안철수 교수에 대한 불법사찰 의혹을 새누리당과 현정부의 정치공작으로 규정하고 당차원의 진상조사위를 구성했습니다. 국회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습니다.

새누리당이 안철수 교수 측의 뺨을 때리다 강력한 어퍼컷 한 방에 다운된 형국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흘러나옵니다. 그만큼 안 교수 측의 한 방은 강력했고 이번 기자회견으로 안 교수는 또 다시 박근혜-안철수 양강구도라는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습니다. 대선 출마 가능성이 높아진 동시에 수많은 검증 의혹들은 불법사찰 프레임에 흡수돼 당분간 힘을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안 교수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지고 대선출마 시점까지 시간도 번 일석이조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안철수식 아웃복싱이 새누리당이 허를 찌른 셈입니다.

- '국면 대전환' 대선 출마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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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열린 어제는 공교롭게도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날입니다. 1년 사이 사뭇 달라진 분위기는 우연이든 아니든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소 소극적, 수동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안철수 교수 측이 적극적인 대응을 넘어 특정 세력을 겨냥한 공세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상황과 현안에 따라서 앞으로는 '할 말은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민주당 일각에서 안철수 교수의 제 2의 협찬 정치를 기대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안철수 사단의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였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여기에 안 교수 주변에서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거대한 세력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CS 코리아라는 안 교수 자발적 지지단체는 오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안 교수 대선출마 촉구'와 함께 '100만 회원 모집 운동'에 들어갔습니다. 1년 전과 달리 안 교수의 선택에는 커다란 책임이 뒤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 드라마가 '유주얼 서스펙트'가 아니라면 '아웃복서' 안철수 교수의 정치 참여 여부는 사실상 결론이 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습니다. 대선 출마 시점을 언제로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안 교수 측에서는 안 교수 본인만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아웃복서 안철수 교수, 이번 기자회견의 충격만큼 출마도 얼마나 예측불가능한 시점과 기발한 장소를 선택할지... 취재기자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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