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트렁크 안에서 나는 소리를 수상하게 여긴 택시 기사의 재빠른 신고와 행인의 도움으로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경찰에 잡힌 범인은 도쿄의 한 대학에 다니는 20살 고다마 씨로 밝혀졌는데 그는 경찰에서 여자 아이를 성추행하기 위해 데리고 가던 중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일본 방송들은 이 사건을 중요 뉴스로 다루면서 일제히 키 150센티미터로 비슷한 체구의 직원을 동원해 직접 가방에 들어가는 시연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자 아이가 감금돼 있던 방 안에서 용의자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것입니다. 범인은 아이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시신과 함께 11시간 동안 감금당했던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아직까지 아이를 납치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범인은 경찰에서 어린 여자아이에게 평소 관심이 많았다는 섬뜩한 진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동 범죄 전문가들이 TV에 출연해 아파트는 일종의 폐쇄된 공간이라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기도 하더군요.
초등학생 여자 아이를 상대로 잇따라 벌어진 사건으로 일본 열도는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아동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발생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붙잡힌 용의자의 얼굴과 신원을 모두 밝힌다는 점이 다른 점입니다. 우리의 경우 확정 판결을 받을 때까지 철저하게 신원을 밝히지 않고 얼굴도 가리는 반면 일본의 경우 현행범이거나 범죄 사실을 인정하면 그대로 방송과 신문에 얼굴을 공개합니다.
일본은 중범죄자의 경우 언론에서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간의 화제가 된 사건이라면 그다지 중범죄가 아니더라도 얼굴 공개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와이드쇼나 뉴스쇼 등의 형식을 통해 가해자, 피해자를 불문하고 사생활을 지나칠 정도로 파헤치고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는 보도가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 형법 제230조의 2의 2항은 「아직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사람의 범죄행위에 관한 사실은 이를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범죄에 관한 보도가「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을 전하는 것임을 명문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사람의 범죄행위'라고 한 것은 범죄사건이 발생해서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용의자를 체포해서 기소하기까지의 과정, 즉 공소제기 이전의 과정을 보도하는 것도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을 전한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사법부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때에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특히 범죄사건의 경우는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이 사회 불안을 제거하고 범인의 조속한 검거를 위해서도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이런 보도 관행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인권단체들은 언론의 마구잡이식 경쟁 보도를 비난하며 피의자의 실명 대신 가명을 사용할 것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올바른 선택일까요? 대다수의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도 기준 마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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