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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약수 같지 않은 약수터 물

[취재파일] 약수 같지 않은 약수터 물
서울 시내 약수터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무려 273곳이나 됩니다. 아스팔트와 콘트리트 투성이라 얼마 안될 것 같은데,북한산, 청계산, 우면산 등 곳곳에 산이 많다보니 의외로 많더군요.이용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어떤 약수터는 하루 이용객만 천명이 넘을 정도입니다.

서울시는 수돗물에 '아리수'라는 이름을 붙여 마셔도 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높은 것 같습니다. 약수터 이용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약수터 물이 맛이 더 좋고 수돗물은 끓여도 냄새가 많이 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럼 이분들 말씀처럼 정말 약수터 물이 수돗물보다 더 좋고 깨끗한 물일까요?

맛은 더 좋을지 몰라도 적어도 여름철엔 더 깨끗한 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서울시가 시내 약수터 273곳의 수질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70% 가량인 158곳에서 대장균이 검출돼 식수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장 최근 이뤄진 지난달 조사 결과는 아직 다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중간결과는 비슷합니다. 지금까지 101곳의 결과가 나왔는데, 여기서도 60곳, 전체의 60% 정도가 벌써 식수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대장균을 보통 '지표 세균'이라고 하죠. 100밀리리터의 물에서 대장균이 한마리라도 검출되면 다른 세균도 있을 가능성이 높아 이 물을 그냥 마실 경우 여러가지 감염의 우려가 있는데요, 이렇게 많은 곳에서 대장균이 검출됐다는 건 약수터 물을 그냥 믿고 마시기엔 충분히 위험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런 약수터물 오염이 매년 여름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서울 시내 약수터의 수질 검사는 보통 분기마다 이뤄집니다. 여름철에만 기온이 높은만큼 세균 번식 우려도 높아 7,8,9월 매달 검사를 실시하는데요, 평소 서울 시내 약수터 물의 식수 부적합 판정률이 30%선인데 반해, 여름철 7,8,9월의 식수 부적합 판정률은 매년 70%선을 왔다갔다 합니다.

이유를 살펴보니 문제는 태풍과 장마 때문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약수터 물은 지하수라 토양층을 통해 자연 정화되서 흘러나오는데 장마나 태풍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리면 야산의 동물 분변 같은 오염물질이 그대로 지하수에 유입돼 약수까지 오염돼버리는 겁니다.

하지만 약수터를 관리하는 각 관할 구청들의 대처는 상대적으로 미흡했습니다. '음용 부적합', '마실 경우 건강이 위험할 수 있으니 마시지 마십시오'라는 경고 문구만 붙여놨을 뿐, 다른 조치는 전혀 없었습니다. 구청 직원이 약수터 옆에서 시민들이 물을 떠가는 걸 버젓이 보면서도 막으면 오히려 시민들이 항의한다는 이유로 수수방관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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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이용하시는 분들도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경고 문구가 버젓이 붙어 있는데도, 이용하는 분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예 생수통 여러개에 가득 채워 차에 실고 가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경고 문구를 보면서도 왜 드시냐고 여쭤보니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 않느냐", "끓여먹으니까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자문을 구해보니 물을 끓여먹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세균은 물을 끓일 경우 사멸하지만, 일부 세균은 포자 형태로 살아남은 뒤 인체에 들어오면 다시 활성화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오염된 물은 아예 마시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이쯤되면 상식적으로 여름철엔 약수터 물을 마시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물을 마시고 탈이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탈이 나지 않았다고 탈날 때까지 오염된 물을 계속 마시는 건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일 겁니다. 각 구청 역시 약수터 오염 판정을 받았으면 경고 문구만 딸랑 붙일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약수터를 폐쇄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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