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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제 밑바닥 '고물상'에 불어닥친 불황

[취재파일] 경제 밑바닥 '고물상'에 불어닥친 불황
계속 비가 내리네... '덴빈'인가 뭔가라는 태풍이 지금 남쪽에 있단다. 어휴~ 왜 태풍이 연달아 오는지. 90도로 굽은 허리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가야지. 비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리어카를 밀고 거리로 나간다.

내 나이 76. 폐지 줍는 일을 한 지 몇 년이 됐는지 기억도 안 난다. 20년? 고물상 정 씨가 나를 최소 10년은 봤다고 한다. 이런 날은 정말 집에서 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밥값은 물론 허리 때문에 약도 사야 한다. 자식한테 기댈 생각은 예전에 집어치웠다. 며느리도 병 때문에 집에 누워만 있는 신세다.

어, 갑자기 태풍이 고마워진다. 골목에 박스가 한가득 쌓여 있다. 얼마 만인가. 좁은 골목길이다 보니 차의 백미러가 닿을 정도로 가깝게 지나간다. 그래도 상관없다. 손놀림이 빨라진다.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떼고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비 맞으면 무게 달 때 조금이라도 빼자고 할 수 있으니 비닐을 덮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요즘 폐지 줍는 사람이 많이 늘어서 박스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예전엔 폐지 줍는 사람은 다 노인이고 장애인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40대 아줌마들도 많이 늘었고, 20대 30대 젊은 사람들도 한다. 젊은이들은 오토바이나 트럭 타고 다니면서 한다. 아줌마들도 처음에는 마스크 쓰고 하더니 이제는 쓰지 않는다.
뭐 부끄럽다고 처음에 생각했겠지. 나쁜 일도 아니고, 오히려 떳떳해해야지.

그런데 예전엔 상도의라는 게 있었다. 나름대로 구역이 있어서 침범을 안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지는 것 같다. 다들 새벽 밤낮 할 것 없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애써 모아 놓은 것을 훔쳐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싸움도 나고 경찰서도 간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이 박스를 항상 모아놓는다. 오래전부터 내 형편을 알아선지 너무나 고맙다. 요즘 전통시장엔 지붕도 생겨서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비 피할 장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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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비 쫄딱 맞으며 모은 박스들을 고물상 정씨에게 가져갔다. 123kg이 나온다. 리어카 무게 60kg을 빼면 63킬로그램이다. 손에 쥔 것은 7천 원이다. kg당 따지면 백 원이 조금 넘는다. 1년 전만 해도 이 정도 가져오면 배는 받았는데.

돈을 건네주는 정씨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폐지 가격이 1년 전보다 딱 반 토막 났다. 그땐 kg당 200원이 넘기도 했지만 올 들어서 가격이 너무 많이 떨어지고 있단다. 나도 이 생활 오래 해서 안다. 고물상 가격은 고물상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 폐지, 고철 가격은 전국적으로 매일매일 정해진다고 한다. 인터넷에도 올라 있다고 한다. 뭐 줍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길거리에 폐지도 줄어든 것 같은데, 그러면 가격이 올라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다. 정씨가 아니라며 설명해줬다.

"라면 박스를 예로 설명하면요. 라면박스가 많이 소비돼야 이 라면박스 고물이 많이 들어올 건데 소비가 안 되니까는 고물이 줄어든 거죠. 다시 얘기하면 라면 공장에서 라면이 많이 나가야 라면 박스가 많이 나올 건데, 라면이 많이 소비가 안 된다는 얘기죠. 그래서 고물도 적게 들어오고, 소비가 안 되니까 공장에서는 적게 가져가고. 전체 사이클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보면 되죠."

뭐 불황 때문이란 얘기다. 또 이 고물이라는 게 결국, 업체들 수요에 좌지우지되다 보니 업체들이 가격이 하락할 때도 그 폭을 크게 떨어뜨리고, 또 오를 때는 조금만 올린다고 정씨가 하소연을 한다. 힘없는 사람들만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오늘은 많이 가져오긴 했지만, 비 때문에 더 나가지도 못한다. 그냥 고물상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고 가야 되겠다. 기자가 바라는 게 뭐냐고 물어본다. 뻔한 얘기를 왜 물어보나 싶다. "경기가 좋아서 그전대로 회복됐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30일 고물상을 취재하면서 만난 분들의 얘기를 그분들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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