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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오롱과 듀폰의 30년 질긴 악연

[취재파일] 코오롱과 듀폰의 30년 질긴 악연
삼성전자와 애플의 세계적인 특허분쟁에 이어 이번에는 코오롱과 듀폰의 소송이 화제입니다. 미국 지방법원이 코오롱이 만든 <아라미드> 소재 제품의 전세계 생산, 판매, 판촉을 향후 20년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미국 법원에서 삼성에 이어 우리 기업이 2주 연속 패배한 겁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된 것 아니냐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소송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기업의 질긴 악연입니다. <아라미드>는 방탄복이나 방화복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첨단 소재 섬유라고 합니다. 듀폰사는 이를 ‘케블라’라는 브랜드를 붙여 판매합니다. 미군의 장비에 사용되니까 들어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국내에서 아라미드 개발은 고인이 된 KIST 윤학식 박사가 주도했다고 합니다. 1979년 기초연구에 들어가 1982년 섬유펄프를 개발했고 1983년 미국에 섬유펄프 특허 등록, 1984년 펄프 원천 기술 개발 완료에 성공했습니다. 세계에서 3번째 독자 기술이 나오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1985년 아라미드 섬유개발이 국책과제로 선정되면서 KIST 윤 박사팀과 코오롱이 상용화를 위한 공동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듀폰은 윤 박사가 미국, 유럽, 일본으로부터 아라미드 물질특허를 획득하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0년간 이어진 소송은 1993년이 돼서야 유럽 특허청 항소심 재판소에서 윤 박사의 승소로 마무리 됐다고 합니다.

듀폰은 또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해 아라미드 펄프의 ‘물질특허’ 소유권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특허소유권은 윤 박사의 연구활동을 지원해 온 코오롱이 갖고 있었습니다. 듀폰은 코오롱에 합자 사업을 제안했지만 생산 공급권, 로열티 지급 문제 등에 이견이 생겨 협상은 결국 결렬됐습니다. 세계 판매권은 듀폰이 소유하고, 코오롱은 생산 공급권을 갖되 1억 달러 이상의 로열티와 한국 내 양산 설비에 따른 투자와 후속기술을 지원하는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듀폰이 코오롱과 윤 박사팀의 아라미드를 탐낸 이유는 듀폰사의 아라미드 섬유보다 제조 공정을 절반으로 단축하고, 생산원가를 1/3으로 줄이면서도 강도가 높다는 것이 코오롱의 설명입니다. 이래 저래 듀폰과 코오롱-윤 박사팀의 관계가 어그러지자 듀폰은 아라미드 원료 공급업체인 네덜란드 악조사에 한국에 원료를 공급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해 코오롱의 아라미드 사업 진출을 방했다는 게 코오롱의 주장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코오롱이 2005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2006년 미국 시장에 진출하자 또 견제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2009년 듀폰에서 해고된 엔지니어가 코오롱과 접촉하자 듀폰은 영업기밀 누설 혐의로 듀폰 공장이 위치한 버지니아주 지방법원에 코오롱을 고소했습니다. 그 소송 중 일부가 이번에 내려진 판매금지 판결입니다. 듀폰은 이 직원이 공장 내 생산 시설 배치 등 중요 기밀까지 코오롱에 알려 줘 심대한 영업상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코오롱은 미국 검찰과 FBI가 그 직원을 정보원으로 회유한 뒤 코오롱 직원을 버지니아주 호텔로 유인해 영업비밀을 제공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하는 등 함정 수사를 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1심에서 배심원들은 코오롱의 잘못을 인정해 우리돈 1조원의 손해배상을 결정하고 판사도 그대로 판결했습니다. 2006년부터 코오롱이 미국에 내다 판 아라미드가 33억원이고 지난해 코오롱인터스트리의 순이익이 2천억원 정도라고 하니까 배상액이 얼마나 엄청난 액수인지는 짐작이 갈 겁니다.

코오롱은 판사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습니다. 담당 판사는 판사 임용 전에 21년간 미국의 한 로펌에서 근무했는데 그 로펌이 듀폰 업무를 많이 처리했고, 이번 소송에서도 듀폰측 소송 대리를 맡고 있다는 겁니다. 또 판사는 그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듀폰-악조간 아라미드 소송에도 관여한 경력이 있어 코오롱측 변호인단이 판사 기피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고 합니다. 

코오롱은 이번 건과 관련해 억울하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코오롱도 반성할 부분이 있습니다.경쟁사와 관련된 인물(문제의 해고된 직원)을 너무 쉽게 만난 겁니다. 컨설턴트로 정식 고용하고 전 직장에 대한 기밀을 누설하지 않는다는 계약서까지 쓰고 고용했다고는 하지만 꼬투리를 잡힐 만한 일을 한 건 사실입니다. 코오롱은 지금 내부적으로 경쟁사 직원 접촉 금지령이 내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번 판결을 놓고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가 강화되는 건 아닐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FTA로 무역을 활성화자는게 여전히 대세이긴 하겠지만 미국도 불황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어 자국 기업 보호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의 견제가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에선 그동안 무섭게 성장한 우리 기업들도 이제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한층 더 치밀하고 성숙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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