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 직전입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요즘 재계 분위기를 묻자 '심리 붕괴(mental breakdown)'를 의미하는 유행어로 심경을 대변했다.
업황이 암울한 가운데 정치권이 이른바 '경제 민주화'를 명분으로 사전 규제 성격의 재벌 개혁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서민들에게 쌓인 '재벌에 대한 위화감을 이용해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노골적인 불만이 일부 기업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규제 움직임을 반기면서도 정치권의 개혁안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을까 경계하는 분위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잉 규제'가 이뤄질 경우 정상적인 기업활동과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 이익을 훼손할 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대기업들 반박 논리 만만찮다 정치권에서 거론하는 대기업 규제 방안에 대한 경제단체 등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순환출자 금지나 대기업 총수의 경제 범죄에 대한 사법 처벌 강화 등은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순환출자는 일본의 토요타자동차, 프랑스의 LVMH그룹, 인도의 타타그룹, 독일의 도이체방크그룹 등 주요 국가의 대기업집단에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경제단체들은 주장한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이 모델로 삼았던 일본에서조차 출자총량, 출자구조 또는 형태 등에 대한 사전 규제를 갖고 있지 않고 일본의 학계나 정치권 어느 쪽에서도 논의하고 있지 않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자산 5조원 이상인 큰 기업을 대상으로 상호출자를 완전히 금지하는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지적이다.
순환출자를 주식시장에서 해소하려면 소액 주주가 손실을 보게 된다.
국내에서 인수여력이 없으면 결국 경영권이 외국 기업이나 헤지펀드에 넘어가 국부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순환출자로 오너 일가가 실제 출자지분에 비해 과도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소유 지배 괴리' 현상이 심화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과거 정부 정책에 순응한 결과"라면서 정책 일관성 부족을 꼬집었다.
또 야당은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도입의 근거로 골목 상권이나 중소기업 영역 보호 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은 이러한 사유들과 무관하다는 것이 재계 입장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출총제와 같은 사전적 규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없다"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출총제에 해당하는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를 시행했던 일본도 2002년 독점금지법을 개정하면서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경제인들을 겨냥,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자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자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재계는 국민 법감정을 등에 업고 '역차별'하는게 아니냐는 논리를 편다.
공무원, 정치인, 폭력 행위자들에게 적용되는 공직자윤리법, 공직선거법,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등에는 사면권 제한 조항이 없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외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국내에서는 고용과 투자도 늘리고 있다"면서 "공은 무시한 채 범죄집단 대하듯 하는 분위기에서는 경영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대기업 개혁을 위한 논의들이 교각살우(矯角殺牛)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업 관련 정책을 국면 타개 카드로 활용하거나 오로지 '표심'을 의식해 기업을 '여론몰이'식으로 단죄하려한다면 국가 운영에 손실이 된다는 것이다.
◇ 中企업계 "선거용으로 끝나지 말아야" 중소기업은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논의를 일단 반기면서도 '대선용 공약(空約)'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경제 민주화 이슈가 대선을 앞두고 나왔지만 결국 과거처럼 또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면서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마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선거만 지나면 바뀐 것이 별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하도급 문제, 카드와 백화점 수수료 등 불공정한 행위부터 바꾸자는 것이라면서 대선 주자들이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은 대선 주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체험도 하고 이야기도 제대로 들어서 당장 해야 할 일과 중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을 체계적으로 나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대기업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생력을 기르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상생을 하려면 사실 제도나 법보다 대기업 총수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무진들이 상생하자, 동반 성장하자고 해도 결국 월급쟁이기 때문에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 실적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총수가 상생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시장 친화적인 해법 찾자"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방안들중 일부는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만 강조해 결과적으로 과잉 규제의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기업의 경제활동과 관련한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는 헌법을 준수해야 규제의 정당성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헌법상 경제 민주화 조항에 근거해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개입의 방법은 법치국가 의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경제 전문가는 "사전적 행정규제 중심의 `인위적인 해소' 정책보다는 사후의 `사법적 구제 강화' 정책으로 개선하는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비자 등의 이익에 부합하는 헌법합치적 정책 방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이 자유시장 경제질서에서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경쟁을 훼손하면 사후적으로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사법 체계를 구축하자는 논리다.
경제 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요청을 정치권과 국민이 모두 인식하고 있다면 대·중소기업과 시민, 학계가 참여하는 공론화의 장을 만들어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실천 수단을 찾아보자는 의견도 경제계 일각에서 제시되고 있다.
특히 경제 민주화 논의가 청년 실업이 넘쳐나는 불안한 사회 분위기와 동떨어져 소모적 논쟁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고려대 오정근 교수(경제학과)는 "투자를 저해하는 새로운 규제를 양산하는 것보다 규제 완화 등으로 투자 환경을 개선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분배를 통해 민생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경제 민주화의 길"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경제민주화⑥ 대기업 "교각살우 피해야"
재벌 겨냥 규제안 봇물…中企는 "기대반 우려반" <br>'윈-윈' 해법 모색 움직임…"민생살리기가 진정한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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