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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검사' 안대희를 위한 변명

[취재파일] '국민검사' 안대희를 위한 변명
안대희 전 대법관의 새누리당 행이 논란입니다. 안 전 대법관은 박근혜 대선 후보의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국민 검사'라는 칭송을 받던 분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아들였다는 점, 그것도 자신이 수사했던, '차떼기'로 불법대선자금을 받은,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 당직을 맡았다는 점, 게다가 대법관으로 6년을 봉직하고 명예롭게 퇴직한 지 불과 48일만의 '변신'이라는 점 등이 논란의 이유입니다.

◆ 야당 "사법부·국민 망연자실"…법조계 "대법관 중립 훼손 우려"

당장 새누리당과 대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통합당이 비판의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법관 임기를 마친 지 잉크도 마르기 전에 새누리당으로 향했다. 사법부가 망연자실하고 우리 국민 역시 실망하고 있다"고 처신을 지적했습니다. 정성호 대변인은 "대검 중수부장과 대법관을 지낸 최고의 예우를 받는 분이 최악의 공천장사 파문을 겪고 있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 영입된 것은 박 후보 친인척 비리 의혹을 은폐하는 방패막이용"이라고 혹평했습니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적인 여론이 적지 않습니다.

대한변협은 "대법관은 퇴임한 후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한다. 대법관 자리를 발판으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대법관이 퇴임 직후 특정 정당에 간다면 그가 대법관으로 있을 때 한 판결을 국민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판결의 중립성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퇴임 후 일정 기간 정당 가입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 점에서 안대희 아쉽다"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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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대희 "나라 바로 가는데 힘 보탤 것…자리에 연연 안 해"

안 전 대법관은 어제(27일)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도 많은 생각을 했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동안 정치적 중립성 내지는 독립성을 중시하는 직업을 가져왔기에 당측에서 제의가 있다 한들 제가 쉽게 수락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왜 스스로도 쉽지 않았다는 길을 선택한 걸까요? 안 전 대법관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7월 초와 7월 말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지만 미국에 갈 입장(스탠포드대 연수)이어서 나설 입장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25일) 박 후보를 뵙고 이 분의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성과 말씀을 분명히 지키겠다는 믿음을 보고 결심을 했다. 박 후보가 '깨끗한 정치, 바로 가는 나라, 질서 잡힌 나라라는 말씀을 많이 했는데 그런 부분이 저하고 생각이 같은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박 후보의 진정성에 설득당했다 정도로 요약되는데 뭔가 충분치 않다는 느낌입니다. 혹시 대선 이후 자리 욕심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에 대해 안 전 대법관은 "35년 간 공직을 한 사람이 그 어떤 자리에 연연해가지고 여기에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새누리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또 자신이 할 일은 "나라가 큰 틀을 잡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제가 가진 경험과 경륜을 보탠다는 것이지 직접적인 정치가 아니"라며 정치적 역할과는 거리를 뒀습니다.

◆ '국민검사' 안대희를 위한 한 전직 법조 출입기자의 변명

저는 6년 가까이 법조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안 전 대법관을 만났습니다. 특히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봄까지 7개월 동안 진행된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는 거의 매일 안 전 대법관을 가까이서 봤습니다. 검찰 사상 처음으로 생긴 팬클럽이 '국민검사' 안대희를 찾아왔던 일, 부산고검장으로 떠나던 날 저를 포함한 출입기자단이 '너무 쎈' 수사를 했던 당대 최고검사의 앞날을 걱정하며 꽃다발을 전해주던 일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안 전 대법관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자신없습니다만, 안 전 대법관은 제가 주저없이 꼽는 '최고의' 수사검사 가운데 한 명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는 '쾌도난마(快刀亂麻)'를 업으로 하는 검사로서는 썩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부산사람 특유의 넉넉한 사투리에, 더듬더듬해하는 다소 어눌한 말투, 미술을 좋아하며 감성적이고 가끔 감정이 복받칠 때는 여지없이 목이 메는 그런 검사였습니다. 실제로 2004년 5월 대선자금 수사결과 발표 말미에 "그 동안 수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가 있었으나..."라는 대목에서 울컥하더니 한 동안 눈시울을 훔쳤습니다. 매일같이 자신을 괴롭히는 기자들에게 큰 소리라도 한 번 치는 날이면 그게 미안해 다음날 꼭 '작은' 정보로 만회를 해주는 검사였습니다. 20년 넘게 서울 강북의 3억 원대 아파트 1층에 살면서 이만하면 출세했다고 자랑하던 검사였습니다.

사실 안 전 대법관이 대법관 퇴임 전, 사석에서 그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더듬더듬 말투로 벌써 8년이나 지난 대선자금 수사 때의 깨알같은 에피소드와 앞으로 펼쳐질 인생 이모작에 대한 구상을 밝혔습니다. 그는 "8월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 대선 이후에나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그에게서 새누리당 행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세월 '검사 안대희'를 기억하는 저로서는 그가 당장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는 일을 떠나 대선 이후에 언제든지 법조계의 원로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갑작스런 새누리당 행이 안타깝습니다.

2004년 3월 대선자금 중간수사결과 발표 때 '중수부장 안대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본격적인 총선 정국이 전개되는 시점에서는 검찰수사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격렬한 정쟁을 촉발시킬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철저한 진상 규명에 관한 검찰의 순수한 의도를 오해받을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저는 그 때나 지금이나 안 전 대법관이 나라를 걱정하고, 명예를 소중히 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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