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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5주 휴가가는 바캉스의 나라 프랑스

[취재파일] 5주 휴가가는 바캉스의 나라 프랑스
달력이 8월 말을 향해 달려가면서 프랑스도 이제 기나긴 바캉스의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일반화된 바캉스라는 단어는 원래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비어있다' 또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 진다'라는 의미죠.

프랑스 사람들은 이 바캉스를 원래 의미 그대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7~8월에는 파리 사람들은 모두 바캉스를 떠나고 관광객들이 파리를 점령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기점으로 해서 그 다음 주말을 보통 그랑 데파르(Grand Départ : 대출발)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주말과 랑트레(Rentrée : 재시작)라고 하는 9월초 직전의 8월 마지막 주말에 고속도로는 우리 명절 때의 귀성, 귀경 행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엄청난 정체 현상을 빚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철에는 관공서고 뭐고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결국 바캉스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운 것이 프랑스의 여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간 동안 자기 마음대로 바캉스를 떠날 수 없는 업종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동네 빵집인데요, 바케트가 프랑스 사람들의 주식인 만큼 동네 빵집들이 한꺼번에 다 문을 닫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빵집들은 미리 관할 경찰서에 문 닫는 기간을 신고하고 주변의 빵집들과 일정을 조율해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여름 바캉스를 즐기고 오면 프랑스 사람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요? 바로 다음 바캉스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 프랑스나 학교가 쉬어야지 그 일정에 맞춰 바캉스를 떠날 수 있는데요, 프랑스 학교는 사계절에 맞춰 방학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거의 두 달 마다죠. 가장 긴 여름방학이 끝나면 10월 말에는 2주일 동안 가을 방학격인 만성절(Toussaint) 방학이 있고, 성탄절 방학 역시 1월 초까지 2주일 동안 이어집니다. 2월말에서 3월초까지의 2주일은, 요즘은 겨울방학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스키방학이라고 해서 스키를 타러 가는 시즌이었다고 합니다. 또 4월 말에서 5월초까지의 2주일은 봄방학입니다. 그리고는 두 달만인 7월 초 긴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거죠.

물론 그럴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 얘기이겠지만, 바캉스가 끝나면 그 다음 바캉스를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하는 것이 프랑스 사람들의 일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법정 유급휴가가 1년에 5주일인데, 대부분이 여름 휴가에 3~4주, 이후 두 달 마다 이어지는 방학 때 나머지 휴가를 분배해서 소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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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의 이런 바캉스 문화의 이면에는, 나름 치열한 역사적인 전통이 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는 가운데, 독일에서는 극우파가 득세해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고 프랑스 역시 극우파의 세력이 급격하게 확산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독일과는 반대로 1936년 사회당 주도의 인민전선이 선거에 이기면서 좌파정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인 총파업이 벌어지는데요, 그 결과물이 주 40시간 근로제와 2주일의 유급휴가였습니다. 이 때부터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일터로부터 멀리 떠나 여유를 즐기는 바캉스 문화의 단초를 마련하게 됩니다.

학생들의 시위와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점철됐던 68혁명을 통해 1969년 드 골 대통령이 물러난 뒤 유급휴가는 4주로 늘어났고, 이후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1985년에는 주당 35시간 근무, 5주 유급휴가가 법제화돼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5주일의 법정휴가를 모두 바캉스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번 여름 바캉스 시작 직전에 한 여론 조사기관이, 나흘 연속 집을 떠나 여행을 즐기는 것을 기준으로 바캉스 계획을 물었더니 42%가 바캉스를 포기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63%가 바캉스를 떠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만큼 경제위기 여파가 프랑스의 바캉스 문화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우리의 한 가지 중요한 차이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경우 경제적인 여유 때문에 멀리 바캉스를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쉬기는 쉰다는 것입니다. 법정 휴가는 엄연히 있지만,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는 우리의 직장 문화와는 분명히 다른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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