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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원전 "고장 vs 사고"…100% 안전에 도전해야

[취재파일] 원전 "고장 vs 사고"…100% 안전에 도전해야
원자력 발전소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원전이 또 멈춰 섰기 때문입니다. 올 들어서만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관련 기사를 유심히 보신 적이 있다면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해명이 늘 똑같다는 걸 알아챘을 겁니다. 혹시나 해서 제가 한수원의 해명을 다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번 고장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고 고장 0등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발전소 안전성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며 외부로의 방사능 누출 위험도 없다”가 바로 그 해명입니다. 한마디로 경미한 고장이라는 의미인데 한수원이 늘 같은 해명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한수원의 설명은 '사고'와 '고장'을 구분하자는 데서 시작합니다. 가령 자동차가 도로 난간을 들이받고 행인을 쳐서 차가 파손되고 사람이 다쳤다면 ‘사고’...반면 자동차 운행중에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와 정비소를 찾아갔다면 그건 ‘고장’이라는 겁니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원전에서 ‘사고’는 핵연료가 손상되거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경우나 시설에 중대한 손상을 가져오는 경우를 말합니다. ‘고장’은 인명피해나 방사선 환경 피해 없이 부품이나 설비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등의 이상 상태를 뜻한다는 겁니다.

이왕 설명을 시작한 김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죠. 원전의 안전을 관리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를 보면 ‘사고’는 인체에 대한 방사선 장해, 시설에 대한 중대한 손상 또는 환경에 방사선 피해를 유발하는 것으로 사건 등급평가 분류기준상 4등급 이상의 사건을 말합니다. ‘고장’은 인체에 대한 방사선 장해, 시설에 대한 중대한 손상 또는 환경에 방사선 피해를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사건 등급평가 분류기준상 3등급 이하의 사건으로 분류합니다. 여기서 사건 등급평가 분류기준은 IAEA가 정한 겁니다. 0등급에서 7등급까지 8단계로 분류하며 수치가 클수록 큰 사건을 의미합니다. 0등급은 경미한 고장으로 ‘등급이하’, 1~3등급은 ‘고장’, 4~7등급은 ‘사고’로 분류합니다. 이 기준은 1992년부터 전 세계 59개국이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번 울진 원전 1호기 발전정지는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지 않았으므로 일단 ‘사고’가 아닌 ‘고장’이 되는 겁니다. 0등급인 이유는 안전상 중요하지 않은 고장, 즉 원자로 바깥 어디선가에서 발생한 고장이기 때문입니다. 원전은 안전을 조금이라도 저해하는 신호가 발생하면 사고로 확대되거나 피해가 생기기 않도록 자동 정지하게끔 설계돼 있어서 거짓 신호가 들어와도 일단 멈춘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고장이 나도 원자로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한수원의 설명은 그래도 안전하다고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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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원전의 고장, 발전정지가 잦은 편입니다. 7월30일 영광 6호기, 8월19일 신월성 1호기, 그리고 8월23일 울진 1호기...한달새 원전 3곳에서 잇따라 발전이 정지됐습니다. 발전 정지의 원인은 대체로 부품 결함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영광은 제어봉 구동장치 고장, 신월성은 제어봉 전력함 소자 고장, 울진도 터빈 증기 공급 밸브 이상으로 나왔습니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한 교수들에게 문의했더니 “고장이 없어야 하겠지만 원전 한 기에 수백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사전에 고장을 미리 찾아내 점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너무 복잡한 기계라 100%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환경단체 생각은 다릅니다. 고장이 누적되면 언제 어떤 사고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자동차 계기판에 불이 자주 들어오면 당장은 고장으로 분류될지언정 불안해지고 수리비도 많이 들고 결국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방귀가 잦으면 뭐가 나오지 않겠냐는 거죠.

같은 사안을 놓고도 양측의 시각차는 큽니다. 원전 가동률과 이용률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한수원은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뜻하는 지표로 가동률과 이용률을 제시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원전 가동률(연간 실제 가동시간 비율)이 90.3%. 이용률(연간 발전 설비용량 대비 실제 발전량) 90.7%를 기록했습니다. 이용률에선 세계 평균이 79%이니까 우리가 꽤나 높은 편입니다. 한수원은 원전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원전을 많이 가동할 수 있고 그래서 각 발전소마다 출력을 높여 이용률도 높다는 겁니다. 반면 환경단체는 가동률과 이용률이 높아서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전력 수요가 많은 7월을 기준으로 전국 23기 원전 가운데 17곳이 이용률이 100%를 넘었습니다. 한마디로 ‘풀가동’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른바 ‘블랙아웃’을 피하기 위해 원전 출력을 최대한 높여 운영하다보면 고장이 날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겁니다. 이용률이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일지 몰라도 안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니라는 겁니다. 전력 수요가 많아 이용률이 높았던 지난 한달 새 고장이 잇따라 발생한 점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을 강화하고 있고, 특히 고리 원전 사고 은폐 시도 이후 안전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또 11월이면 1983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노후 원전인 월성 원전 1호기를 계속 가동해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원전 전문가들 시각에서는 경미한 고장일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잦은 고장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지 않습니다. 설사 국민들이 '고장'과 '사고'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지라도 후쿠시마의 교훈은 원전은 그 어떤 이유에서든 100% 완벽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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