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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 남편의 눈물이 던지는 메시지는…

[취재파일] 한 남편의 눈물이 던지는 메시지는…
서울추모공원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성폭행범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가정주부의 유족들을 만나서 그들의 아픔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강하게 저를 짓눌렀습니다. 안 그래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받고 있는 유족들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언론사의 이런 취재방식에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힘든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비추고 얼마나 힘든지 물어보고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취재인지, 그리고 의미가 있는 건지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확고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족들에겐 너무 죄송하지만, 너무 죄송해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지만 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 인간의 통제되지 않은 행위로 인해 누군가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다는 것을 알려야 했습니다. 황망한 죽음에 대한 아픔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그 행위가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 알려야 했습니다. 누가 어디서 얼마나 잔인하게 누구를 어떻게 죽였고, 왜 죽였고, 경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보다, 그 행위가 얼마나 잔인하고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더 확실하게 보여줘야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어렵게 유족들에게 다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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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심호흡을 하고 서울추모공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유족들이 있는 대기실 앞에서 다시 한 번 주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들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나. 가슴이 미어지는 유족들에게 "많이 힘드시죠?",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라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대기실 앞에서 유족을 기다렸습니다. 그 순간 한 남성이 휘청거리며 대기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남성은 힘든 발걸음을 옮기려다 대기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내 벽에 몸을 기댔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그 남자의 슬픔이 전해졌습니다. 아내를 황망하게 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남자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용기를 내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인사를 건내고 남자의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모든 걸 다 잃은 듯한 한 남자의 표정을 보니 가슴이 아렸습니다. 목이 메었습니다.

기자에게는 지켜야 할 기본이 있습니다. 평정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 슬퍼도 울어선 안 되고 기뻐도 웃어선 안 된다. 항상 냉정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기자라면 당연히 지켜야할 기본입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기본을 당시에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가슴에 담겨 있던 아픔으로 토로하는 한 남성의 아픔 앞에서 기자로서의 본분에 앞서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앞섰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내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는지, 그날 상황은 어땠는지, 그런데 남편은 세상을 원망하기 보다는 단지 아내에게 미안해 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원한도 없는 한 성폭행범에게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당한 아내에게 지켜주지 못해서,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며 미안해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아내를 그리워하고 그리워했습니다. 아내를 보내는 그의 울분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아직도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목놓아 울지만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아있지 않던 한 남편의 아픔에 가슴이 저립니다.

유족 한 분이 다가와 한 아이를 가리켰습니다. 한 여인의 등에 엎혀 있는 여자아이였습니다. 딸이었습니다. 오늘 오전부터 내내 울고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만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는 잘 있던 아이가 시신을 운구하고 화장장으로 옮기고 부터 엄마를 찾으면서 울고 있다고 했습니다. 유족은 아이가 이제야 엄마의 빈자리가 느끼는 거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아이의 옹알거림이 들렸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엄마를 찾고 있었습니다.  

유족들 사이에서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는 한 남자아이도 있었습니다. 아들이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 사이에서 신나 있었습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이 다시 몰려 왔습니다. 대체 저 아이에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저 아이가 대체 무슨 죄가 있나. 카메라를 보곤 달려와 브이자를 그렸습니다. 그 브이자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브이자를 그리고 부끄러운 듯 몸을 돌려 뛰어가는 순수한 영혼 앞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수원에서도 한 가족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30대 남성이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가장이 목숨을 잃고, 부인과 아들이 크게 다쳤습니다. 한 가장의 장례식장은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영정을 지켜야 할 가족들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지인 몇몇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 지인이 왜 힘없는 서민들만 이런 일을 당하냐며 탄식했습니다. 함께 자문했습니다. 대체 왜... 

기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눈물을 함께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이 가지고온 처참한 결과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모두 함께 느꼈으리라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뜨거워졌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단지 여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필요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 당장 대책이 필요합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겁니다. 단지 대한민국에 살았다는 이유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하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취재에 협조해 주신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저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주셨던 분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유족분들과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명목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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