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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중 수교 20주년: 성년이 된 양국 관계

[취재파일] 한중 수교 20주년: 성년이 된 양국 관계
올해 8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중 두 나라는 정식 국교를 튼 이후 여러 방면에서 눈부신 진전을 이루며 동반자 관계를 다져왔습니다. 하지만 공존번영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성년이 된 한중 두 나라의 관계와 발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새 역사의 개막을 알렸습니다. 수교를 하기까지는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막후 교섭이 있었습니다.

정부간 첫 접촉은 1991년 11월에 시작됐습니다. 당시 중국의 외교장관 첸지천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대표단이 서울에서 열린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이들을 만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중 두 나라가 관계 개선과 수교 실현을 해야한다는 말을 하면서 수교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임기 내에 중국과 옛 소련, 동유럽 등 사회주의 국과들가 수교를 맺을 목표를 세워둔 상태였습니다.

1992년 4월 아태경제이사회가 베이징에서 열렸는데 당시 이상옥 외무부 장관이 첸지천 장관을 만나 한중 관계개선을 위한 실무팀을 만들자고 제안해 성사시켰습니다. 이후 양국은 차관급 인사를 대표로 하는 실무팀을 구성했고 베이징에서 두 번, 서울에서 한 번 모두 세 번의 비밀회의 끝에 수교회담을 타결지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을, 우리나라는 타이완을 의식해 수교협상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습니다. 베이징에선 댜오위타이라는 곳에서 우리 측 협상 대표가 건물 밖에 한발짝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보안을 지켰고, 서울에선 워커힐 호텔 별장에서 역시 중국 측 대표가 몸을 사렸습니다. 특히 우리 측은 수교 협상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동해사업'이란 암호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1992년 8월 24일 양국 외교수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역사적인 한중수교 체결식이 열리게 됐습니다.

서로 간에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양국 관계는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수교 당시 연간 13만 명 수준에 불과했던 양국 방문자 수는 지난 해 66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양국 교역액은 지난 해에만 2천206억 달러로 20년 새 약 35배 증가했습니다. 지난 5월 협상이 시작된 양국 간 FTA가 체결되면 경제적 통합 수준은 더 높아질 전망입니다. 또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한데요, 특히 K팝과 한국 TV 드라마는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이미 중심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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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국은 정치, 외교 분야에서는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수교 후 정상외교와 각종 접촉을 통해 상호 이해를 넓히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사안에 대한 중국의 북한 편향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한 중국의 대처 방식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여기다 탈북자 문제의 인도적 해결을 바라는 한국의 입장을 외면하고 있고 김영환 씨 고문 파문마저 발생하면서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관할권 주장, 동북공정 같은 역사 왜곡 문제도 양국 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급속한 경제 성장에 힘입어 미국과 더불어 G2의 지위에 올라선 중국과의 관계 발전은 필수조건입니다. 우리의 경제, 정치, 모든 면에서 중국과 긴밀히 연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과의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길을 서둘러 찾아야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중국 역시 이제 한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만큼 상대를 존중하는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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