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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십 년째 반복되는 물고기 떼죽음, 이유는?

[취재파일] 수십 년째 반복되는 물고기 떼죽음, 이유는?
요즘 비 참 자주 오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년 만에 가뭄이라느니, 비가 안 와 한강과 낙동강에 녹조주의보가 내려졌다느니 시끌시끌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연일 비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잦은 비 소식만큼 요즘 자주 올라오는 뉴스가 있습니다. 하천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사실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는 경우 많죠. 으례 그럴 때면 양심없는 업자가 하천에 공업폐수를 몰래 방류했다거나, 난파된 배에서 기름이 유출됐다거나 하는 기사가 함께 올라왔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물고기 떼죽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소나기만 왔다하면 어김없이 집단폐사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 사이 서울 시내 하천인 당현천과 불광천, 안양천에서는 잇따라 물고기 수백 마리가 폐사해 둥둥 떠올랐는데요, 모두 한 차례 소나기가 내린 직후였습니다.

이쯤되면 뭔가 일맥상통하는 원인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관할 구청들과 서울시를 취재해본 결과, 담당자들은 이미 원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서 하천 양 옆에 설치된 하수관거에서 생활 오수가 넘쳐 하천에 유입되는 겁니다. 하수관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생활오수와 빗물이 함께 흘러가는 합류식과 따로 흘러가는 분리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 시내 하수관거의 86%가 합류식이다보니, 비가 안 올 때는 생활오수가 물 재생센터로만 흘러가다가, 비가 많이 왔다하면 빗물이 생활오수와 합쳐지면서 하수관거 수용량(시간당 강수량 1.75mm)을 넘어 하천으로 방류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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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기는데요, 시간당 1.75mm 이상 비가 오는 경우는 아주 많은데, 왜 어떤 때는 물고기들이 죽어나가고, 어떤 때는 아무 일이 없는 걸까요? 확인해보니, 비의 양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비가 아예 아주 많이 오면 빗물에 오염물질이 중화되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수관거가 넘칠 정도로만 비가 왔다가 그쳐버리면, 중화되지 않은 오수가 빗물과 함께 하천에 유입되면서 하천의 용존산소가 부족해지고, 이 때문에 물고기 집단폐사가 일어난다는 게 관할 관청들의 설명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서울시 하수관 체계가 정립된 이래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관할 관청 측은 원인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죽은 물고기들을 건져내는 것 외에 사전 예방조치를 취하는 데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얼핏 직무유기처럼 보이는데 왜 그러는 걸까요? 여기엔 예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참에 오수와 빗물을 따로 흘러가게 하는 분리식 하수관거로 모두 바꾸면 오수가 넘쳐 하천에 들어갈 일이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울 시내 하수관거의 총 길이는 무려 1만 3백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시내 전체에 마치 거미줄처럼 설치되어 있는데요, 목동, 개포, 고덕 등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모두 합류식으로 되어 있다보니, 이를 다 분리식으로 바꿀 엄두가 안 나는 겁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서울 시내 하수관거를 전부 분리식으로 바꿀 경우 수십 년에 걸쳐 10조 원 이상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각 하수관거에 완충시설을 설치하는 건데요, 비가 왔을 때 바로 방류하지 않고, 일단 저장했다가 고농도 오염물질을 거른 뒤 비가 그치면 방류하는 원리입니다. 전문가들은 시간당 5밀리미터의 빗물만 저장했다가 방류해도 물고기 집단폐사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완충시설도 비용이 적게 드는 건 아닌데요, 가장 저렴한 설비를 만드는 데 개당 1억 원에서 3억 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 분리식으로 전환하는 것보다는 훨씬 적은 예산이 들겠지만, 주요 하수관거에만 설치한다고 해도 수백, 수천 개가 필요하니 부담이 만만치 않은 건 마찬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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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산이 천문학적으로 많이 드니 하수관거를 그냥 계속 이렇게 방치해야 할까요?

뾰족한 해법은 잘 보이질 않습니다. 딱히 인명 피해가 있는 게 아니니, 생각하기에 따라 물고기 떼죽음 당하는 건 그리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억 단위도 아닌 조 단위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하니, 그런 큰 돈을 들여서까지 물고기를 보호해야하느냐는 의견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생활공간에 자리잡은 하천이 오염된다는 것, 이 하천이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 특히 수십 년째 문제가 반복되고 있고 개선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수십, 수백 년 또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이대로 두고 물고기 사체만 건져내는 게 능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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