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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네, 독도에 나와 있습니다."

광복절 독도 중계를 위한 여정

[취재파일] "네, 독도에 나와 있습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SBS는 독도에서 현장 중계를 했습니다. 14일 '한국령'이 선명한 표지석 앞에서 독도 문제에 대한 리포트를 했고, 15일 광복절의 독도의 모습을 살아있는 영상으로 전했습니다.

광복절은 일본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고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날입니다. 그래서 독도로 향했습니다. 일본의 억지에 대응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나라 방송국이 우리의 영토에 들어가서 당당하게 우리 영토의 이야기를 방송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에게 다시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리포트는 1분 30초. 독도에 있는 현장 기자가 TV화면에 얼굴이 나오는 시간은 길어봐야 20초. 이 짧은 시간을 위해 급하게 꾸려진 독도 중계팀은 지난 12일 독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최소한으로 꾸려진 4명의 중계 기술팀은 휴일인 12일 일요일 아침부터 일산 탄현에서 장비 테스트를 마치고 강원도 강릉으로 출발했습니다. 취재기자 2명, 카메라 기자 1명, 오디오맨 1명으로 구성된 취재팀도 목동 SBS본사에서 강릉으로 차를 몰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유난히 많이 내리는 비를 뚫고 가는 길 내내 배편과 일정을 체크하며 늦은밤 강릉에 도착했습니다. 강릉역 인근에 숙소를 잡고, 바로 향한 곳은 바로 마트였습니다. 독도 중계팀은 최소한 독도에서 2박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독도는 독도경비대와 김성도 부부 이외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입니다. 남자 8명이 이틀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음식을 사러 마트로 향했습니다. 쓰레기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즉석 밥과 물만 부어서 먹을 수 있는 즉석음식과 라면을 주워담고, 20리터짜리 물통도 하나 샀습니다. 물이 귀한 곳인 만큼 우리가 쓸 물을 울릉도에서 떠서 들어갈 계획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식량을 준비하고 강릉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오전 9시 울릉도행 배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전 7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배시간은 아직 여유있었지만, 중계팀은 먼저 항구에 도착했어야 했습니다. 1톤 트럭을 가득 채운 장비를 모두 8명이 손으로 들어서 배로 옮기려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는 여객선이었던 만큼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승선하기전 모든 짐을 다 옮겨 실어놓아야 했습니다. 남자 8명이 들고 옮기고, 들고 옮기기를 반복해 짐을 다 싣고 울릉도행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배 한켠에 쌓여있는 짐을 보며 그래도 8명이 같이 움직이니 할만한데?라며 웃었습니다. 그리곤 모두 그냥 골아 떨어졌습니다.

3시간 10분 남짓 바닷길을 달려 울릉도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항구 인근 민박집에 짐을 풀고 독도에 들어가기 전 일정을 체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후에 독도로 간 배가 독도 인근 바다의 파도가 높아 접안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는 겁니다. 기상상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독도는 입도를 거부했습니다.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상청에, 독도로 들어가는 해운사에, 독도 경비대에 전화를 돌리며 내일 상황을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내일 배가 독도에 가봐야 안다는 겁니다. 기상상태가 좋아도 독도 선착장 앞 바다의 너울이 높거나 바람의 방향이 독도를 향하면 접안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가능성은 높은 만큼 독도로 가는 배편을 모두 알아봤습니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독도 입도를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 안되면 오후에는 뛰어내려서라도 들어간다는 농담을 하며 울릉도에서 독도가 있는 동해의 밤바다를 바라봤습니다.

14일, 화요일 오전 5시 30분. 모두 선잠에서 깨어나 부랴부랴 짐을 다시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독도행 배를 탈 수 있는 항구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넉넉한 민박집 아저씨의 인심덕에 민박집 트럭을 빌려 또 짐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독도행 배를 타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트럭도 직접 몰며 1톤 트럭 짐칸에 올라타고 울릉도의 새벽바람을 가르며 항구로 향했습니다. 다시 짐을 모두 배로 옮기고 독도행 배가 출발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오전 8시. 울릉도를 뒤로 하고 독도를 향해 동쪽으로 동쪽으로 배가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짐 이야기를 좀 해야 겠습니다. 참 짐이 많았습니다. 일단 휴대용 위성장비가 트렁크로 7개였습니다. 여행갈 때 가지고 가는 우아한 트렁크가 아니라 하나에 30~40kg씩 하는 시커먼, 하지만 내몸보다 더 소중하게 다뤄야 할 트렁크가 7개였습니다. 방송용 ENG카메라와 비상시를 대비해 휴대용 영상 전송 장비, 그리고 조명, 밧데리와 각종 방송보조장비가 가득한 무지막지한 무게의 트렁크, 그리고 휴대용 발전기, 남자 8명이 먹을 음식들, 석유 20리터, 독도에서 사용할 물 20리터, 8명 각자 개인 짐과 취재기자들의 노트북 가방들까지... 여객선을 탄 손님들은 "SBS다. 근데 뭐이렇게 짐이 많어?" 라는 말을 연이어 쏟아내며 놀란 토끼눈으로 저희를 쳐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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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도행 일정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화요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자 드디어 독도가 시아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독도다. 드디어 독도에 왔다." 이제부터 더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접안이 안되면 짐은 못 내려도 취재기자 한명과 카메라 기자 한명만이라도 배에서 뛰어내려서 독도에 들어가자고 의지를 다졌습니다. 취재기자 한명은 다짜고짜 선장에게 뛰어 올라가고 나머지 취재기자 한명과 카메라 기자는 흔들리는 배를 뛰어 문 맨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접안해서 내리면 바로 취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습니다. 중계 기술팀 4명은 우리의 무지막지한 짐을 내릴 준비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높은 너울에 배가 독도 선착장에 갈수록 배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철문이 열렸습니다. 강한 햇살이 배안으로 쏟아졌고 "내리세요"라는 승무원의 이야기를 듣자 마자 후다닥 뛰어 내렸습니다. 그리고선 일했습니다. 승객들이 독도에서 머물 수 있는 20분 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나머지 팀원들은 승객들이 내리자 마자 무거운 짐들을 정신없이 배아래로 들어서 날랐습니다. 어느새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다시 배에 태우기 시작하고, 선착장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태우고 왔던 배는 어느새 기적을 울리며 독도를 서서히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거 같았습니다. 조용해진 독도 선착장에는 우리 8명과 무수히 많은 짐들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독도 경비대원들이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독도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우리나라 동쪽 가장 끝에 있는 독도구나"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사진으로만 봤던, 티비에서만 봤던 독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부신 태양, 깍아지는 절벽, 그 절벽을 때리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너무 깨끗한 독도의 푸른 물. 하지만 이마저도 잠시였습니다. 다시 짐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독도 경비대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짐을 옮겨서 펼칠 수 있는 곳은 독도 경비대가 위치한 동도의 정상이었습니다. 그 곳까지 가려면 깍아지는 절벽을 300개가 넘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 계단을 이 많은 짐을 들고 다 올라가야 하나 하는 참담한 현실에서 독도 경비대가 한줄기 희망의 빛을 선사해 줬습니다. 독도 경비대가 물자를 옮길 때 사용하는 케이블카를 빌려줬습니다. 그래서 다행히 무거운 짐은 케이블카로 올리고, 다들 각자 짐만 들고 독도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5도 밖에 안되는 기온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 햇살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온 몸은 곧 땀으로 젖었습니다. 그렇게 오르고 오르니 독도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동해의 망망대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한장 찍었습니다. 그 순간 케이블카로 올라온 짐을 정리하려 모두들 다시 뛰어가야 했습니다.

독도에 드디어 베이스 캠프를 차렸습니다. 서울을 출발한 지 2박 3일만이었습니다. 그래도 참 행복했습니다. 독도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오후로 접어들자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독도 취재를 위해 독도에 입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후에 다시 독도를 빠져나갔고 우리만 독도에 남겨졌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인 8시 중계를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독도를 돌아다니며 중계를 타기 가지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다니고 조금이라도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수십번 리허설을 거쳤습니다. '한국령' 표지석 앞으로 장소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1분 30초의 중계를 현장에서 아무런 사고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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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당일. 새벽 중계를 준비하면서 숙소 문을 여는 순간. 몸이 붕 하고 뜨는 게 느껴졌습니다. 상상하지 못한 강한 바람과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초속 20m에 달하는 강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일단, 중계장비를 펼 수조차 없었습니다. 방송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독도 경비대도 지금 밖으로 나오면 사고가 난다며 숙소 밖으로 나오지 마라고 우리를 말렸습니다. 이런 날씨에 광복절 당일 독도에서 예정된 모든 행사는 모두 취소가 됐습니다. 순간 암담했습니다. 오늘도 중계를 해야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날씨 때문에 모두 숙소에 갇힌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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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숙소 문이 열리더니 독도 경비대장이 김장훈씨 일행이 도착한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수 김장훈씨와 한체대 학생 40여명이 경북 울진에서 독도까지 수영으로 횡단해 왔습니다. 당초 계획으로는 15일 오후 2시쯤 독도에 도착할 예정이었고, 기상상태가 안좋아서 아마 독도로 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당시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예정시간 보다 훨씬 일찍 독도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겁니다. 용수철 처럼 튀어 나갔습니다. 다행히 날씨는 새벽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여전히 파도가 높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견딜만은 했습니다. 눈앞에 김장훈씨 일행이 타고 있는 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메라 기자는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옆에서 "어? 두명이 바다에 뛰어 들었어!"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순간 미친듯이 계단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4m가 넘는 파도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겁니다. 독도 경비대원이 뒤에서 "위험합니다. 그렇게 내려가시면 안됩니다."라고 외쳤지만, 그냥 아래로 뛰어내려갔습니다. 내려가면서 보니 정말 두명이 독도를 향해 수영해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도가 너무 높았습니다. 걱정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독도경비대원들도 놀래서 뛰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독도 인근에 도착한 두 명이 우리를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우리를 보더니 처음 한 말은 "살려주세요" 였습니다. 더 속력을 내서 뛰었습니다. 독도 경비대원들의 안내를 통해 독도를 향해 무모한 용기를 냈던 두 대학생은 드디어 독도에 도착했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감동했습니다. 두 청년의 용기와 패기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너무 멋있어 빛이 났습니다. 태극기를 펼쳐들고 소리를 지르던 두 청년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걸 봤습니다. 두청년의 두눈에서 해냈다는 감격이 밀려옴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 SBS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15일 광복절 중계는 이 두 청년의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이제 일정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것만 남았습니다. 16일은 바다만 바라봤습니다. 날씨는 좋아졌지만, 너울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관광객을 실은, 우리가 타고 나가야 배들이 독도 근처까지 왔지만 높은 너울에 결국 접안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독도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루동안 독도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사용했던 돌계단을 직접 두 발로 걸어보고, 우리의 선조들이 독도에 새겨둔 다른 표지석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도의 아름다운 절경들을 두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었습니다. 돌섬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풀들을 손으로 만지고 독도에서 부는 바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 행복했습니다.

17일, 금요일 드디어 너울도 잔잔해 졌습니다. 아침일찍 부터 선착장으로 짐을 내리고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독도와 그 곳을 힘겹게 지키고 있는 독도 경비대원들과 헤어질 시간이 됐습니다. 참 아쉬웠습니다.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육지에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 함께 독도를 나와야 했던 경비대원의 상태가 너무나 걱정됐고, 너무나 많은 도움을 줬던 독도 경비대장님과 부대장님의 친철과 넉넉한 인심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들을 남기고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멀어지는 독도를 다시 마음에 담았습니다. 

강행군이 시작됐습니다. 울릉도에 잠시 내려 점심을 먹고 다시 강릉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고 강릉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지고 늦은 밤이었습니다. 다시 서울로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다 되었습니다. 독도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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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독도의 절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그 곳이 아름다운 것은 독도에는 우리들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독도를 보기 위해 수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며 독도를 향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헤엄쳐 오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열정. 그리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독도에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독도 경비대원들. 이 곳을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해 독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독도관리소 직원분들. 이들의 모습 때문에 독도가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말 이외에 독도를 위해서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이렇게 멀리서 말로만 흥분했던 이들의 빈자리를 이들이 몸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있는 한 우리의 아름다운 땅 독도는 앞으로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곳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독도를 지키고 있는 독도경비대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독도를 찾는 여러분들 경비대원들에게 조그만 관심과 정성을 더 많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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