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올림픽 기간 뿐만이 아니다. 몇년 전 동료기자가 IT 분야 취재를 위해 해외 취재에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서방 선진국들을 돌아 다녔는데 찾아가는 곳마다 IT 분야는 한국이 가장 앞서 있는데 뭐하러 굳이 외국까지 찾아왔느냐고 되물어 적지 않이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소득 양극화와 실업 문제, 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북 문제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7번째로 인구 5천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다는 걸 보면 다른 개발도상국들보다는 한 발짝 앞서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음을 확인한다"고 선언했다. 경제적 성취와 국제적 위상 제고 등 구체적인 근거들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대부분의 선진국이 2008년 금융 위기 이전 GDP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는 위기 이전보다 10% 이상 성장했고 주요국 가운데 일자리가 2008년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나라는 우리나라와 독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임기 4년 반 동안 국민과 함께 열심히 일한 결과 이 대통령이 2008년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선진화 원년'을 선언했던 대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G20 개최, 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 등 경제적 위상과 글로벌 리더십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 野 "자화자찬" VS 與 "......"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즉각 비난 성명을 내놨다. 임기 마지막 광복절 연설에 서민 경제 위기에 신음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현실적인 대안 제시 없이 자화자찬만 늘어놓았다고 혹평했다. 대통령이 제시한 외형적 통계 수치를 듣고 민생경제의 어려움이 나아졌다고 믿을 국민은 없다고도 했다.
또 경축사에서 나타난 대통령의 안이한 현실 인식과 실제로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고통 사이에는 한강보다 더 큰 '민심과의 불통'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여당은 광복 후 67년간의 눈부신 성취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국민적 의지를 표현하였다고 본다는 원론적인 논평만 내놨다. 임기 내 업적 평가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직접 비판도, 찬사도 없었다.
다만 정권의 공과를 함께 나눌 수밖에 없는 여당의 특수성을 고려한 듯 임기말 국정 관리에 충실하여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민생이 큰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사실 여당의 특수성이 아니라면 그동안 쟁점을 놓고 번번히 마찰을 빚어온 현재 여당 주류인 친박계가 야당보다 더 비판적 혹은 냉소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선진국의 '기준'
선진국이라 함은 '경제개발이 앞선 나라를 후진국·개발도상국에 대비하여 이르는 말'이다. 백과사전에도 "선진국이라는 말은 매우 애매하고 막연하게 사용되는 용어로 이 말을 쓰는 측면의 다양성, 이것을 관찰하는 자의 입장의 차이에서 각각 견해가 달라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라고 적고 있다.
한마디로 어떤 나라가 선진국인지 딱히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학자마다 견해차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촉발된 지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때 한국이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또 수치상 실적이지만 세계에서 7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이 넘는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도 우리 나라 위상이 달라졌다는 객관적 지표 중 하나다.
역시 논란이 많지만 G20 개최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등도 국가적 위상을 제고하는데 어느 정도는 기여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 혼자 잘해서 국제 행사를 개최하게 된 건 아니다. 그간 축적된 국력이 뒷받침 됐다고 봐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겠으나 이 대통령 임기 동안 이뤄진 성과이고 보면 무조건 평가절하하는 것 또한 옳은 접근법이 아니다.
◈ 국민적 공감대가 우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임기 동안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는 건 자칫 옹색해 보일 수 있다. 야당이 당장 '자화자찬'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국민적 공감대로 완성되는 것이다.
또 설사 그런 경제적 성과가 사실이라해도 양극화와 실업, 가계부채 등으로 국민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를 앞세우는 건 국민적 동의를 얻기 힘들다.
지난 1996년 12월, 당시 김영삼 정부는 선진국 진입의 관문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 가입하게 됐다며 국민을 '선진국의 꿈'에 부풀게 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우리 나라는 국가부도위기를 겪으며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선진국을 평가하는 기준은 비단 국가적 위상과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국민의 '삶의 질'이 핵심이다. 또 대북 문제와 외교, 국방 그에 따른 안보 상황, 사회적 민주화의 지표 등 선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복잡다단하다.
선진국 진입은 국제 사회의 인정 만큼이나 구성원인 국민이 느끼고 공감할 때 가능한 문제다. 결코 정치 지도자 한 명이 선언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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