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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잊혀지는 게 두렵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호소

[취재파일] '잊혀지는 게 두렵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호소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공정거래위원회 브리핑실. 지난 해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업체들을 허위 과장광고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공정위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브리핑이 끝날 무렵 뜻밖의 분들이 나타나셨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이들을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던 아버지들이었습니다. 보통 공정위에서 큰 사건을 발표할 때 피해자들을 연결시켜주기도 하지만 이분들은 오늘 발표를 알고 자진해서 찾아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잊혀지는 게 두려워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분들이 오신 이유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큰 파장을 불러온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이미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인 모를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 정부가 발표를 했으니 그에 따라 처리가 됐을 것 아니냐는 것이죠.

하지만 공정위를 찾은 분들은 "지금까지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호소합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말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분들이 폐질환의 원인이라고 발표를 했지만 제조 판매사(옥시레킷벤키저, 홈플러스, 버터플라이이펙트, 아토오가닉, 롯데마트 등등)들의 어떤 사과나 피해 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받은 통보는 환불 조치뿐이었다고 합니다.

제조 판매사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가습기 성분의 유해성분이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는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쥐 실험으로만 밝혀진 것이고, 실제로 인간에게 어떻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법정에서나 정확한 조사 결과를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문제가 돼서 수거는 했지만, 피해 보상에 있어서는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죠. 질병관리본부 쪽에 물어봐도 "그만큼 조사를 했는데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10개월된 딸을 잃은 한 아버지는 분통을 터뜨립니다.

"저희가 솔직히 보상을 바라는것도 아니고요, 저희는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것입니다. 자기네가 잘못을 해서 내 자식을 죽였는데, 자기네는 모르겠다. 또 굴지의 로펌같은거 사가지고 변호해 빠져 나갈 궁리나 하고 있으니 저희 같은 경우는 답답하고 억울한거죠."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한 경우는 34명으로 이 가운데 10명이 사망자입니다. 시민단체에서 접수한 피해자는 170명이 넘고 사망자도 50명 정도로 훨씬 많습니다.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제품을 판매한 업체도, 관리 감독을 허술하게 한 정부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이 피해자들의 고통만 커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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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원료의 유해성 알고 있었다'

공정위 발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조 판매사에 대한 현장 조사에서 공정위가 입수한 '물질안전보건자료'라는 문건입니다.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자세하게 기입하도록 한 이 문건은 원료 제조사가 양도받은 사람에게 주도록 하고 있는 것인데요,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가는 원료에 관한 이 서류에는 '유해성분' '마시거나 흡연하지 마시오'라고 적시돼 있습니다.

특히 이 문건이 제조 판매자에게서 입수가 됐다는 것은 업체들이 유해성에 대한 사실을 전달 받았고 알고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고 공정위는 설명했습니다. 업체들이 '자신들은 몰랐다' '인체에 대한 영향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계속 책임을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건은 업체들의 '고의성'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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