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보면 달걀을 따로 보관하는 곳이 있습니다. 대략 1판(30알) 남짓 들어가는데 냉장고에 달걀이 떨어지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채워넣어야 할 것 같아서 저희 집도 달걀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다 채워놓고는 합니다. 그만큼 달걀은 국민들의 필수 반찬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인당 달걀 소비량은 2010년 기준으로 254개 정도 되는데, 매년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들보다는 소비량이 적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달걀이 말썽입니다. 산지에서는 농가들이 생산 원가도 못미치는 가격을 받고 달걀을 출하하고 있습니다. 달걀 생산 농민들이 말하는 달걀 1개 출하가격은 80원. 하지만 생산비용은 인건비에 사료비 등을 포함해 120원 가량 든다고 하니 개당 40원 가량 손해보고 파는 셈이랍니다. 달걀값 폭락은 어느정도 예견이 됐습니다. 지난해와 지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 AI 파동으로 많은 닭, 오리들이 살처분되다 보니 계란값이 급등했고 계란값이 좋다보니 지난해 농가들이 앞다퉈 사육 마릿수를 늘린 결과 소비량보다 과잉생산이 된겁니다. 현재 달걀 생산량은 소비량보다 30% 정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농가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습니다.
문제는 소비지 달걀값...여전히 비싼 달걀
생산지에서 달걀값이 떨어지면 소비지에서도 값이 떨어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달걀값은 SBS 8시 뉴스에서 집중으로 다룬 뒤에도 한참 후에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대형마트에 보면 달걀 할인 판촉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1달 내내 계란 1판에 3천3백 원’ 특판 행사를 벌이고 있고, 이마트의 경우 자사의 PB 상품을 지난달보다 7.7% 내려 1판에 4,800원에 팔고 있습니다. 롯데마트도 1판에 2천4백 원대에 파는 파격적인 할인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2천4백 원대는 농가들이 실제로 산지에서 받는 가격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걸까요? 알고보면 이런 판촉용 달걀은 미끼 상품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다른 달걀값은 거의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납품 업체들한테 판촉용 달걀을 공급해줄 것을 요청하고, 납품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 대형마트에 이윤도 거의 못남기고 달걀을 공급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달걀을 싸게 할인해 파는 대형마트들은 나은 편입니다. 산지 달걀이 폭락하는데도 달걀값을 내리지 않는 업체들이 있습니다. 일명 브랜드 달걀을 파는 대기업들입니다. 현재 브랜드 달걀을 파는 대기업에는 CJ제일제당과 풀무원, 오뚜기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달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물량 기준으로 하면 5%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대형마트는 물론 심지어 중소형 마트의 가장 좋은 판매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J와 풀무원의 경우 자사의 대표 달걀을 10알에 4,100원에 판매하고 있고, 오뚜기의 경우 3,980원에 팔고 있습니다. 계란 1개당 4백 원이 넘습니다. 일반 달걀값과 비교해도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고, 산지 달걀값과 비교하면 5배나 됩니다.
대기업 브랜드 달걀...과연 비싼만큼 품질도 월등할까?
그렇다면 대기업 브랜드 달걀의 품질은 비싼 값만큼 월등한 걸까요? 취재진이 여러 각도로 접근해 취재한 결과 품질의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브랜드 달걀은 달걀 농장에 OEM방식으로 납품을 받아 농장에서 포장, 유통을 거쳐 소비지에 팔리는데 브랜드 달걀 생산 농장이 대기업 달걀만 생산하는 게 아닙니다. 이들 농장들은 다른 거래처에 공급하는 달걀도 생산하고 농장 자체 상표를 달기도 합니다. 곤지암에 있는 한 대기업 브랜드 달걀 생산업체는 납품처가 수십 곳에 이를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결국 똑같은 농장, 똑같은 집하장에서 생산된 달걀이 상표만 바꿔달고 유통되는 겁니다.
대기업 브랜드 달걀 담당자들은 달걀값이 비싼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선 사료 자체가 다르다는 겁니다. 일반 농장은 보통 사료를 사용하는데, 브랜드 달걀은 비타민이나 목초, 유황 등 특수한 성분이 들어간 사료를 사용해 사료비가 많이 들어가는데다, 위탁 농장들이 HACCP이나 로하스 등 위생기준을 엄격히 관리하다보니 관련 비용이 더 들어가고, 여기에다 50주령 미만의 젊은 닭에서 생산한 싱싱한 계란 가운데 1등급 판정을 받은 계란만 유통시키다보니 달걀의 품질이 우수하다는 겁니다. 등급 판정을 받는 데는 개당 1원의 비용이 추가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비용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브랜드 달걀이 일반 달걀보다 두 배 이상 비쌀 이유는 없습니다. 원래 위탁농장은 규모가 어느정도 되고 품질관리가 되는 농장들이 대부분이고 무항생제 인증이나 HACCP 인증, 로하스 인증도 농장 스스로가 받습니다. 결국 대기업들은 좋은 농장에서 생산한 질 좋은 달걀을 콜드체인시스템(냉장유통시스템)으로 유통시켜 판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한 대기업 브랜드 달걀 담당자는 산지 가격이 변하면 소비지 가격이 변하는 일반 달걀과 달리 자사는 1년 내내 고정 가격으로 농장과 거래하다 보니 산지 가격이 변해도 소비자 가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공식 인터뷰를 했습니다. 달걀값이 폭락한 지금은 고정거래 가격이란 이유를 들어 달걀값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겁니다. 대기업들의 말이 맞다고 해도 지금처럼 달걀값이 폭락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몇 배 비싼 달걀을 사먹어야 하는건지 꼽씹어볼 대목입니다.
산지 농민, 소비자들이 이익을 보는 구조 만들어야
제가 달걀값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애꿎은 산지 농민과 소비자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데 반해 중간 유통업체들과 대기업들은 이익을 보는 비정상적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요즘이 아주 특수한 경우입니다. 대기업들이 1차 생산물인 달걀에 눈독을 들인 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국내 달걀 시장은 1조6천억 원으로 매년 성장해 왔고, 1인당 달걀 소비량이 늘고 있는 추세여서 앞으로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산지 농민이 마음껏 생산에 전념해 제 값을 받고,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농축수산물을 사먹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농업의 현실에서 이런 구조를 만드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과의 FTA 체결로 농업은 다른 산업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조금이라고 오르면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수입에 열을 올리고 반면 가격이 급락하면 별다른 대책이 없는 정부. 이번 달걀 파동에서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가 내놓은 대책은 없습니다. 애꿎은 농협이 수 천만 원을 들여 달걀 35만 개를 구입해 220여 곳의 서울시내 무료급식소에 보급한다는 게 대책의 전부입니다.
달걀은 소나 돼지, 닭과는 달리 99% 자급하는 몇 안 되는 품목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먹거리이고 국민들이 즐기는 이른바 ‘국민 반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취약계층, 특히 독거노인들은 단백질 섭취가 일반인들의 3분의1 밖에 안 되는 현실에서 어린이와 노인 등 취약계층에 계란을 통한 단백질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영양학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입니다.
달걀은 일반 식품과는 달리 생명을 직접 만드는 데 관여하는 영양 성분들을 골고루 함유하고 있습니다. 우유, 콩 등도 좋은 식품이지만 달걀이야 말로 영양학적으로 봤을 때 가장 완벽한 식품입니다. 생산 농가들이 더 이상 맘 상하지 않고 품질 좋은 달걀 생산하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유통 체계 전반을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또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대기업과 대형 유통업체들이 자발적으로 계란 소비촉진 운동을 벌인다면 농가와 소비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아울러 정부도 달걀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대기업들이 달걀 시장에서 독과점 하지 않도록 법령을 다듬고 좀 더 선진화된 유통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유통센터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