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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먹구구식' 면허 거래

[취재파일] '주먹구구식' 면허 거래

개인택시 면허가 어떻게 발급되는지 아십니까?

보통 개인택시 면허는 회사택시 영업을 4년 넘게 한 사람 중에 무사고 운전 경력이 3년 이상 되면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관할 지자체에서 발급을 하게 되는데, 사실 요즘은 이런 식으로 개인택시 면허 발급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습니다. 전국적으로 개인택시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국의 택시 숫자는 25만 5천여대 정도인데, 이 가운데 16만 5천여대가 개인택시입니다. 정부는 이미 택시 수가 너무 많다고 보고, 2014년까지 1만4천대 정도를 줄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택시 신규 면허를 되도록 늘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실제로 전국적으로 1년간 새로 발급되는 개인택시 면허 건수는 3백여대에 불과합니다. 서울에서는 지난 1999년 이후 13년째 신규면허 발급이 중단된 상탭니다. 현재 개인택시면허 발급 요건을 충족시키고도 면허를 받지 못한 대기자가 서울에서만 5백여명에 이를 정도입니다. 이러다보니 최근 면허 대기자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출근길을 막고 신규발급을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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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개인택시 영업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현재로선 면허를 사는 방법이 가장 빨라보입니다. 개인택시 면허는 여객운송법상 일반 재산과 똑같이 취급됩니다. 면허와 차 번호판을 합쳐 현재 8천만원 정도에 거래됩니다.(물론 택시 차값은 별도입니다.) 아무나 개인택시 면허를 살 수 있는 건 아니고, 역시 무사고 운전 3년 경력이 필요합니다. 면허를 팔 수 있는 자격도 있습니다. 개인택시 영업을 한 지 5년이 넘거나 건강 문제 등 불가피한 이유로 더이상 택시영업을 할 수 없을 때 면허를 팔 수 있습니다. 면허를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하는 사람이 만나 거래를 하고, 이를 관할 관청에 신고하면 면허 인허가가 넘어가게 됩니다. 보통 매도인과 매수인이 서로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매매 중개업체를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면허 거래 과정이 굉장히 허술하다는 점입니다. 보통 부동산 거래를 할 때 공인중개사를 거치게 되죠? 하지만 이 택시 면허 거래에는 공인중개사가 없습니다. 매도인과 매수인이 서로 만나기 힘들어 중개인을 통하는 건 비슷한데, 중개 공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사기 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최근 충북 청주에서는 택시기사 12명으로부터 개인택시 면허 매매를 의뢰받은 중개상이 서류를 위조해 면허를 넘긴 뒤 돈을 챙겨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청주 뿐 아니라 서울 등 다른 곳에서도 종종 비슷한 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단지 공인 중개사가 없기 때문이어서일까요?

취재를 해보니 더 심각한 헛점이 있었습니다. 사기 피해를 당한 청주 택시기사들의 경우 본인 확인에 필요한 신분증이나 인감 등을 중개인에게 넘긴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중개를 해달라는 의사표시를 했을 뿐인데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 면허가 넘어가 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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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매도인과 매수인의 거래를 보고 면허 양도 인허가를 내주는 관할 관청이 본인 확인을 제대로 안한 겁니다. 사기를 친 중개상은 면허 매도인의 도장을 위조해 마음대로 거래 계약서를 작성하고, 매수인들로부터는 돈을 받은 뒤 시청에 신고했는데, 시청에서 이 위조도장에 속아 인허가를 내줬습니다.

명백한 시청측 귀책으로 보이죠? 하지만 정작 관할 청주시청은 결과적으로 면허 양도 인허가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과정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현행 국토부 지침을 따랐다는 건데요, 취재를 해보니 황당하게도 청주시청측 해명이 맞았습니다. 현행 여객운송법상 택시 면허 거래시 인감증명서나 신분증 제출 같은 본인 확인 절차가 없었습니다. 거래과정에 필요한 건 개인택시 운송사업 면허증과 택시운전자격증명 두개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개인택시 운송사업 면허증 원본은 보통 택시기사 본인이 아닌 개인택시 조합 지부에서 관리하다보니, 중개상이 지부에서 받아 사기를 치는 건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결국 아무 도장이나 만들어 위조해도 가려낼 방법이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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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기 피해를 당한 택시 매도자와 매수자들은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1억원 가까운 택시 면허를 날려버리게 된 면허 매도자들은 앞이 캄캄한 상황입니다. 70대 고령에 암까지 걸려 택시를 그만두려던 사람, 택시기사였던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인 면허를 물려받은 사람 등 모두 잃어버린 면허를 찾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안타깝기는 면허 매수자들도 마찬가집니다. 개인택시 영업을 하려고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면허를 샀는데, 아직 매도자들로부터 차 번호판을 못받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이젠 같은 사기 피해자인 면허 매도자와 매수자끼리도 서로 소송을 걸며 싸움이 벌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안타까운 상황을 정작 허술하게 면허를 넘긴 관할 관청은 팔짱끼고 지켜만 보고 있고요.

헛점투성이인 면허 거래 과정, 손 좀 봐야 하지 않을까요? 택시가 포화 상태라 면허 신규발급이 안된다면, 그 거래 과정이라도 관청이 책임지고 감독해야 하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감독이 허술한 틈을 타 제 2, 제 3의 사기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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