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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겉 다르고 속 다른 우리 정치

[취재파일]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겉 다르고 속 다른 우리 정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결국 폐기됐습니다. 민주통합당이 뒷통수를 맞은 것인지, 새누리당이 위기를 모면한 것인지, 결과는 더 두고 봐야 명확해지겠지만 이래도 저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국무총리를 여야가 '이용'했다는 겁니다.

민주통합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의 책임을 지고 김황식 국무총리가 사퇴해야 한다며 해임건의안을 제출했습니다. 해임건의안은 "국회에 보고된 때로 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한다"는 법규정에 따라 21일이 처리시한이었습니다. 그러나 21일이 토요일이고 본회의도 소집되어 있지 않아서 20일이 사실상 처리시한이었습니다.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단은 강창희 국회의장을 찾아가 '총 리해임건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이것이 기사화된 20일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장실이 느낀 민주통합당의 속내는 '우리는 촉구를 할 터니이, 당신은 그냥 촉구만 받고 가만히 있어달라'였습니다. 총리해임건의안 상정이 안 됐다면서 대정부질문을 무산시키고 그러면서 국회 일정을 뒤로 미뤄 7월 임시국회가 끝나도 8월 임시국회를 만들 명분을 갖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는 겁니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도 국회의장에게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의 책임을 지고 총리를 사퇴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결국 민주당이 8월 방탄국회를 열려는 꼼수다'라며 해임건의안 상정을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여기도, 국회의장실이 느낀 속내는 달랐습니다.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상정을 놓고 여야가 계속 기싸움을 하게 되면 대정부질문도 무산되고 파행국회라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 뻔하니, 절차를 통해 일을 해결할 방법을 열어달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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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희 국회의장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법에 72시간 내 처리한다고 돼 있으니 상정을 하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졌을 때 기자실은 술렁였습니다. 국회는 늘 법 조문 해석을 놓고 편의대로 해석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단순하게 법 해석을 하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이번 일도  "72시간 내 처리한다"는 조항을 놓고 새누리당 내 일각에서는 "처리해야 한다"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두면 자연히 폐기되도록 하는 게 법 의도라는 해석도 나왔었습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법조문의 의도를 두고 편의대로 해석하는 것에 익숙해졌었는데, 어떤 해석 없이 그냥 법이 하란대로 하는 것이 신선했던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여야의 반응이 예상밖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통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려 했다면서 교섭단체간의 합의로 이뤄지던 의사일정 관행을 국회의장이 깬 것은 유감'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새누리당이 합의를 해줄 수 없으니, 그 보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은근히 희망해 놓고는 국회의장을 비판하는 논평으로 입장을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죠.

민주통합당은 강창희 국회의장이 박지원 원내대표의 체포동의안이 오면 상정해 처리하려는 속셈으로 앞서서 민주통합당이 요구한 총리 해임건의안을 상정해주는 선례를 만든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의 뜨악한 반응도 이상한 것이죠. 분명히 국회의장에게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상정해 달라고 단체로 찾아가서 촉구까지 해 놓고서 상정을 하니까 '왜 했냐'고 따지는 거니까요.

결국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불편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표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아 표결자체가 무효가 됐고, 해임건의안도 '폐기'됐습니다. 결국 어떻게 해도 상정을 해도, 상정을 하지 않아도 총리 해임건의안은 성립이 어려운 안건이었습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 정치행위의 필요조건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뜻을 알리고 명분을 쌓아 가는 것도 정치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 하루 만에 그 뜻과 명분이 '포장'된 것임이 드러나는 이런 상황은 우리 정치에 또 한번 염증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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