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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못살겠다 갈아보자'에서 '국민성공시대'까지

역사를 바꾼 한 줄의 승부, 대선 슬로건

[취재파일] '못살겠다 갈아보자'에서 '국민성공시대'까지
역대 대선의 승부를 갈랐던 여러가지 변수들 가운데 '슬로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슬로건이란 우리말로 하면 표어 정도가 될 텐데요, 사전적 의미로는 대중의 행동을 조작하는데 쓰이는 짧은 문구입니다. 대표적인 걸로는 칼 마르크스의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조시 부시 미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 대선사에서도 숱한 슬로건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면서 역전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대선을 좌우했던 한 줄의 승부, 슬로건들을 정리해봤습니다. 

1956년 3대 대선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슬로건의 효시

우리 대선 역사에서 슬로건의 효시는 1956년 3대 대선에서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게 중론입니다. 당시 민주당은 이승만 정권의 3선 개헌에 이은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내걸고 민심을 파고 들었습니다. 놀란 자유당이 '갈아봤자 별 수 없다'로 맞섰지만 5월 3일 신 후보의 한강 백사장 연설에 30만 명의 인파가 말 그대로 구름처럼 몰려들 정도로 슬로건의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신 후보는 이틀 뒤 광주 유세를 위해 타고 가던 열차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둡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이렇게 미완의 슬로건이 됐지만 민중들은 신 후보를 추모해 대선 투표지 신익희 칸에 180만 명이나 무효표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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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이후 전두환 대통령까지의 군사정부 시절 암흑기를 거쳤던 정치 선전은 87년 13대 대선에서 다시 꽃을 피웁니다. 민주화 열망이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지면서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각축을 벌였는데요, 하나회 출신인 노태우 후보가 '보통 사람'이라는 '역설적인' 슬로건으로 3김 문민 후보를 꺾었습니다. 당시 3김 후보는 하나같이 '군정 종식'을 주장했지만 후보 단일화 실패에 묻혔습니다. 

92년 14대 대선은 3당 합당으로 여권 주자가 된 김영삼 후보의 '신한국 창조'와 김대중 후보의 '이제는 바꿉시다'가 맞붙었습니다. 당시 김영삼 후보는 '3당 야합'이라는 비판을 '신한국 창조'라는 미래 가치 슬로건으로 정면 돌파했고, 그 결과는 김영삼 42.0% 대 김대중 33.8%, 190여만 표 차이로 김영삼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국민 열망을 관통하다, '준비된 대통령'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성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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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15대 대선 이후로는 시대 흐름과 국민의 열망이 슬로건에 본격적으로 녹아들기 시작합니다.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진 97년 대선은 이른바 외환 위기 와중에 치러졌습니다. 최대 화두는 당연히 경제위기 극복이었고, '준비된 경제 대통령'을 내건 김대중 후보가 대쪽 이미지로 '깨끗한 정치'를 내건 이회창 후보를 꺾고 대권을 잡았습니다.

5년 뒤 이회창 후보는 '나라다운 나라'를 슬로건으로 대권 재수에 나섭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이번에는 '바보' 노무현 후보에 막혀 분루를 삼켰습니다. 노 후보의 슬로건, 즉 반칙과 특권이 없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민의 바람과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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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서는 경제적 성공을 원하는 3, 40대의 갈망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이 후보는 '국민성공시대,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실용정부' 등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당시 베스트셀러도 '성공'과 '처세'란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런 흐름을 슬로건으로 녹여낸 이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큰 표차로 이겼습니다. 정 후보는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들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가슴에 와닿는 슬로건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SNS 시대, 후보의 이미지·삶의 궤적·시대정신과 맞아야 좋은 슬로건

이렇게 대선승리를 이끈 슬로건들은 후보의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시대흐름과 국민의 바람을 파고들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 시대인 18대 대선에서는 어떨까요? 전문가들은 트위터 등 단문서비스가 대세인 요즘, 간결하게 잘 만들어진 슬로건은 2, 30대 유권자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슬로건의 여운이 오래 남지는 않겠죠. 후보의 이미지나 삶의 궤적, 그 시대 다수의 갈망과 거리가 있는 슬로건은 한복이 어울리는 사람이 양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어색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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