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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눈 앞에서 성추행범이 잡힌 순간

[취재파일] 눈 앞에서 성추행범이 잡힌 순간
대학 다닐 때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성추행범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어디를 만졌다더라, 누구는 어디를 어떻게 했다더라, 흉흉한 소문이 많았지요. 한 번은 직접 본 적도 있습니다. 충무로역이었는데 제 또래 돼 보이는 여학생 2명이 승강장을 걸어가고 있었죠. 반대 편에서 아저씨 한 명이 걸어왔는데, 갑자기 팔을 들더니 여학생 한 명의 허벅지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자연스럽게 벌어진 상황이어서 여학생은 '꺅' 소리만 지르고 아무런 대응을 못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 해야할까요. 성추행범은 그 짓을 저지르고 씩 웃으며 계단 아래로 사라졌는데, 그 웃음이 너무 모욕적이고 역겨워서 한동안 기억났습니다.

지하철 경찰대에서 여름철을 맞아 성범죄를 집중한다고 해 동행취재를 하게 됐습니다. 취재팀 목적은 일명 '변태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자'였습니다. 근데 사실 성추행범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막상 작정하고 취재 하려들면 이상하게 자취를 싹 감춰버립니다. 이런 취재가 쉽지 않은 걸 알아서, 저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사실 시작단계부터 큰 기대는 안 했습니다. 아침 출근시간에 지하철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지옥철에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데, 티나지 않게 성추행범을 촬영한다는 건 그냥 운에 맡기는 수밖에요.

경찰관과 함께 승강장에 서서 행동이 수상한 사람을 찾는데, 노련한 경찰관 눈에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공치는구나 싶었죠. 출근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계속 기다리다간 지하철이 한산해질 것 같아서, 동행한 경찰관에게 일단 그냥 지하철을 타보자고 말했습니다.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강남역 방향 전철을 탔습니다. 사당역에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한번 우르르 타고 내리더군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갑자기 제 앞에 서 있던 경찰관이 어떤 남자를 가리키며 취재팀에 신호를 보냈습니다. 왔구나! 싶었죠.

제 키가 워낙 작은 데다가 객차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남자 얼굴은 안 보이고 뒤통수만 보였습니다. 뒷모습으로 봐선 30대 초반쯤 됐을 것 같은 젊은 남자였는데 어떤 여자 뒤에 서 있었습니다. 머리밖에 안 보이니 도대체 머리 아래선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왜 저럴까 싶을만큼 주위를 두리번대더군요. 

한동안 그 남자를 주목하던 경찰관들이 휴대전화로 남자를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재팀도 덩달아 바빠졌죠. 준비한 카메라로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갔습니다. 남자는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여자가 옆으로 움직이면 따라서 옆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정도면 확신범입니다.

잠시 후, 전동차가 정차한 틈을 타서 경찰관이 남자와 여자 사이를 가로막더니 여자분을 뒤쪽으로 데려 오더군요. 그리고 소곤소곤 몇 마디 주고받았습니다. 남자가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강남역에 도착할 때쯤 경찰관이 남자 등에 대고 뭔가 얘기하더니 팔을 붙잡고 데리고 내렸습니다. 사당역부터 내내 여자의 등과 엉덩이를 부비고 만지다 현장에서 딱 걸린 거죠.

경찰이 남자를 데리고 서서 몇 가지 조사를 하는 동안, 피해자인 여자분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여자분 말이 뒤에서 누가 자꾸 손으로 만지는 것 같은데 사람이 많아서 그냥 참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참는 내내 얼마나 불쾌하고 짜증이 났을지 그 기분 말 안해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피해자는 고소장을 작성한 뒤 먼저 돌아갔고, 성추행범은 지하철 경찰대 사무실로 끌려와 조사를 받았습니다. 성추행범은 35살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왜 그랬나 궁금해 물어봐도 고개만 푹 숙이고 아무 말도 안 하더군요. 나중에 들었는데 저희 카메라 기자 선배에게 남자가 그걸 물어봤다고 합니다. 피해자와 '합의'할 수 없냐고 말이죠.

남자는 성폭력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 공중 밀집장소 추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올해 들어 경찰이 적발한 성추행이 6월까지 465건 입니다. 날이 풀리는 4월부터 여름 사이에 발생 건수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하는데, 통계를 보면 한 주 중 금요일, 오전 8시에서 10시까지 출근시간대,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에서 성추행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따라다니면서 성추행범을 잡아주면 좋겠지만, 성추행은 그 누구보다 피해자가 가장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피해를 당하면 참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세요.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잠깐 내렸다가 다음 전동차로 갈아타는 것도 현명한 방법입니다. 아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성추행은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만 가해자가 처벌받는다는 점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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