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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 땅 통행금지"…도로에 울타리가?

[취재파일] "내 땅 통행금지"…도로에 울타리가?
집으로 향하는 길, 수십 년 동안 걸어 다녔던 길이 하루 아침에 막혀서 다닐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요. 새삼 이 길에 주인이 따로 있어서, 갑자기 주인 허락 없이는 다닐 수 없게 됐다... 이런 황당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마을 주민들이 보내준 사진 한 장. 마을로 들어서는 도로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습니다. 2층짜리 집 앞에 마치 앞마당인 것처럼 도로를 막고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사람 한 명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만 나 있었는데, 가뜩이나 경사진 도로에 통로마저 좁다보니 마을 안 쪽에 사는 주민들은 조심조심 지나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민들은 1주일 전부터 말뚝이 생기고 사흘 전부터 울타리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지난 40년 동안 지나다녔던 길이라는데,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마을에 찾아가 봤습니다. 마을로 들어서는 작은 입구에 폭이 6미터 정도 되는 도로가 나 있습니다. 지난 2008년 마을 입구의 집을 산 주인이 집 앞의 도로까지 같이 샀다고 합니다. 행정 구역 상 '도로'는 아니고 개인 사유지인 셈이지요. 문제는 이 마을 안쪽엔 5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모두 이 도로를 통하지 않고서는 집으로 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집 주인은 지난 5월부터 갑자기 담벼락에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이 도로는 폐쇄될 예정이니 차량 이용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뜬금없는 통보에 무슨 일인가 싶더니, 2달 뒤에 도로 한복판에 말뚝이 박히고 울타리가 생겼습니다. 집주인 말대로 차량은 들어설 수도 없고, 주민들도 겨우 드나들 정도의 통로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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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집주인을 찾아가 무슨 일인지 따져 물으려 했지만, 집 주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집에 세들어 사는 입주민들도 잘 모르겠다는 반응 뿐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우선 동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동사무소에는 '민원을 받을 수 없으니 시청에 문의하라'고 했답니다. 주민들은 별 수 없이 시청 민원실을 통해 담당 부서에 찾아갔는데, '집 주인이 땅 보상금 문제로 갈등이 있어 울타리를 친 것 같다'고 설명해 줬다고 합니다. 대체 땅 보상금은 무슨 말이고, 보상금과 울타리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요.

주민들이 만났다는 시청 직원을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집과 도로를 사들인 땅 주인은 도로가 개발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에서는 정작 개발 계획만 잡혀 있을 뿐,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도로를 개발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사업들이 많았고, 예산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계획만 잡혀 있는 상태로 10년이 지나가는 장기 미집행 사업의 경우 시에서 땅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 보상금 때문에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이상하게도 땅주인이 사들인 도로의 '행정구역'은 집 앞으로 나 있는 도로와 집 안의 마당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행정구역에 따라 보상을 해 주려면 도로 부분은 '현황도로' 기준에 따라, 마당 부분은 '대지' 기준에 따라 보상금이 책정되야 합니다. 지난 2007년 감정평가를 해본 결과, '현황 도로'에 대한 보상금 기준은 1제곱미터 당 50여만 원, '대지'의 보상금 기준은 1제곱미터당 160여만 원으로 무려 3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겁니다.

땅주인은 이 보상 기준이 부당하다며 보상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10년 넘게 개발사업이 진행되지 않은 것도 화가 나는데, 보상금은 예상보다 적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매년 이 땅에 부과되는 재산세는 모두 '대지'를 기준으로 책정된 공시지가에 근거를 두고 받으면서, 보상은 '현황 도로'를 기준으로 3분의 1 수준에 받는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땅주인은 급기야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을 거면 내 땅에 대한 권리라도 행사해야겠다면서 '차량 통행을 제한한다'며 현수막을 내걸었고 두 달 뒤 울타리를 설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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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는 좀 복잡해 보이지만 정리해 보면, 땅 보상금 때문에 울타리가 생긴 겁니다. 땅주인이 시청의 행정에 불만을 표출한 거지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시청에 다시 물었습니다. 하지만 땅 보상 기준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이 땅주인의 주장에 쉽사리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땅주인이 원치 않으면 강제로 보상 협의를 할 수 없는데다, 추후 도로 개발사업을 시작할 때에야 도로 수용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땅을 시에서 관리하는 '도로'로 개발하기 까지는 적어도 3, 4년이 더 걸린다는 설명입니다. 이 땅이 사유지인 이상 울타리 설치도, 철거도 모두 땅주인 마음인지라, 강제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고 합니다. 경찰도 땅주인이 설치한 울타리로 인해 '통행 방해죄'가 성립할 경우 땅주인에게 벌금을 부과할 수 있을 뿐 철거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도로 사업이나 땅 보상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주민들이 울타리 철거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국가 기관이 나서서 철거를 강요할 수도 없는 사정이라니, 주민들의 불안은 커지기만 합니다. 사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좀 놀랐습니다. 마을 안쪽에 살고 있는 50가구의 주민들이 대부분 50대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걸음이 더딘 어르신들이 간신히 통로를 지나는 것 만해도 불안한데, 당장 일주일 째 정화조 청소 차량이 진입하지 못해 악취가 나는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폐지를 수집해서 생활하는 할아버지는 폐지를 실은 수레를 끌고 나가지 못해 생계가 끊겼습니다. 이러다가 불이라도 나면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할 것이고,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마을 입구까지 걸어나와야 구급차를 탈 수 있습니다. 땅주인이 아무리 화가 많이 났다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울타리를 꼭 쳐야만 하는 걸까요.

땅주인과 어렵게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너무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주민들이 불편해 하실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도로 개발을 둘러싼 시의 부당한 처사가 꼭 좀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땅주인의 진심을 오해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울타리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고작 1미터 높이의 철제 울타리가 마을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수십년간 다녔던 도로를 폐쇄하고, 지자체의 보상기준까지 바꿀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다는군요. 예전에 땅값이 저렴했을 때는 땅주인이 도로에 대한 권한 행사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많지 않았는데, 땅값이 뛰고 보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니, 하루 아침에 울타리가 나타난 마을이 꽤 많다고 합니다. 당황스럽고, 어이없고, 불안하고... 그리고 우리가 부끄러워 해야 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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