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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도착 박지성, QPR행 임박…'슬픈' 이적동의?

英 도착 박지성, QPR행 임박…'슬픈' 이적동의?
'카가와 신지에 밀려 퀸즈파크 레인저스나 가야하다니, 슬프다…'

지난 이틀 동안 박지성의 이적설과 관련된 기사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반응 중 하나다. 한국 선수 영입계획을 공표한 퀸즈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의 유니폼을 입을 선수가 박지성이라는 사실은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일부 팬들은 박지성이 '토사구팽' 당했다는 분노까지 표출하고 있다. 박지성은 정말 카가와에 밀려, 슬프게 맨유를 떠나, 어쩔 수 없이 QPR로 간 것일까.

한국시간으로 8일 새벽 6시(현지시각 7일 새벽 2시) 영국 런던에 도착한 박지성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채 급히 공항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BBC'를 비롯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7일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 QPR로 이적하는 것에 합의했으며 메디컬 테스트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극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박지성의 QPR행은 9일 예정된 구단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프로 선수들이 새로운 계약서에 사인 할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는 이적 후 예상되는 '손익계산서'다. 손익계산서가 철저하게 경제적 득과 실을 따지는 재무재표라는 점에만 집중한다면 박지성의 QPR 이적은 카가와에 밀렸다기 보다는, '손'보다는, '익'이 많아 보인다.

# 맨유의 숨은 영웅에서 QPR의 중심으로

영광과 안위과 보장된 대기업에 다니면서 존재감 없는 사원으로 남는 것과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에서 중견급 간부가 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맨유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이며 실제로 브랜드 가치 역시 몇 년 동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위대한 업적도 포함되어 있다.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등 명문 클럽의 선수들은 종종 "이 팀의 셔츠를 입는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며 브랜드 가치를 뛰어 넘은 그 이상의 '무엇'을 강조한다. 맨유의 '붉은 셔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이 조직과 개인의 문제로 치환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회사의 이익과 영광이 반드시 나 자신의 부와 명예로 직결되지 않는다. 일례로 박지성은 2007/2008 시즌 맨유가 '더블'을 달성할 당시 팀의 핵심멤버 중 하나였지만 정작 시즌 최고의 무대였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본인 또한 몇 년이 지난 뒤에 "당시 챔스 결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였다"고 털어 놨었다. 맨유에서 박지성은 인정하기 힘들어도, 어떤 순간에는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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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한 가지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맨유 제국'이 영원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맨유 출신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의 코치를 맡고 있는 게리 네빌은 최근 "맨유 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그런 주장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맨유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구심이 조성되고 있음의 방증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 있으면 떠오르는 것도 있다. 맨시티가 그랬다. 중요한 것은 결국,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만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2011/2012 시즌을 리그 17위로 마감하며 겨우 강등을 면했던 QPR이 중위권 이상의 성적만 거둬도 박지성의 합류는 다음 시즌의 가장 성공적인 영입 중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너무 성급하게 '브랜드 네임'만을 가지고 박지성의 이번 이적이 단순히 마이너스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 로테이션은 옛말, 멀티 플레이어이자 즉전력

박지성이 지금 세계 축구계에서 어느 정도의 레벨인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연하게도 메시나 호날두급의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축구 재능이 그저 묵혀 두기에는 아까운 '상위 레벨'의 그것임은 분명하다. 물론 박지성은 축구 선수로서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다. 한 경기에서 10km 이상을 거뜬히 뛸 수 있는가 하는, 박지성 최전성기 시절의 능력치 같은 것들에는 분명히 변화가 있다.

하지만 퀸즈파크 레인저스는 매 경기 맨유만큼이나 승리가 절실한 팀이다. 단순히 '이름값'만 보고 선수를 영입하기에는 팀으로서도 위험부담이 크다. 박지성의 몸 상태가 메디컬 테스트를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의 그것이라면 그는 적어도 리그에서 10경기 이상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다.

QPR은 팀의 주장이자 중원 사령관인 조이 바튼이 2011/2012 시즌 맨시티와의 마지막 경기서 비신사적인 행위로 FA의 징계를 받았다. 다가오는 8월 개막하는 2012/2013 시즌 초반 무려 10경기에 나올 수 없다. 박지성은 즉전력이다. 더욱이 멀티 플레이어다. 팀과 선수 모두 '윈-윈'할 수 있다. 박지성이 '이름'보다 '실리'를 택했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축구계에서 '이름'만을 택한 선수들이 종종 어떠한 결과를 얻게 되는 지는,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익히 알려져 있다.

# 이전 팀+이적할 팀+선수가 모두 '윈-윈'

박지성은 2014년까지 맨유와 계약을 맺고 있지만 나이와 기량저하 등을 감안할 때 어떤 면에서 자유계약 선수에 가깝다. 물론 향후 박지성을 이적료 없이 영입할 수 있는 상황이 왔을 때 이에 '혹'하는 구단들도 많을 수 있다. 박지성 정도의 경험을 가진 선수를 공짜로 영입할 수 있다면, 중국 광저우가 어느 정도의 연봉을 제시 할런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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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44억에 추가로 44억의 옵션이 붙은 이적료는 QPR이나 맨유 모두에게 이익일 수 있다. 매수자와 매매자가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거래란 흔치 않다.

우선 맨유로서는 박지성이 맨유에서 은퇴했을 경우 팀 전력에서 제외됨과 동시에 '0'으로 끝났을 항목에서 최소 44억의 이익을 얻었다. QPR의 경우 당장은 표면적으로 44억을 지출했지만, 이 지출이 적어도 마이너스가 되진 않을 것이라는 점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QPR은 한국 선수 영입을 발표하기 위해 미디어에 보낸 보도자료에서, 정작 선수의 이름은 밝히지도 않았으면서 "이 영입이 우리 클럽을 '글로벌'한 존재로 끌어올릴 것이다"고 자신했다. 박지성 영입이 가져 올 마케팅 효과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박지성 본인도 이 거래에서 이득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손해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그의 계약내용을 '대체로 주급 6만 파운드(한화 약 1억원)+3년 계약'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박지성이 지금 맨유에서 받는 대우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며 QPR 내부적으로는 최고 대우에 속한다. QPR이 구단주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등에 업은 '제 2의 맨시티'라는 점은 박지성에게 이런 최고 대우를 약속하는데 결정적 원동력이 됐다. 이미 축구경력에서 어느 정도 정점을 쌓은 그가 수준 아래의 클럽으로 이적하면서 금전적인 부분까지 손해를 봤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 그러나… '섭섭하다'

박지성 이적에 대한 영국 현지 팬들의 반응은 의외로 명확한 편이다. '아쉽지만 잘 가라, 고마웠다'는 맨유팬들의 격려와 '너무 좋다, 잘 왔다'는 QPR 팬들의 환영인사. 이렇게 잘 헤어지기도 힘들어 보인다. 사랑하던 연인에게 하루 아침에 이별통보를 받은 것 같은 한국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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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다, 슬프다'는 말에는 경제적 이익 그 이상의 가치들 때문에 남는 아쉬움이 함축되어 있다. 수치로 환산할 순 없어도 이러한 가치들은 때론 연봉이나 이적료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가진다. 이제 박지성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맨유맨 박지성'을 향한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퀸즈Park 지성'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과 마주해야 한다.

다만 박지성이 카가와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QPR로 이적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QPR 이적이 결국 마이너스였다면, 박지성은 최악의 경우 이적 거부권을 행사 할 수도 있다. 손해 날 계약을 이제 막 입단한 포지션 경쟁자 때문에 감행해야 할 만큼 박지성의 축구 경력이 일천하지는 않다. 결국 박지성의 QPR 이적은 카가와 때문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사람은 어떤 자리에 있든 그 존재 자체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면 사실 이러한 손익계산서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아시아 출신의 축구선수로서 박지성이 유럽무대서 이뤄낸 수 많은 업적들은, 그가 QPR로 이적한다고 해서 지워질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 아니다. 카가와 때문에 박지성이 맨유에서 경험한 우승 횟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박지성은 박지성이고, 카가와는 카가와다. 진짜 비교는, 7년 뒤에 해도 좋지 않을까.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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