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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학생들 밥상의 소고기 반찬

한우가 육우랑 결혼해서 새끼를 낳으면?

[취재파일] 학생들 밥상의 소고기 반찬
한우가 육우랑 결혼해서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는 한우일까요, 육우일까요? 제가 아는 정답은 판정 공무원이 '말하는 대로'인데요, 이번에는 이렇게 애매한 문제를 담은 소고기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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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을 비롯한 지역 교육청들이 학교 급식 식자재에 대한 안정성 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농.수산물 뿐 아니라 소고기를 비롯한 축산물에 대해서도 이게 진짜인지, 가공 과정에서 항생제는 안 들어갔는지 등을 검사하는 겁니다. 워낙 식재료 갖고 장난치시는 분들이 많으니 애들 밥상만큼은 지켜보겠다며 할 일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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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소, 특히 한우나 육우는 요즘 송아지 때부터 사람의 주민번호 같은 고유의 개체식별 번호를 갖게 됩니다. 수입산이나 육우가 한우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한 거죠. 사람이 주민번호와 함께 지문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듯이 소고기도 도축이후 여러 유통과정에서 이 개체 식별번호를 늘 달고 다니며 본우(?)임을 증명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이렇게 붙어있는 식별번호와 실제 고기가 다른 경우에 해당됩니다. 즉, A라는 고기를 납품했다고 알려왔는데 사실 그 고기는 A가 아니라 B였던 거죠. 속았다는 느낌 드시나요?

제가 만난 한 학교 영양교사는 속은 것도 화가 나지만 어디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래도 우수 농.축산물이라고 해서 믿고 일반 소고기보다 비싸게 주고 구입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고 나니 업체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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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전체 조사는 다 끝나지 않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일부 학교에 대한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검사는 학교에 납품된 시료를 직접 수거해서 검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요, 서울의 한 지역 교육청(서울에는 11개 지역 교육청이 있습니다)의 경우 8개 학교를 표본으로 뽑아 검사를 했더니 절반에 달하는 4개 학교에서 불일치가 나왔습니다. 해당 지역 교육청만의 일이었으면 불행중 다행이었겠지만 서울 시내 770개 학교에 소고기를 공급하는 11개 업체 중에서도 5개 업체가 불일치 판정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영양교사가 말한 우수 농.축산물 납품 업체로 서울시 산하 강서친환경유통센터와 공급 계약을 맺은 곳들이었습니다.

이쯤되면 나머지 검사 결과도 솔직히 긍정적인 기대를 갖기는 힘듭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유통업체 직원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요, 이런 방식으로 검사하면 더 많은 업체와 학교가 '불일치' 판정을 받을 거라는 겁니다. 지난 2년 동안은 업체 작업장에 와서 시료를 채취해서 검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학교에 납품된 것을 그것도 불시에 수거해서 검사를 진행하다 보니 검사의 절차가 잘못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는데, 저는 이 부분에서 사실 지난 2년간의 검사가 더 의심스러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민번호가 바뀌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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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들의 불만과 해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갈은 소고기를 예로 들어 설명했는데요, 앞서 A라는 소고기를 갈고 나면 기계 안에 200그램 정도가 남게 되고, 뒤이어 B라는 소고기를 갈아 포장할 때 불가피하게 섞인다는 겁니다. 고기를 갈 때마다 기계를 청소하게 되면 그 시간만큼 인건비가 소요되고, 실제로 그렇게 해봤더니 작업량이 너무 늘어나 제 때 납품도 못하더라는 얘기였습니다. 업체는 결국 이번에 계약해지까지 당한 뒤에야 고기를 갈 때 사용하는 기계를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일일이 청소하는 번거로움 없이도 고기가 섞이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기계를 설계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왜 진작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냥 섞여도 어쩔 수 없다며 대충대충 일했을까요. 사실 여기서 왜는 무의미한 질문이겠죠. 그만큼 업체 스스로 완전을 기하려는 의식이 부족했던 것이고, 관리 감독을 하는 입장에서도 확실히 짚어내지 못한 채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추정될 뿐입니다.아, 그리고 제일 처음에 드렸던 질문도 업체의 해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한우라며 팔았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 육우로 판명난 경우 가운데 일부는 속이려고 속인 게 아니라, 엄마 아빠 중 하나가 육우이면서 공무원이 한우로 판정내린 경우라는 겁니다. 이럴 경우 유전자 검사 결과로는 한우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겉모습상 한우를 닮았고, 또 관계 공무원이 한우로 판명내렸던만큼 유통관련법 위반도 아니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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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처럼 급식 문제를 취재할 때 제 기준은 딱 하나입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이에게 어떤 식자재로 어떻게 만든 음식을 먹일 것인가. 친환경도 좋고, 우수 농축산물도 좋지만, 과연 믿을 수 있는 정직한 식재료인가. 그 무엇보다도 믿을 수 있는 밥상 만큼은 성장기의 우리 학생들을 위해 어른들이 챙겨줘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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