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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졸업작품 팝니다" 공대에선 무슨 일이?

[취재파일] "졸업작품 팝니다" 공대에선 무슨 일이?
저는 공대를 나왔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을 위해선 전공 논문을 써야했습니다. 아는 것도 없어서 석사논문을 여러 개 짜깁기해서 제출했습니다. 정년을 얼마 안 남기신 지도교수님은 흔쾌히 통과를 시켜주셨습니다. 이렇게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990년대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대학 졸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군요. 실용성을 강조한다면서 전기전자 계열과 기계계열에선 프로그램이나 전자기기 같은 걸 만들어서 이른바 ‘졸업작품’을 내야하더군요. 이런 졸업 작품을 제출하는 경우는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MIT를 나온 교수님이 계셨는데 졸업논문으로 ‘로봇팔’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바람에 몇몇 동기들은 졸업하느라 대학원 시험을 떨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 졸업작품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게임어플부터 사람과 거리에 따라서 풍속이 저절로 조절되는 선풍기, 빛의 양에 따라 자동으로 걷히는 커튼, 자동주차시스템, 거미로봇 등 종류가 아주 많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작품도 있지만 학생들은 4년 동안 배운 학문적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몸소 깨닫는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보람을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보람을 느끼기 위해선 짧게는 한 학기에서 길게는 1년을 꼬박 졸업작품에 매달려야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다보니 편하려는 마음에 졸업작품을 통째로 사서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청계천의 세운상가를 가보면 졸업작품 대행이라는 문구를 내건 전자상이 여러 곳이 있습니다. 어떤 걸 만들겠다고 말만 하면 다 만들어준다고 자랑합니다. 우스게소리로 태권브이 빼고는 다 만든다는 말이 정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가격은 제품의 난이도에 따라 1백만 원이 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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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는 아예 졸업작품 대행 카페까지 생겼고, 이 졸업작품을 사고팔겠다는 글이 수없이 인터넷에 떠있습니다. 졸업작품뿐 아니라 교수 앞에서 발표할 자료까지 제공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그 가운데 졸업작품을 팔겠다는 한 학생을 만났는데 그 학생 역시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통째로 사서 졸업작품을 낸 뒤에 다시 파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취재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왜? 대행을 하는가였습니다. 학생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 취업의 벽은 높은데 그러기 위해선 소위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졸업작품에 매달리다보면 학점관리 및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전선에 어려움이 많다는 겁니다. 전공에 맞게 취업을 하려는 경우야 졸업작품에 큰 애착을 갖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큰 짐이라는 거죠.

또 다른 이유는 졸업작품에 대한 교수의 목표치가 너무 높다는 겁니다. 졸업작품을 시작할 때는 거의 3, 4개월은 어떤 걸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상만 한다고 하죠. 이 기간에 학생들이 졸업작품에 대한 구상안을 제출하면 교수들은 ‘이거 다 선배들이 한 거다’라면서 베끼기가 아니냐며 퇴짜를 놓기 일쑤라고 합니다. 교수들이야 학생들의 발전을 위한 고려이겠지만 학생들에겐 이렇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졸업작품에 매달리는 게 참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결국엔 그야말로 멋들어지게 만들어져 팔리는 졸업작품으로 눈을 돌린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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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작품이라는 게 전자적인 프로그래밍과 기계적인 장치 제작이라는 게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 데 요즘 복수전공을 한다지만 전자과 학생은 기계적인 이해와 지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기계과 학생은 프로그래밍적인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차이에서 고민이 생긴다는 거죠.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소위 ‘반제품’을 사게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졸업작품의 프로그래밍을 한 뒤에 이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기계 장치는 외주에 맡기는 형태입니다. 아니면 이미 제작된 프로그래밍을 사다가 기계 장치에 적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과연 교수들은 이런 졸업작품 대행을 알까? 학생들은 모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 온 작품은 한마디로 '티’가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눈을 감아줄 수밖에 없다는 거죠. 교수들은 졸업작품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과제의 진행상황을 체크하기 때문에 남의 것을 사서 때우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희 취재진이 만난 한 대학의 교수는 졸업작품 대행의 이유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시더군요. 7학기 내내 과제를 베끼고 맡기던 학생은 졸업작품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요. 어찌보면 교육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윤리에 대한 문제를 대학이나 학생이나 고민해야봐야 때가 아닌 가라고요. 그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끝으로 제 외모가 이제는 도저히 대학생처럼 보이지 않는 탓에 도움을 빌린 이승아 씨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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