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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용한 경선'으로 한발 한발

[취재파일] '조용한 경선'으로 한발 한발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정치부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취재를 하면서 봤을 때 마치 이명박 대 박근혜 대통령 선거를 보는 듯, 치열하고 팽팽한 시간이었습니다. 저것이 본선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5년이 지난 2012년, 지금은 6월입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어제(25일) 의결한 대로라면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가 두 달도 채 안 남은 시기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조금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합니다.

제일 큰 이유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공고하게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지지율은 여러명의 대통령 지망자들을 놓고 여론조사를 했을 때 홀로 30%대 중반의 고지대에 있습니다. 안철수 교수나 문재인 상임고문 등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그 아래 위치해 있고, 새누리당의 다른 대선 주자들은 1~2%에 머무는 저조한, 그야말로 저조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비박 주자들은 무슨 말을 해도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정몽준 의원 세 사람이 힘을 합해 '경선룰을 바꾸지 않으면 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아도, 그야말로 엄포에 그칠 뿐입니다. 이재오 의원과 정몽준 의원이 시차를 두고 '당 지도부는 박근혜 캠프로 가라, 당직을 사퇴해라' 압박해도, '기분 나쁘지만.. 어차피 우리는 박근혜 캠프다...' 이게 당 지도부의 속 생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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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경선'을 향해 새누리당은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끌벅적하고 서로 헐뜯고 감정이 극에 달해 날선 말을 주고 받고, '시끄러운' 정치권의 경선에 우리가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정해진 순서대로, 정해진 규칙을 가지고, '원칙대로' 하는 경선에 대해서 '싱겁다' '심심하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습니다.

조용한 경선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상황이라면 말입니다. 그렇지만 '조용함'을 놓고 생각했을 때 어떤 평화로움과 공정함 보다는 '떠들어 봐야 소용없는 상황', '수동적'이라는 상황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저 뿐일까요? 이런 조용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른들에게 말대꾸 하지 말아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가르침에 더해 자라면서 보아온 여러 상황들에 의해 자리잡은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조용함'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 우리는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풍부한 논의의 장이 펼쳐지고, 주어진 한표를 스스로 양심에 걸고 행사하고, 그 결과에 대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그래서 승자를 향해 따뜻하고 힘찬 박수가 울려퍼지는. 그런 '조용함' 말입니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그런 조용함이 왜 우리나라 정치판에는 안 되는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 되는 이유는 작게는 '사리사욕', 조금 넓게는 '정파적 이득'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박 주자들의 경선 방식 변경 요구에 대해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박근혜 전 위원장의 고집이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때의 '패배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마 그런 점도 있을 겁니다. 5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시간이란 인식의 강도에 따라 상대적이어서 어떤 사건은 10년 전 일도 생생하고, 어떤 일은 일주일 전 일인데도 까마득 하곤 하니까요. 당내에서는 '박 전 대표가 이제는 1%도 결과에 영향을 줄 여지를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번 상황은 그런 일말의 경선 패배 가능성 때문이라기보다는, 박 전 위원장의 마음이 온통 '본선'에 가 있기 때문에 '예선전'에서 힘을 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4년 동안 '대세론'을 이어왔습니다. '대세론 같은 것은 없다'고 본인이 말하기도 했지만 대세론은 '안철수'를 빼고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당내에서는 대적할 자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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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박 대표는 당내 정치에는 힘을 쏟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국민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전달할 메시지를 갈고 닦았고, 거기에 맞는 행동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대선 도전을 선언할 때 그 선언에 무게가 실리도록 노력했습니다. 당내 경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본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한 전략만 가다듬어 온 셈입니다. 그런데 비박 주자들이 경선 시기와 방식을 바꾸자고 나오니,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비박계는 '불통', '독선'같은 날선 말로 박 전 위원장을 연일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친박계는 '원칙', '우직함'이란 말로 방어하고 있습니다.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원칙을 지켜냈다. 우리 정치권의 사리사욕에 찬 정쟁을 이미지 손실이라는 희생을 감내하고 고쳐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요즘 행보는 이렇게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 결과에 따라 해석도 달라지겠지요. 마른 더위 속에 6월이 가고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저의 성격과 인격 등 됨됨이에까지 암암리에 영향을 미칠 '대통령 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용함' 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환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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