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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잡고 보니 9년간 활개…경기 서남부 '발바리'

문 뜯고 22명을…경기 '발바리' 엽기적인 행적

[취재파일] 잡고 보니 9년간 활개…경기 서남부 '발바리'
요즘 무척이나 덥습니다.  이른 휴가로 한동안 쉬고 돌아온 첫 주, 일이 손에 잘 안 잡히고 무슨 사건을 봐도 '이게 기사거리가 되는 건가' 싶었던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낯선 부적응(!)을 극복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03년부터 9년 동안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 성폭행 사건의 범인이 붙잡힌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범인이 잡힌게'아니라 '잡고 보니 범인'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경기 안산과 시흥, 군포 등 서남부 일대에서 속칭 '발바리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속칭 '발바리'란 여성 혼자 있는 집에 창문을 뜯거나 문을 열고 들어가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나는 범인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경찰이 그동안 여러 차례 연쇄 성폭행 피의자를 검거했지만 이 일대에서 성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수법이 비슷해 동일범의 소행이란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지도 못했습니다. 급기야 경찰은 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벌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들의 불안은 커졌습니다.

그러던 중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5일 마약수사대가 마약 상습 투약 혐의로 40대 남성을 검거했습니다. 이 남자는 필로폰을 상습적으로 투약한 혐의로 경기 안산 자신의 집에서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남자를 구속하고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 의뢰했습니다. 일주일 뒤 국과수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 2003년부터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 성폭행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하는 겁니다. 그것도 무려 22건, 다시 말해 이 남자는 22건의 연쇄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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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기록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경기 안산 15건, 군포 5건, 시흥과 안양 각각 1건, 총 22건의 성폭행 사건 모두 이 남자의 소행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오전과 오후, 심야 시간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다세대 주택의 저층, 여성 혼자 있는 집을 노렸습니다. 남편이 출근한 뒤 여성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범행한 게 대표적이었습니다. 집에 침입해 먼저 여성을 제압하고 돈을 빼앗은 뒤 성폭행하고 달아나는 수법이었습니다. 빼앗은 돈은 많지 않았고, 현장 곳곳에 묻은 자신의 지문을 지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더 황당한 건 지난 20년 넘게 이 남자는 강도나 절도, 주거 침입 혐의로 10차례나 경찰서 문턱을 넘어 다녔지만, 단 한번도 성폭행 사건의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2003년 이후엔 2차례나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그에게 연쇄 성폭행과 관련해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난 9년간 경기 서남부에서 활개를 치고 다닌 '발바리'를 경찰은 눈 앞에 두고도 2번이나 놓친 겁니다.

이 남자가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기 전 마지막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건 2007년입니다. 그때 경찰은 이 남자의 DNA를 채취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주요 사건 피의자의 DNA를 강제로 채취할 수 있는 법이 2010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당시엔 그를 '발바리'로 볼 만한 정황이 없었다고 합니다. 피해 여성들은 이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지문 하나 제대로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남자를 용의자로 특정할 단서가 부족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성폭행 사건의 성격상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까지 생각하면, 이 남자가 저지른 성폭행 사건은 22건이 넘을 겁니다. 경찰에 신고 했는데도 범인은 수년간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 여성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DNA가 한번에 해결한 22건의 연쇄 성폭행 사건. DNA 법이 보다 이전에 만들어졌다면 피해를 좀 줄일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남자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다 검찰에 송치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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