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제왕절개 수술 방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지만, 아기가 첫 울음을 터트리고 나면 다소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날도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모든 의료진은 숨 가쁘게 자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려는 순간 모든 의료진이 시계를 쳐다 봅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듯 모두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시계가 가리킨 시각은 9시 10분, 아뿔사… 보호자들이 맞추어 달라했던 8시와 9시 사이를 10분 넘기고 만 겁니다. '시간은 돌릴 수 없다. 그러나 시계는 돌릴 수 있다'는 걸 한 의료진이 생각해냈습니다. 조용히 제왕절개 수술방에 있던 시계를 11분 전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그러자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8시 59분"하고 외칩니다. 차트에 기록될 아기의 탄생 시간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37만여 명이 태어났습니다. 그 중에서 39.7%인 14만 8천 명은 제왕절개로 태어났습니다. 2011년 발표된 OECD 국가들의 건강 자료(OECD Health Data)를 보면 우리나라 제왕절개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 터키, 멕시코,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제왕절개 비율을 5~15% 정도로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적정수준보다 여전히 꽤나 많이 제왕절개 분만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혼이 늦어지고 고령의 산모가 많아져 자연분만이 어려운 경우가 늘어난 것이 우리나라에서 제왕절개 비율이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아니 동양 특유의 문화적 배경, 즉 길일을 택해 출산하려는 사주 중시 문화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성향은 중국도 비슷합니다. 중국에서는 정확한 통계가 잘 나오지 않지만, 2009년에 발표된 세계 주산기 확회지에는 중국의 제왕절개 비율이 50%에 가깝다고 보고 되기도 했습니다.
제왕절개를 하면 산모가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처치 받아야 할 의료 행위도 늘어납니다. 자연 분만보다 산모에게 어느 정도 무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기에게는 특별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좁은 엄마의 산도(아기가 나오는 길)를 통과하기 위해 머리가 변형되거나 어깨 관절에 상처를 입는 등의 일이 없어 태아에게는 오히려 자연분만보다 더 좋은 분만 방법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 의대가 위생가설의 관점에서 제왕절개를 들여다 봤습니다. 위생가설이란 아이가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 적정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접하지 못하면, 외부 면역계가 발달하지 못하고, 그 대신 자기 세포를 조절하는 자가 면역계가 과도하게 발달한다는 이론입니다.
자가 면역계가 자신의 관절을 공격하면 류마티스 질환이 오고,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세포를 공격하면 당뇨병이 오는 겁니다. 보건 위생이 발달한 나라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 주는 대신 알레르기 질환, 소아 당뇨병 등이 증가하는 이유를 위생가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의대 연구팀이 어린이 9천9백 명을 분만 방법에 따라 분류한 후 그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은 알레르기 비염 위험도가 37%, 천식 위험도는 24%, 소아 당뇨병 위험도는 19%, 위장관염 위험도는 31% 더 높았습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자연분만의 경우, 태아가 엄마의 산도를 통과하면서 많은 세균을 접하게 돼 면역체계가 균형있게 발달합니다. 반면에, 제왕절개의 경우, 산도의 세균과 접하지 못한 태아의 외부 면역계가 발달하지 못하고 대신 자기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 면역계만 과도하게 발달하게 됩니다. 그 결과 자가 면역계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 면역성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
제왕절개 분만은 산모의 다음 번 임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2012년 6월 23일에 산부인과 학회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조금준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우리나라 임신부 12만여 명의 자료를 받아 연구를 해봤더니 첫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을 경우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중독증에 걸릴 위험도가 26% 높아졌습니다.
조금준 교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임신 중독에 걸리면 제왕절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건 제왕절개가 임신중독증의 위험도를 높인게 아니라 첫 째 때의 임신중독 과거력이 둘째 때의 임신중독증 위험도를 높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제왕절개를 할 때는 자궁을 절개하게 되는데, 자궁이 손상이 되면 결국은 태반이 형성될 때 혈액순환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것들이 두 번째 임신 때 임신중독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제왕절개가 두 번째 임신 때의 임신중독증을 높이는 이유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왕절개는 경우에 따라 태아와 산모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의료 행위입니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의사들은 제왕절개 분만 여부는 의사가 아니라 태아가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후에 있을 자가면역 질환 위험성이나 임신중독증 위험도를 따지는 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만 태어날 날짜와 시간의 중요도 때문이라면 이후에 아이에게 있을 자가면역질환의 위험도나 두 번째 임신 때의 임신중독증 위험도와 잘 따져 봐야할 것 같습니다.
[취재파일] 제왕절개, 아직도 사주 때문에 하십니까?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