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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추억…너무 쉽게 버리는 게 아닐까요?

이상문학상 표지, 서대문 아트홀, 강남역 뉴욕제과를 기억합니다

누구나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제게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사는 것이 그런 일 중에 하나입니다. 올 초에도 ‘이상문학상’을 사러 교보문고를 갔습니다.

그런데 늘 쉽게 눈에 띄던 그 책이 올해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한 자주색에는 작품집 발행 연도가, 그 아래 황금색 블록에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라고 쓰여 있어, 많은 책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던 책이었는데….

이상했습니다. 안내 직원에게 문의해서야 겨우 2012년 ‘이상문학상’을 찾았습니다. 그 책은 언제나처럼 문학상 수상작 코너의 맨 위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단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입.니.다.

옅은 베이지 커버에 세련된 글자 모양, 붉은색 포인트가 군데군데 들어가 현대적 이미지가 느껴졌고, 키는 좀 작아졌지만 그만큼 약간 도톰해져 휴대도 예전보다 편리해 보였습니다. 디자인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더 멋있어 진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참 어색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왜일까?

저희 집 작은 책장에도 이상문학상의 그 일관성 있는 디자인의 배열이 이미 책장의 작은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역사는 출판사의 디자인 변경으로 인해 단절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단 저희 집 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서점과 도서관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전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일까? 도대체 왜 이런 엄청난 변화를 결정한 것일까? 과연 그럴만한 사정은 무엇일까? 그래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출판하는 문학사상사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출판사 창사 40주년에 맞춰 결정했다고, 기존의 충성도 높은 독자층 외에 젊은 독자들에게 좀 더 어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그리고 이번에 바뀐 디자인으로 당분간 계속 출간할 예정이라고….

황망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상문학상’의 디자인을 통째로 바꾼다는 것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너무 쉽게 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제가 이상한 것 일까요?

얼마 전 서울의 오래된 추억의 명소가 사라진다는 아이템을 취재했습니다. 서대문에 있는 서대문 아트홀과 강남역 뉴욕제과를 다룬 아이템이었습니다. 1964년 ‘화양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서대문 아트홀은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단관극장입니다. 멀티 플렉스로 가득한 서울 땅에, 같은 시간에 단 하나의 영화를 틀어주는 유일한 ‘단관극장’인 것입니다.

물론 별로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2000원 씩 받고 하루에 영화 몇 번 틀어서는 돈을 벌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건물주는 이곳을 없애고 호텔을 짓기로 했다고 합니다. 서울 한복판에 실버 영화관 보다는 호텔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강남역 뉴욕제과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어린 시절, 친한 친구들과 강남에서 만날 약속이 있으면 어김없이 약속장소가 되었던 뉴욕제과였습니다. “어디서 볼까?” “강남역?” “그럼 늘 보던 거기서 보자!” 그곳이 강.남.역.뉴.욕.제.과 였습니다.

그곳이 이제는 없습니다. 6월부터 금연 단속을 대대적으로 한다고 해서 강남대로를 찾았다가, 뉴욕제과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공사 중인 뉴욕제과에 들어가서 창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보았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잠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든 게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이상문학상의 35년 된 표지 디자인도, 돈 안 되는 오래된 추억의 명화를 틀어주는 단관 극장도, 최고의 상권에서 오랫동안 약속 장소로 군림했던 제과점도…,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너무 쉽게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래된 것,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만들어간 추억이 배어 있는 것들을 없앨 때는 조금 더 신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건 단순히 디자인과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오랜 시간의 무게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그 역사를 영상으로 남기는 것이지요. 그 영상을 여기 이곳에 남겨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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