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살 박 모 씨는 대부분의 흉악범들이 그렇듯이 머리에 뿔이 달린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외소한 몸을 가진 평범해 보이는 40대 남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이 지난 1996년부터 자신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해 교통사고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낸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이었습니다.
첫 범행 대상자는 자신의 아내였습니다. 1996년 10월 6일 밤 10시 쯤, 경주도 양주시의 한 주차장에 박 씨의 세이블 승용차가 서 있었습니다. 이 승용차 안에서 끔찍한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박 씨가 주변을 살피는 동안 박 씨의 후배인 전 모 씨가 조수석에 앉아 있던 당시 박 씨의 아내였던 김 모 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박 씨는 죽은 아내를 그대로 조수석에 태우고 세이블 승용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박 씨의 후배인 전 씨는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이 두 승용차는 인근에 있는 봉양삼거리에서 서로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고의로 일으켰습니다. 박 씨가 사주해 후배의 손에 살해된 박 씨의 아내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습니다. 이 사고의 가해자는 전 씨. 전 씨가 가입한 자동차 보험에서 사망 합의금과 상해 의료비 명목으로 1억 4,500만 원 상당의 보험금이 박 씨에게 지급됐습니다. 남편에게 법적 상속권이 있기 때문에 박 씨가 이 보험금을 손에 넣는 건 너무나 쉬웠습니다.
두 번째 대상도 믿기지 않는 대상이었습니다. 자신의 친동생이었습니다. 박 씨는 1998년, 당시 28살이었던 자신의 친동생을 죽여 보험금을 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1998년 7월 15일, 박 씨 자신을 보험금 수익자로 한 동생 명의의 생명보험 3개를 가입합니다. 1998년 9월 8일, 동생이 타고 다니던 고급 대형차를 오래된 중고 중형차로 바꿔줍니다. 그 대형차에는 에어백이 장치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흘쯤 지난 1998년 9월 19일, 박 씨는 자신이 바꿔준 중고 중형차안에서 동생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죽은 동생을 옆에 태운 채 중앙선을 침범해 건너편 차로에 있는 프라이드를 들이받아 버립니다. 형의 손에 죽은 동생은 또 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됩니다. 그래서 동생을 죽이기 전에 들어놓은 생명보험 3개에서 모두 6억 원의 보험금을 받아냅니다. 보험료를 낸 사람도 차를 산 사람도 박 씨였습니다.
세 번째 대상은 재혼한 아내의 동생이었습니다. 2006년 2월에서 3월 사이 박 씨는 처남 이름의 생명보험 3개를 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손아래 동서인 41살 신 모 씨를 끌여들였습니다. 2006년 4월 13일, 아파트 상가 앞에서 처남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인 후, 둔기로 내리쳐 살해합니다. 그리고 처남을 태우고 박 씨의 승용차로 다리 교각을 들이받습니다. 살해된 박 씨의 처남은 교통사고 사망자로 처리됐고, 박 씨는 처남이 든 보험에서 나온 보험금 12억 5천만 원을 받아 챙겼습니다.
처남을 살해하기 1년 전, 미수에 그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터넷 게임을 통해 만난 내연녀의 남편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가 미수에 그쳤습니다. 내연녀의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이후, 내연녀의 남편을 차로 치어 살해할 계획이었는데 당시 박 씨와 공모한 동서인 신 씨가 범행 직전 심적 동요를 일으켜 핸들을 꺾으면서 내연녀의 남편은 목숨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고 이후 2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5급 장애 판정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보험금 지급 문제입니다. 3건의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인사건 모두 박 씨가 운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박 씨는 멀쩡했는데 박 씨의 동승자들만 사망한 겁니다. 그리고 동승자들은 목이 졸렸고 둔기로 맞아 사망했습니다. 조금만 의심해보고 사인을 조사했다면 충분히 보험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고 미리 박 씨의 극악무도한 행위도 막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당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보험사들도 의심은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보험금을 지급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경찰도 교통사고이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다 보니 살인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을 잡기 힘들어 부검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처남과 동생은 박 씨와 당시 사업을 같이 할 정도로 전혀 문제 없이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을 의심할 정황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험 상품의 특징 때문에 보험금이 지급됐습니다. 박 씨가 처남과 동생을 살해하기 전에 가입한 보험은 생명보험입니다. 보험 가입자의 사망시 무조건 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금인 겁니다. 박 씨도 이 점을 노리고 고액의 사망보험금이 나오는 보험만 골라서 가입을 했습니다.
다음은 보험 가입 문제입니다. 박 씨는 동생과 처남의 보험 가입을 자신이 했습니다. 그리고 보험금을 자신이 받았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좀 더 자세히 따져 보겠습니다. 가입 부분은 친인척이라는 점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가입이 가능했습니다. 동생과 처남 모두 같이 사업을 하다 보니 신상정보는 모두 알고 있었고, 자신이 알고 있던 보험설계사를 통해 자신이 대신 가입해 주는 것이라고 해 의심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본인 확인절차도 자신의 대포폰을 처남의 연락처로 기재해 놓고 그냥 자신이 처남인 척 행사를 하며 넘겼습니다. 보험 가입의 헛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겁니다. 그리고 수령부분도 동생은 친족이기 때문에 자신을 수익자로 지정해 손쉽게 보험금을 챙길 수 있었고, 처남의 경우는 장모를 수익자로 해 놓고 장모 모르게 만든 통장으로 돈을 몰래 챙긴 겁니다.
이렇게 치밀하고 대담한 범죄를 저지른 박 씨는 자신의 행위가 드러났음에도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모라자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도 않은 박 씨의 행태에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박 씨의 1996년 살인 혐의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습니다. 지난 2007년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25년으로 늘어났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다 보니 이미 15년이 지난 박 씨의 1996년 살인 혐의는 처벌이 불가능한 처지입니다.
박 씨를 이를 알고 1996년 사건과 처벌이 상대적으로 약한 2006년 살인미수 혐의만 인정을 하고 2건의 살인혐의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증거도 분명하고, 공범의 자백까지 나왔는데도 박 씨는 "나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씨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박 씨의 혐의를 증명할 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처벌하는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박 씨의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전처를 살해한 1998년에 박 씨는 재혼을 해서 현재 어린 딸까지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외삼촌을 죽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내와 딸이 받을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그리고 믿었던 사위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접한 장모는 어떨까요. 그리고 박 씨의 친부모들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을 겁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집도 바로 자신의 가족의 목숨값이었습니다. 박씨라는 사람과 가족이라는 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박 씨의 가족들은 이제 평생 씻을 수 없는 큰 상처 속에서 신음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