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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산지는 왜 에콰도르를 찍었는가?

[취재파일] 어산지는 왜 에콰도르를 찍었는가?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작성 2012.06.21 09:3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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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어산지는 왜 에콰도르를 찍었는가?
올해 초 미-중간에 외교적 긴장 관계를 불러 일으켰던 중국의 시각 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의 미 대사관 망명 사건에 이어 국제사회를 다시 한 번 뒤흔들 수 있는 또 한 건의 민감한 망명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에게는 손톱 밑의 가시와 같은 존재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어산지가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에콰도르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겁니다. 호주 국적의 어산지는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에게 망명을 받아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에콰도르 대사관과 외교부는 현재 망명 수용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스웨덴 체류 당시 여성들을 성폭행 한 혐의로 수배 중인 어산지는 조만간 스웨덴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신병이 결국 미국으로 넘겨져 중형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국인 호주 정부도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 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위키리크스의 비밀 외교문서 폭로로 추악한 외교 술수와 결례가 드러나면서 국제적으로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외교적인 수세에까지 몰렸던 미국 정부는 어산지에게 국가기밀누설죄를 적용하겠다고 단단히 별러 왔습니다. 마침내 손에 잡힐 듯 하던 어산지가 치외법권 지역인 외국 대사관으로 몸을 피하면서 마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가 되어버린 미국 정부는 약이 오르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어산지는 자신의 운명을 기탁할 카드를 왜 에콰도르 대사관에 던졌을까요? 궁지에 몰린 어산지가 어떻게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진입할 수 있었는지 그 내막이 소상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아무 곳으로 쳐들어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과 친미 국가들에겐 기피 인물 1호이지만 반미 국가들에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같은 존재인 어산지는 사전에 에콰도르 정부와 치밀한 망명 작전을 세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어산지와 에콰도르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2010년 6월 첫 폭로 이후 위키리크스가 25만 건의 각종 비밀 외교 문서가 공개하면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여러 나라들과 갈등을 겪어야 했고 곤경에 빠진 미국은 어산지를 ‘1급 지명수배자’로 삼았습니다. 영국과 스웨덴 등 우방국들의 도움으로 미국은 어산지의 은행계좌 폐쇄로 돈줄을 막았고 집요한 추적 끝에 성 범죄혐의자란 ‘타이틀’를 붙이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미국편은 아니어서 반미 진영을 중심으로 어산지에 대한 비호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 후보에 선정되며 어산지는 단숨에 국제적인 ‘정보 민주화 투사’로 부각됐고, 러시아나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어산지를 기소하려는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산지에게 거처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용감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에 자리한 에콰도르였습니다. 당시 에콰도르 외무부는 어산지가 원하면 망명을 받아들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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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2011년 초에는 카다피 국가원수가 우크라이나 출신 간호사와 은밀한 관계라는 미국 대사관의 정보 보고 내용이 드러나면서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추방된 데 이어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도 짐을 싸야했습니다. 위키리크스 때문에 대사가 추방된 세 번째 사례는 다름 아닌 에콰도르였습니다. 비밀 외교전문에서 “에콰도르 경찰에 부패가 만연해 있다”며 주재국의 흉을 본 미국 대사가 쫓겨난 것입니다.

어산지와 관련해 에콰도르 정부가 노골적인 반미 행보를 보이는 배경에는 라파엘 코레아가 대통령이 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코레아도 전형적인 ‘유학파 반미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반미 좌파의 길을 걸으며 2006년 첫 집권한 이래 재선에 성공한 재임대통령인 코레아는 국제사회에서는 '제2의 차베스'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코레아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앙숙 관계인 차베스가 유엔 연설에서 부시를 ‘악마’라고 비난하자 “부시에 비유된 악마가 기분 나빴을 것”이라는 발언을 할 정도로 뼈 속까지 반미주의자인 사람입니다. 서방 석유기업과 맺은 계약의 파기와 석유기업의 국유화를 밀어붙이는 한편 미국에 맞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연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코레아가 망명 직전 어산지가 진행하는 ‘World Tomorrow’라는 이름의 TV토크쇼에 여섯 번째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이 토크쇼에서는 주로 비도덕적인 정부와 선한 언론 사이의 대결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암호처럼 은밀하게 망명 건이 논의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난무한 상황입니다.

어찌됐건 전격적인 어산지의 에콰도르 망명은 이제 절반 이상 성공했고, 에콰도르 정부는 “영국이나 스웨덴의 사법 과정에 개입하려는 의도는 없다”면서도 “망명을 검토하는 동안 어산지는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의 보호 아래 있다”면서 어산지의 망명 요청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임을 내비추고 있습니다. 미국의 영원한 동지를 자처하는 영국이니만큼 런던경찰청은 어산지가 보석 규정을 어겼다며 체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에콰도르 대사관이 스스로 어산지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한 영국 경찰이 '정치적 망명자'로 볼 수 있는 어산지를 강제로 잡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외교적인 비 신사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 망신을 당한 미국이 다시금 외교적인 무리수를 감수해가면서 어산지의 망명을 기를 쓰고 방해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필 상대가 반미 노선의 첨병인 에콰도르인지라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닐 것 같습니다. 사태가 장기화 될 가능성도 큽니다. 불과 한달 전 천광청의 뉴욕 행을 성공시키며 중국과의 줄다리기에서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했던 미국의 외교력이 다시금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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