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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에 제비는 진짜 없는 걸까?

[취재파일] 서울에 제비는 진짜 없는 걸까?
어렸을 때, 서울 신정동에 살았습니다. 지금이야 개발이 됐지만, 당시에는 동네에 연립주택들이 빼곡하게 모여있고, 하늘에 까만 전깃줄이 늘어져 있습니다. 집 근처 미술학원에 다녔는데, 오후가 되면 전깃줄에 제비가 모여 앉아있곤 했습니다. 제비들은 찌리리릭인지 끼끼끽인지 뭔가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맑고 묘한 소리로 울어댔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해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에서도 전깃줄에 앉아있는 제비를 봤습니다. 해질 녘, 노을을 배경으로 전깃줄에 한줄로 앙증맞게 앉아있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서 제비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제비가 눈에 안보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안 보이고, 다른 동네도 마찬가집니다. 봄이 되면 강남 갔다가 복을 물고 돌아온다던 제비인데,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서울 청량리 시장에 제비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긴가민가 하면서 제비가 나타난다는 시장 골목에 갔습니다. 정말 제비가 있었습니다. 두 마리를 봤는데 제비가 남긴 배설물 흔적으로 봐서는 근처에 더 많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촬영에는 실패했습니다. 상인들 말이 평소에는 가게 천막 위에 얌전히 앉아있는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가 간 날엔 이상하게 앉지도 않고 하늘만 빠르게 빙빙 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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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서울 용산에도 두 달 전쯤 제비가 나타났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도 살고 있으려나 싶어 한번 가봤습니다. 놀랍게도 건물 벽에 제비집 여러 채가 있었습니다. 앞 벽에서 4채 뒤쪽에서 3채를 봤고, 건너편 건물에서도 한 채를 봤습니다. 주위를 살펴봤더니, 어릴 때 봤던 것과 똑같이 모습으로 제비 한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비집 한 채에 또다른 한 마리가 앉아있었습니다. 두 마리가 부부인 모양입니다. 전깃줄에 앉아있던 게 수컷, 집에 있던 게 암컷이 아닐까 싶은데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알을 품은 것 같았습니다. 제비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장대에 카메라를 달아서 제비집 안을 들여다 봤습니다. 역시나 다섯 개의 알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이랄까요. 그런 게 느껴졌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녀석들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제비가 아주 예쁘고 우아하게 생겼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제 눈으로 똑똑히 제비를 봤는데, 이상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본 제비는 있어도 없는 제비라고 하네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서울 제비는 송월동에 있는 서울기상관측소에서 관측돼야만 공식적으로 인정된다고 합니다. 1920년대부터 관측소에서 전문가들이 육안으로 제비 비행을 확인하는데, 2007년 10월 이후에는 한 번도 제비가 관측이 안 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서울에는 4년 전부터 제비가 없는 겁니다.

말도 안 된다 싶어, 관측소에 물어봤습니다. "거기서 안 보인다고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답을 들었습니다. "기상자료의 연속성 측면에서 오래 전부터 관측을 해온 위치에서 관측을 해오고 있습니다." 알고 봤더니 '서울에 첫눈이 내린 날', '서울에 개나리가 핀 날'도 서울기상관측소에서 관측된 날짜를 기준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얼핏 '아, 그런 거구나' 싶었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관측소에 있는 개나리에 병충해가 들어서 꽃이 늦게 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강남에는 눈이 내렸는데 관측소가 있는 강북에 눈이 안내리면 서울에 눈이 안 온 게 되나?'

서울만 해도 너무 넓어서, 모든 지역을 일일이 관측할 수는 없습니다. 관측을 위해서는 분명히 기준점이 필요하고, 오래 전부터 자료를 기록해 온 지금 위치가 기준점이 되는 게 가장 합리적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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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관측소가 있는 송월동 주변 환경도 옛날하고는 많이 달라졌죠. 환경이 바뀌는데 관측 기준과 방식이 예전 그대로라는 건 곤란합니다. 예전처럼 관측소에 서서 눈으로 봤는데 안 보인다고 없는 제비 취급해 버리면, 강남에서 먼 길 찾아온 제비는 너무 억울할 것 같네요.

전래동화에도 등장할 만큼, 제비는 우리에게 참 친숙한 새입니다.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살다보니, 어르신들에게는 이런저런 추억이 많은 새죠. 이번 참에 서울에 돌아온 반가운 제비들을 공식적인 서울 제비로 인정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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