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당내가 조용한 것도 아니다. 매일같이 경선 규칙을 놓고 계파간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주자 간 합의로 경선 규칙부터 정하자는 비박계와 경선 규칙 논의하려면 먼저 후보 등록부터 하라는 친박계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늘 같은 얘기다보니 매번 기사화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선이 다가오는데도 고착화된 당내 역학구도 속에 바뀌는 게 없다보니 곳곳에서 무리한 발언, 혹은 도를 넘는 발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과도한 발언은 계파간 감정의 골을 깊게 하고 깊어진 감정의 골이 상호 불신을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 "여성 리더십은 시기상조"?
최근 논란에 불을 붙인 건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지난 18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회견에서 한 외신 특파원이 정치 발전을 위한 여성 리더십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말하자 "아주 정말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질문"이라며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재오 의원은 "우리 나라는 분단국이다. 북한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3대 세습을 했고 그 3대 세습 중에 가장 호전적인 지도자가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면서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적어도 국방에 대해서 경험하지 않은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런 리더십을 갖기에는 아직 나라 안이 매우 어려운 사정이 많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분단 국가에서 군대 경험이 없는 여성이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맡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말이다.
이 의원은 "여성만이 갖는 리더십이라고 하는 건, 저는 아직 대한민국에 맞지 않다, 이르다. 맞지 않다기보다 아직 이르다"면서 "나라가 통일되고 나라가 평화롭게 된 다음은 몰라도 지금은 그런 리더십은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 "아직 정신줄 놓을 나이도 아닌데..."
이재오 의원의 발언을 접한 친박계는 발끈했다. 한 의원은 "남녀 성별을 가지고 지도자 자격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도 전근대적인 생각 아니냐. 국가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남성, 여성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전근대적이다"라며 "발언자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라는 게 참으로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도 이재오 의원의 발언 다음날, 의원총회 참석차 국회에 나왔다가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한 반응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나요?"라고 말했다. 비록 웃으며 한 말이지만 즉답이란 없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성향을 감안하면 작심하고 한 발언으로 보인다.
원색적인 비난도 터져나왔다. 그것도 공개회의 석상에서였다.
이재오 의원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 친박계 조원진 의원은 원내대책회의 공개 시간이 끝나갈 무렵 발언 신청을 했다. 시작은 점잖았다. 조 의원은 "당내 대권 후보라고 생각하는 분의 발언 자체가 너무 네거티브적이고, 해당행위고, 반사회적이고, 반근대적"이라며 "경선 룰의 문제가 아니고 인신 공격적 네거티브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정치대통령이라고 불렸던 분이 이러한 발언을 한다는 것을 과연 국민들이 이해를 할 것인가. 1%도 안 되는 후보가 40% 넘는 후보를 가지고 이런 비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의 발전을 위해서, 새누리당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가"라며 발언 수위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아직 연세로 봐서 정신줄 놓을 나이가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새누리당을 위해서 옳지 않다"라고 험한 말을 쏟아냈다.
◈ 내부 다툼에 '정신줄 놓은'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이명박 정부 탄생을 이끈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실세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이 정권에서 누린 게 없다는 이 의원 본인도 정권 창출에 기여했던 점 만큼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재오 의원이 지적한 " 국방에 대해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여성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의원이 대통령, 군 통수권자로 밀었던 이명박 대통령도 군 경험이 없는 병역 면제자다.
우리 나라처럼 안보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분단 국가에서 군사나 안보 문제에 대한 식견과 경험은 중요하다. 대통령의 주요 자질 중 하나다. 그러나 군대를 가지 않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능력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성차별 논란도 부를 수 있다.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이자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는 지난 1982년 아르헨티나가 영국 영토 포클랜드섬을 침공하자 75일 동안 격전을 치른 끝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냈다. 병역은 신성하고 군 경험도 중요하지만 의무복무 2년이 군 통수권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재오 의원 측은 국방과 안보가 중시되는 분단 현실을 감안한 발언으로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북한의 핵실험 이후 안보 위기가 고조되면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전세를 역전당한 전례를 이재오 의원이 활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를 넘기는 친박계도 마찬가지다. 이재오 의원의 '여성 리더십 시기상조' 발언에 박근혜 전 위원장 본인은 점잖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에게 비친 친박계 전체의 대응은 이전투구와 다를 바 없었다. 당내 대선 주자를 향해, 그것도 공개 회의 석상에서 '정신줄' 운운하는 모습이 국민 눈에 결코 곱게 비칠 리 없다.
6개월 뒤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한다면 새누리당 스스로 '정신줄' 단단히 붙잡고 당내 경선부터 제대로 치러야 한다. 또 경선 도중 주자 간 경쟁 과열로 설사 네거티브를 들고 나온다고 해도 국민 눈높이와 상식선을 벗어나면 돌아오는 건 역풍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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