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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수 밤바다'는 왜 여수 엑스포의 주제곡이 되었나?

SBS 보도국 미래부 여수EXPO 참관기

[취재파일] '여수 밤바다'는 왜 여수 엑스포의 주제곡이 되었나?
1. 누구나 엑스포에 대한 기억이 있다. 아니 최소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엑스포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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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엑스포에 대한 기억은 93년 대전 엑스포다.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새로운 도약에의 길’ 이란 주제로 열렸던 대전 엑스포는 그때 ‘청소년’들에게 일종의 미래세계 그 자체였다. 90년대 초반 우리 나라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고 있었고, 개발도상국에서 엑스포가 개최된 것은 대전 엑스포가 처음이었다. 홀로그램, 자기부상열차, 뉴로 컴퓨터등 당시로서는 ‘가공할만한’ 최첨단 과학기술이 전면에 등장했다. 고3이었던 나는 엑스포에 대한 갈망을 마음 한구석에 담은 채 대학 입학을 위한 입시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최첨단 미래사회는 방송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몇 십년 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뒤 대전 엑스포 건물과 설치물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방송뉴스를 몇 차례 접하면서 대전 엑스포는 자연스레 ‘과거’가 되어 갔다.

3. 일본의 천재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는 1970년대에 열린 오사카 만국박람회이다. (당시에는 엑스포를 이렇게 불렀다. ‘국민’학교 운동회에 자주 등장했던, 세계 각국의 국기를 얼기설기 이어놓은 장식물도 '만국기'라고 불렀지 않나) 1970년대 일본은 이미 초고속 열차인 신칸센 일부 구간이 개통됐고, 신칸센의 화장실에 ‘종이비누’가 비치돼 있을 정도로 미래세계 그 자체였다. (당시 우리 나라는 빨래와 샤워, 세안을 ‘세탁비누’로 일거에 해결하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회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당시 일본을 방문해서 종이비누를 접했던 사람들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첨단(?)국가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이니 오죽했겠는가. 당시 오사카 만국박람회에는 무려 6천4백만명이 다녀갔고 이를 경험한 세대에 대해 ‘만박세대’ 라는 이름까지 ‘수여’됐다. 이 세대 가운데 만박을 통해 과학에 뜻을 품고 매진하여 노벨상을 받은 인물도 배출됐다. 그래서 일까. '20세기 소년'이라는 작품은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둘러싼 어린 아이들의 심리와 욕망을 사건 전개의 주요한 동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오사카 만박을 본 아이와 보지 못한 아이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이 존재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라사와 나오키 작품의 제목이 ‘20세기’ 소년이라는 거다. 실제로 작품은 가까운 미래를 다루고 있음에도  작품명은 ‘21세기’ 소년이 아니라 ‘20세기’ 소년이다. 만화 설정상 디스토피아스런 21세기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20세기에 벌어진 '20세기식 이벤트'를 경험한 20세기 소년들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특이하게도 '20세기 소년'의 최종회는 같은 작품임에도 '21세기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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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난 93년 대전 엑스포의 주제곡은 코리아나의 '그날은'이라는 노래였다. 미래(?)지향적인 신디사이저와 전자음으로 점철된 당시 노래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이제 모두가 슬기로운 손길로 밝은 내일 꾸며 가보자

아름다운 마음마음 모아서 사랑으로 보살펴주면
꿈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네 그날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한데 모아서 끊임없이 달려가보자
하루하루가 다시 열릴 때마다 놀랄일이 너무도 많아

우주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차근차근 벗겨가보면
꿈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네 그날은

미래의 물결속에서 그날은 찾아오리라

지극히 ‘20세기’스러운 단어를 나열해 완곡하게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고 있는 이 노래 가사에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선망과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리라는 식의 과도한 기술중심주의를 읽어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고도성장을 향해 깜짝 놀랄만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모두가 ‘달려’야 했던 당시 우리 나라의 발전정도와 사회 분위기로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나아가 감동적인 가사였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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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간은 흘러 ‘21세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에서는 여수 엑스포가 개최 중이다. 바다와 친환경을 컨셉으로 개최되고 있는 여수 엑스포의 주제곡은 삼촌들의 로망 아이유의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란 노래다. 하지만 아이유란 단어가 주는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수 엑스포 하면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 보다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더 쉽게 떠올리는 게 사실이다.

여수 엑스포 주최 측 역시 아이유보다 버스커버스커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최 측은 버스커버스커를 초청해 공연까지 따로 진행했다고 한다. 버스커버스커가 요즘 대세라고는 하나 아직 아이유의 인기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행사 붐업과 마케팅 차원에서 버스커버스커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아니리라. 주최측은 '여수 밤바다'란 노래에서 아마도 여수 엑스포와 맥을 같이 하는 어떤 코드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 '여수 밤바다'의 가사를 살펴보자.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앞서 코리아나가 불렀던 93년 대전 엑스포의 주제곡을 상기해보자. 기술과 성장, 미래가 화두였던 ‘20세기’ 엑스포의 주제곡과 감성과 나눔, 현재가 키워드인 ‘21세기’ 엑스포의 (사실상) 주제곡은 이렇게, 다르다. 여수엑스포 주최 측, 영민하다.

6. 바다가 주제인 만큼 메인 주제관과 국가관, 기업관들은 대부분 바다와 해양생태계를 소재로한 설치물과 조형물을 아기자기 하게 배치해놓고 있다. 노르웨이처럼 바다를 끼고 있거나 이른바 해양강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의 전시관은 특히 신경을 더 쓴 점들이 눈에 띈다. 물론 (태어나기 이전이라 경험할 순 없었지만) 오사카 만국박람회나 (비운의 고3 신분으로서 간접경험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대전 엑스포에 비해 눈이 휘둥그래질만한 미래기술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 LED 디스플레이, 거대한 아쿠아리움, 스마트폰과 SNS를 활용한 각종 서비스들, 3D를 적극 활용한 체험관등이 잘 갖춰져 있긴 하지만 ‘가공할만한’ 깜짝 놀랄만한 최첨단 기술은 아니다.

7, 하지만 그게 대수일까. 지금은 테크놀로지 자체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지난 5월에 개최된 SBS 주최 사회공헌 프로그램 SDF 서울디지털포럼의 주제 역시 기술과 사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이었다. 특히 주목받았던 부분은 ‘적정기술’과 관련된 세션이었다. 적정기술이란 거칠게 설명하면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것이란 생각에서 벗어나 최첨단 기술만이 과연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인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적정한 기술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는 발상의 전환을 토대로 한다.

예컨데 하루하루 흙탕물을 떠다 앉혀서 식수로 마셔야 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최첨단 통신위성을 통해 아프리카 어디에서나 인터넷이 가능하고 각종 최첨단 정보, 앱들이 담긴 태블릿PC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극단적인 예이지만, 그들에게는 흙탕물을 심각한 배탈에 이르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 음용 가능한 물로 만들어주는 값싸고 휴대가 가능한 개인용 정수기 킷이 더 절실할 뿐이다. (이러한 개인용 정수기 킷은 실제로 구호차원에서 개발돼 배포중이며 그리 엄청난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너무 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연결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보다 덜 외로워졌을까? 어쩌면 옹기종기 모여 함께 TV를 보던 시절에 보다 많은 ‘아날로그’ 대화와 보다 많은 감정을 나누지는 않았을까? 다시 한번,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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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수 엑스포의 규모는 2010년에 개최됐던 상하이 엑스포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이다. 전체 행사장의 넓이나 각 전시관들의 크기, 관람객들의 숫자처럼 계량이 가능한 수치로 따지자면 상하이 엑스포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상하이 엑스포의 거대한 규모는 어쩌면 정작 본질적인 부분을 상실하고 있음을 감추기 위한 허세가 아니었을까. 여수 엑스포는 아담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전시관 관람을 위해 5시간씩 기다리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행사장 어디에서나 탁 트인 여수 바다와 오동도를 볼수 있고 시원한 바다바람을 만끽하며 가벼운 산책을 할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행색과 사연을 가진, 자신들이 살아냈던 각양각색의 삶이 얼굴에 고스란히 각인돼 있는 ‘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여수 엑스포는 여러 면에서 ‘적당’하다. 적당한 볼꺼리와 적당한 쾌적함, 적당한 소란스러움과 적당한 흥분이 있었다. 규모와 수치, 물량과 기술에 집착했던 상하이 엑스포에 비해 여수 엑스포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하이 엑스포는 모든 면에서 과했다. 그래서 촌스러웠다.

특히 인상깊게 다가왔던 전시관은 POSCO 기업관 이었다. 바다의 소리를 듣는 귀를 형상화한 건물의 형태와 3D와 360도 디스플레이에 지나치게 의존한 다른 전시관과 달리 디지털 영상과 아날로그 퍼포먼스의 절묘한 조합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아날로그’ 풍선인형의 격렬한 댄스 퍼포먼스는 여수 엑스포 주최측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빅오’ 쇼 와 더불어 반드시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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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3년 대전 엑스포 관람객은 모두 천4백만 명이었고, 그 가운데 초/중/고등학생 단체관람이 32%인 4백60만 명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이번 여수 엑스포 참관 당시 마주친 관람객의 대다수는 ‘20세기’를 주로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물론, 우리 일행을 포함해서. 과거 국제적 교류, 신기술의 확산이 쉽지 않았던 과거에 엑스포는 기술 그 자체를 선보이고 기술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기술을 통해 국력을 과시하는데 활용되는 장이었다. 지극히 ‘20세기’형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여수를 계기로 엑스포는 기술과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21세기’형 플랫폼으로 진화해가는 듯 하다. 과거 엑스포가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과학과 기술에 대한 선망과 욕망을, 기성세대에게는 기술에 대한 충격과 강박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된 이벤트였다면 이제 엑스포도 160살이 넘어가면서 조금 더 성숙해가는 것이다.

10. 여수 엑스포에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은 없다. 대신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와 '바람에 걸린 알 수 없는 향기'와 '너와 함께 걷고 싶은 여수 밤바다'가 있다. 기술과 감성의 조화가 있고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짐이 있고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적정함이 있다. 그래서 권한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여수 밤바다'를 들으며 그곳을 방문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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