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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청춘극장 밀어내고 호텔이…그만큼의 가치가 있나요?

"이런 곳은 다시 생길 수 없을 거예요"<BR>서대문아트홀, 이대로 사라져도 되는지 서울시에 묻습니다

[취재파일] 청춘극장 밀어내고 호텔이…그만큼의 가치가 있나요?
서대문아트홀과 뉴욕제과가 사라지게 됐다는 기사를 보도한 이후,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단 기사로 말씀드린 대로 뉴욕제과는 6월 1일 사라졌습니다. 마침 6월 1일 저는 강남역 쪽에 금연거리 취재를 하러 또 가게 됐는데, 테이블이며 매대를 다 뜯어낸 휑하고 컴컴한 뉴욕제과 내부 모습에 새삼 허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배 한 분은 "대학 때 미팅한다, 하면 뉴욕제과였지" 하면서 아쉬워하시기도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여기서 좀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서대문아트홀에 대해섭니다. 현재 서대문아트홀은 건물주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극장문을 닫아야 하는 상태로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번주엔 건물주가 서대문아트홀에 내용증명을 보내와 “알아서 나가지 않으면 대표의 집을 가압류해 공사지연 비용을 충당하겠다”며 폐관을 종용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1964년 ‘화양극장’으로 개관한 이후 한때는 B급 영화들의 요람으로, 전성기엔 홍콩영화 붐의 산실로, 멀티플렉스의 홍수가 밀어닥친 뒤엔 ‘드림시네마’란 시사회 전용관으로 활로를 모색해 온 서울의 마지막 단관극장 서대문아트홀. 이 극장은 지금 평범한 극장이 아닙니다. 관람료 2천 원에 '추억의 영화'들을 상영하는 이른바 실버 전용 ‘청춘극장’, 어르신들을 위한 극장입니다. 서울의 첫 '청춘극장'으로 성공을 거둔 허리우드 극장과 함께 매일 500명 가량의 어르신들이 찾아오는 도심의 대표적인 '실버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엔 리모델링으로 공연장으로도 활용 가능해져, 영화 상영과 공연이 번갈아 이루어집니다.

취재하면서 느낀 건, "서대문아트홀이 사라지면 실버 문화공간으로 다시 이런 곳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임대료가 치솟고 있는 도심, 그것도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8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영화관 입구입니다. 지하철을 무료 이용하실 수 있는 어르신들이 찾아오시기에 최적의 위치죠. 게다가 상영관 좌석이 650석이나 되고, 기다리는 로비도 널찍합니다. 공연장으로서도 훌륭한 규보입니다.

이렇다 보니 모든 상영 영화를 다 보고 공연이 있을 때마다 찾아온다는 열혈 이용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무료 지하철을 타고 도심에 나들이 나와 단돈 2천 원에 추억의 영화를 보고, 젊은 시절 인기있던 연예인들의 공연도 즐기고, 또래들과 교류하는 겁니다. 제가 인터뷰한 한 어르신도 평택의 댁에서 서대문까지 일주일에 두 번은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도심 실버 문화공간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곳인 겁니다. 지난해 말까지는 서울시가 위탁경영해 온, 서울시의 대표적인 문화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서대문아트홀이 왜 갑자기 폐관위기에 몰리게 된 걸까요. 그 과정이 ‘서울시의 대표적인 문화사업’이 받은 대접치고는 지나친 푸대접입니다.

원래 서대문아트홀은 지난 2007년에 폐관 위기를 한 번 겪었습니다. 당시 건물주였던 동욱산업이 재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대에서 허가받을 수 있는 용적률이 낮아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서대문아트홀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허리우드극장과 서대문아트홀을 모두 운영하고 있는 서대문아트홀 김은주 대표는 그같은 위기를 한 번 겪은 뒤, 2008년에 동욱산업과 임대 재계약을 맺으면서 "앞으로 적어도 5년은 운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극장을 리모델링해 실버 공연장을 만들었습니다. 허리우드 극장이 청춘극장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서대문아트홀까지 실버 공간으로 전환시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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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처음 허리우드 극장을 인수해 청춘극장을 구상하면서 혹시 서울시와 홍보를 같이 하면 좀더 이 사업을 널리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에 문의를 했었어요. 그랬더니 서울시측에서 이 사업 시랑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야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시에서 구상한 사업이라며 보도자료를 돌려 저희 극장이 서울시 극장인 것처럼 온통 보도가 되고 개관할 때는 서울시에서 나와서 테잎 커팅하고… 완전히 서울시가 주인인 사업인 것처럼 돼버렸어요.

그렇게 해서 사업에 보탬이 되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울시는 시의 사업이라는 홍보에만 열을 올릴 뿐 한 푼도 지원해 주지 않아서 겉으로만 서울시 사업이고 모든 운영비용은 제가 대고 있었죠. 그 다음해인 2010년에 한 서울시의회 의원이 오셔서 ‘서울시에서 제일 칭찬받는 사업이 이 청춘극장 사업이다. 시가 도와줘서 잘 되고 있죠?’ 물으시길래 ‘아무 도움도 받은 게 없다'고 했더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알아보시고는 제 말이 맞다는 걸 아시고 대노해서 3억 예산을 잡게 도와주셨어요. 그때 딱 1년, 허리우드 극장에 서울시 지원을 받았죠.”

그랬던 서울시는 김 대표가 서대문아트홀도 실버극장으로 전환하자, 아예 서대문아트홀을 대관해 제대로 시의 문화사업으로 운영해 보겠다고 제안합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는 2010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5개월간 이곳을 ‘청춘극장’으로 위탁운영했습니다.

문제는 지난해 이 건물의 주인이 글로텔산업개발로 바뀌면서 일어났습니다. 그 즈음 서울시의 호텔 신축 허가도 떨어졌습니다. 비즈니스호텔을 짓는다면, 용적률을 넉넉하게 줄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시가 한 건물을 놓고 한 쪽에선 서대문아트홀로 문화산업을 진행하고, 한 쪽에선 호텔 신축 허가를 내준 거죠.

“(김은주 대표) 저는 서울시에 월 3천만 원에 대관을 해주고 있었는데, 서울시가 지난해 여름에 연신내로 옮기겠다며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더라고요. 연신내로 가서는 임대료도 월 4천만 원을 내는데 말이에요. (연신내 청춘극장은 290석 규모로 서대문아트홀의 절반 규모도 채 되지 않고, 서대문아트홀보다는 도심에서도 살짝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길래 ‘원래 하던 대로 실버극장으로 계속 운영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미 그때 서울시와 새 건물주가 이 건물에 대해 호텔 신축허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서울시는 그맘때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왔고… 호텔 허가 건이 진행되고 있는 걸 문화국에서도 알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그렇지만 제겐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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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아트홀측은 과거 건물주에게 장기임대에 대한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극장 리모델링까지 진행했다며 결국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1심에서 새 건물주 글로텔산업개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과거 건물주가 했던 약속을 새 건물주가 지킬 의무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대문아트홀 김은주 대표는 항소를 결심했습니다.

“1심에서 진 후 최근에 알게 됐어요. 예전 건물주 동욱산업이 저희를 비롯한 세입자들에게 보상해 주라며 글로텔산업개발 측에 10억 원을 주었다는 걸요. 동욱산업측도 ‘리모델링까지 하셨으니 보상을 꼭 받으세요’라고 해요. 그런데 글로텔측은 2천만 원을 줄 테니 나가라고 합니다.”

글로텔산업개발은 지난 2005년 신설된 기업으로 직원 10명 가량의 작은 기업입니다. 이 작은 기업이 서대문아트홀 자리에 지을 비즈니스호텔 도급을 신세계건설에 맡겼습니다. 신세계건설은 올초 글로텔산업개발의 채무 333억 원을 보증해 줬다고 공시했습니다. 자기자본규모의 21%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비즈니스호텔이 완성될 경우 운영을 검토하고 있는 곳은 호텔신라입니다.

김은주 대표는 “저희 문제가 불거지자, 호텔신라는 ‘운영을 검토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건물의 실질적인 매수인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글로텔산업개발이 명도업체로 전면에 나서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합니다. 김은주 대표는 힘들어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저희가 망해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운영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매일 500명이나 오시는 곳이에요. 저희가 대기업, 멀티플렉스였으면 이런 일을 당했을까요. 법정에서 판사님이 그러시더군요. ‘건물 사서 영화사업 하시라’고. 어르신들 3천 명이 서명하신 탄원서는 한 번 들여다 봐 주지도 않았어요. 서울시는 ‘실버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그렇게 청춘극장 사업을 자랑하더니, 저희 극장보다 훨씬 작고 도심에서 벗어난 곳으로 임대료도 월 천만 원씩이나 올려주면서 이사를 갔죠. '청춘극장' 어디든 하나 있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마인드 아닌가요? 전보다 돈은 더 들이면서 극장은 지금보다 규모든 시설이든 위치든 모든 면에서 떨어지든 말든지요.

지금 연신내 극장 찾는 인원과 저희 극장 찾는 인원을 비교해 보시면 아실 거예요. 그러면서 여기선, 서울시가 위탁운영해 온 문화사업이 이뤄져 온 이 극장 자리에 동시에 호텔 허가를 내주고 있었던 거예요. 저희에겐 아무 언질도 없이 말이죠. ...

어르신들 문화 만들어야 한다, 더 좋게 해야 한다 말 뿐이고, 실은 실버 문화공간,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보는 것 아닌가요. 실버 문화공간이라는 게, 정책 결정에 고려 사항이 아닌 거죠. 여기가 어떤 곳인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시가 아무 생각이 없는 겁니다. 그게 너무 화가 나요. 저희는 시와 건물주가 마음을 바꿔주길 기다립니다. SBS 뉴스 나가고 나서 전화가 많이 왔어요. 어떤 시민분은 너무 안타까워하시면서 돈이라도 좀 보태주면 되겠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모두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저희 극장에서, 하던 대로, ‘청춘극장’을 꾸려나가고 싶은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 서울시는 곳곳에서 비즈니스호텔 허가를 내주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아시아의 관광 요지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호텔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즈니스호텔은 다른 곳에도 지을 수 있지만, 30년 전 들여놓은 영사기가 여전히 탈탈탈 돌아가고 있는 서울의 마지막 단관극장, 기적처럼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실버 문화공간, 흑백영화들이 은막을 수놓고 실버 연예인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이 650석짜리 극장은 사라지면 다시 올 수 없습니다. 호텔이 먼저일까요, 그 호텔을 채울 관광객들에게 들려줄 서울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세월 속에 발효하는 문화공간들이 먼저일까요. 아니, 무엇보다, 서울을 이곳에 사는 시민들이 사랑하는 진짜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게 먼저일까요. '청춘극장'을 밀어내고 들어서는 25층 비즈니스호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요.

이미 호텔 신축허가는 떨어졌고 건물의 주인도 바뀌었습니다. 서대문아트홀은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게 사실입니다. 서울시, 상황을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 서대문아트홀은 그냥 사라지면 되는 건지, 서울시의 다음 결정이 궁금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야기가 있는 서울", "싹 밀어내고 무조건 개발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와 공간들을 살리는 도시정책"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는데요, 서대문아트홀이 지금, 그같은 정책마인드의 실현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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