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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황우여 대표에게 묻습니다.

[취재파일] 황우여 대표에게 묻습니다.
2011년 5월 6일,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오른 황우여 당선자의 첫 소감입니다.

당시 4선의 판사 출신 황우여 의원은 본인의 말처럼 기적처럼 원내대표가 됐습니다. 친이계도 친박계도 아닌 중립이 의원들끼리 투표하는 선거에서 당선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의 친이계는 MB정권과 함께 세가 기울어가고 있었고,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가 서서히 당내에서 입지를 넓히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박계는 당을 '접수'한다는 말을 들을까 몸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중립'의 황우여 의원에게 기회를 만들어 줬습니다. 세가 기운 친이계는 원내대표를 만들 머릿수가 부족했고,  앞으로 나서기엔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한 친박계에게는 좋은 원내대표감이 되었습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취임 초기 '박근혜 대변인이냐' 하는 비난의 화살을 맞았습니다. 원내대표 취임인사차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면서, 강남의 모 호텔에서 기자들과 숨바꼭질 하듯 비공개 면담을 했고, 그 뒤 면담 결과에 대해 기자 브리핑을 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말을 수첩에 메모해 받아 읽어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우여 원내대표의 은근한 朴클릭은 당시만 해도 더 이상의 큰 비난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는 당 운영이 철저히 친이계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고, 그런 친이계의 독주가 4월 총선까지 이어지면 총선에서 필패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황 원내대표의 은근한 친박 행보를 나무라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박근혜 전 대표의 색깔이 당에 배어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선 이후 모든 상황은 변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총선 승리 이후 상황은 변했습니다.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총선 승리를 거머쥔 비박계 주자들의 형편이 좀 나아졌고, 황우여 대표의 '상징성'도 빛을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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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원내대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추대에 결정적 역할을 한 뒤로 공식적으로 박 위원장과 발을 맞춰오면서 당 대표 출마 의지를 다졌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권력 의지라기 보다는 '주어진 것'임을 강조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황우여 대표는 사실상 총선 이후 당의 주류로 우뚝선 친박계가 내세운 당 대표 후보로서 전당대회에 출마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고른 표를 얻어 압도적으로 당 대표에 선출됐습니다. 원내대표 때는 '친박계와 소장파가 손을 잡았다'고 했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그냥 '친박계'로의 당 재편이었습니다.

황우여 당 대표는 더 이상 상징적으로도 중립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내 대선 후보들의 요구사항이 상충할 때는 당 대표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소수자들의 의견에 더욱 귀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소수자들의 의견이 정말 상식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고, 타당하지 않다면 더욱 당당하게 자신의 강단을 보여주어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황우여 당 대표는 이도 저도 아닌 그야말로 '중립'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문수 지사 등 비박주자들과 취임 초 만났을 때는 완전국민경선제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여주고 공개 발언에서는 애매모호한 화법을 즐겨 하다가, 실무차원이라면서 경선관리위를 출범시키고 있습니다. 또 당 대표의 입장 표명을 모두가 원하는 상황에서, 자신은 뒤로 빠지고, 황영철 비서실장에게 기자 간담회를 하도록 했습니다. 의아했습니다.

요즘 황우여 대표의 대처는 비박 주자들의 반발을 일부러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은 아직도 중립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당원들이 자신을 신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이 되도록 만드는 황우여 대표의 고단수 '내공'인지도 모릅니다. 한참 지난 뒤에, '역시 외유내강의 고단수 정치인이다' 라는 평가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제, 계파라는 성(城)에서 나와 화합과 통합의 광장을 만들겠다"고 했던 기적의 그날, 그 마음을 혹시 잊은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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