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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통합택배,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아파트 권력

[취재파일] 통합택배,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아파트 권력
통합택배와 관련한 리포트를 하고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대로 알고 하는 거냐”는 말부터 “기자면 공정하게 뉴스 만들어라”는 꾸짖음까지 참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 워낙 많은 전화를 받은 터라 응대를 하느라 화가 난 적도 있습니다. 제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제 리포트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잠실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선 택배를 두고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밖에 쌓인 택배 물품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는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택배 물품을 찾을 수 있느냐”고 택배 기사를 추궁했고, “내 집에서 편하게 받으려고 택배비를 냈는데 내가 왜 직접 나와 택배 물품을 찾느냐”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급기야 이런 상황에 대한 설명을 공지했다는 동대표와 전혀 들은 바 없다는 주민 간의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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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이른바 ‘통합택배’란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택배회사들이 택배 물품을 아파트까지 가져오면 이 통합택배 업체가 물품을 일괄 수거해 5천 5백여 세대 각 가정에 배달하는 시스템이지요. 입주자대표회의는 택배 차량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막고 엘리베이터 사용료 등을 낮출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이 통합택배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돈이 문제였습니다. 통합택배 업체는 기존 택배회사들에 물품 한 건 당 880원~1200원의 별도 요금을 요구했습니다. 대개가 배달용 차를 하나 가지고 택배회사 대리점에 지입 형태로 소속된 택배 기사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통합 택배가 요구하는 돈을 내면 남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2천 원을 택배비로 받는다고 하면 집하, 물품 분류비와 기름값 등을 빼고 나면 물품 한 건 당 750원~850원이 남는데 통합택배의 요구는 이윤을 넘어선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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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받은 항의전화의 내용은 “쾌적한 아파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통합택배를 요구했지만 통합택배가 택배 회사들에 얼마의 별도 요금을 요구하는지는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전사고 예방, 전기료 절약 등 다양한 이점이 있는데 왜 ‘자신들은 알지도 못하는’ 단점만 부각시켰냐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트의 택배를 관리하는 업체를 도입하면서 그 업체가 무슨 돈으로, 어떻게 운영할지도 모르는 채 의결했다는 말인데, 저의 상식으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항의전화를 걸어온 사람 중에 입주자 대표가 아닌 주민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가 자신 있게 “상식적으로 제 리포트가 맞다”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취재를 하면서 ‘둘만 모이면 권력이 생기고, 이 권력은 늘 타자를 지배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파트의 거대 단지를 권력으로 생각하고 택배기사들을 통제하려 한 행위를 상식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입주자 대표단 측에 '상식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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