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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의 '소탐대실'

눈앞의 1승 위해 에어컨 가동 공약 팽개쳐

[취재파일]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의 '소탐대실'
카타르는 지난 2010년 12월 FIFA 집행위원회에서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결정됐습니다. 당시 한국,미국,호주,일본 등 쟁쟁한 경쟁국들을 제치고 FIFA 집행위원들의 표심을 사로잡을 수 있있던 큰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기장내 에어컨 가동' 공약이었습니다.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서 어떻게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인식을 모든 경기장에 에어컨을 가동하겠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누그러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발한 발상이 실제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곳이 바로 '알 사드 경기장'입니다. 현재 카타르에서 유일하게 냉방시설을 갖추고 있는 축구 경기장으로, 우리 축구대표팀 수비수 이정수 선수가 소속된 카타르 클럽 알 사드의 홈 구장이기도 합니다. 직접 현장에서 본 알 사드 경기장의 에어컨 시설은 너무나도 훌륭했습니다. 그라운드 광고판 뒤편 외벽에 에어컨들이 줄줄이 설치돼 있고, 관중석에도 모든 의자 밑에 바람이 나오는 시설이 있어 선수와 관중 모두 무더위를 잊고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이번에 우리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 원정경기가 열렸습니다. 에어컨을 가동할 경우 우리 선수들의 무더위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에어컨 가동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경기 하루 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알 사드 소속의 이정수는 경기날 에어컨이 가동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가동될 것으로 본다. 농담이지만 만약 가동이 안 되면 나는 20분만 뛰고 쓰러지겠다. 그러면 카타르가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데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에어컨 공약으로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데 성공한 카타르 축구협회를 겨냥한 뼈 있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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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시간 뒤 우리 대표팀이 훈련할 때 알 사드 구장의 에어컨은 그야말로 '빵빵' 터졌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부터 가동되기 시작해 그라운드에 서 있으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면 무더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게다가 자기네 클럽팀 소속인 이정수 선수가 입장하자 전광판에 'LEE, WELCOME TO YOUR HOME(이정수 선수,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이라는 따뜻한 환영의 문구가 흘러나왔습니다.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중동에 축구 출장갈 때마다 '중동의 텃세'가 단골 기사 메뉴였는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카타르가 '텃세'가 아닌 진짜 '실력'으로 승부를 하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결전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을 마쳤습니다. 다음날 실제 경기에서도 에어컨이 가동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경기 당일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전에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전날까지 빵빵 터졌던 에어컨이 모두 꺼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직 해가 지기 전이어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했습니다. 결국 훈련 때 에어컨을 가동한 것은 우리 선수들의 무더위 적응을 방해하고 무더위에 대해 방심하게 하려는 '꼼수'로 드러났습니다. 무더위를 무기 삼아 어떻게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경기를 끌고 가려는 의도였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에어컨을 틀어주지 말든가. 훈련 때는 틀었다 정작 중요한 경기에서는 끄니까 더 괘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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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결과는 우리 대표팀의 4대1 대승. 에어컨보다 더 시원하게 무더위를 날려준 통쾌한 승리였습니다. 남미와 아프리카 출신 귀화선수들이 대부분인 카타르 선수들도 30도가 넘는 더위에 후반에 현저하게 체력이 떨어져 제대로 뛰지 못했습니다.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은 카타르 축구협회의 꼼수는 결국 자충수가 됐습니다.

여기서 카타르의 2022년 월드컵 개최를 언급한 이정수의 뼈있는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카타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정수가 그런 식으로 답변한 것은 카타르가 상대팀을 배려해 에어컨을 틀어줄만큼 '그릇'이 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2022년 월드컵에 초대되는 세계 각국의 대표팀들에게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무더위 걱정을 덜어주겠다던 카타르. 아직 2022년 월드컵까지 한참 남았다고 그리고 눈 앞의 1승에 급급해 이번처럼 손님을 다룬다면 '소탐대실'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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