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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리안 아메리칸이 미국을 이끄는 날은 언제?

권율과 마이크 김, 젊은 한인들이 말하는 꿈

[취재파일] 코리안 아메리칸이 미국을 이끄는 날은 언제?
미국 동부시간으로 지난 7일 오전, 150명이 넘는 한인들이 백악관옆 아이젠하워 건물에 들어섰습니다. 백악관의 고위보좌관들과 각 정부 부처의 주요 당국자들이 한인들을 상대로 주요 국정현안을 설명하고 한인들의 요구와 건의사항을 청취했습니다.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이 시작된 지 109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임을 성사시킨 한인위원회(CKA-Council of Korean American)는 한인들의 파워가 그만큼 세졌다는 의미라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언젠가는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을 이끄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백악관의 브리핑을 듣고 나온 온 CKA 사람들과 만났을 때 저를 가장 반긴 사람은 권율이었습니다. 안부를 묻고 책(나는 매일 진화한다) 발간에 맞춰 서울에 갔다 온 얘기 등을 나눴습니다. 항상 코밑과 입 주위에 ㅁ자형의 수염을 기르고 있어 나이보다(37살) 더 들어 보이지만 언제나 겸손하고 따뜻한 그의 모습은 늘 사람을 기분 좋게 합니다. 악수를 하며 두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는 한국식 예절이 몸에 절로 스며들어서인지 한국말을 잘 못하지만 영락없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도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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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영어로 '율 권'을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연수시절이었습니다. 조지타운대 대학원생의 인생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그를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그 후 특파원으로 부임하고 와서도 서너 차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아름다운 중국 출신의 부인과 예쁜 아기,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인 그의 어머니와도 만났습니다.

권율은 어느 부모라도 자랑할 수 밖에 없는 경력과 학력을 두루 갖췄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미국 변호사입니다. 한국 부모들이 자녀들을 미국에 보낼 때 상상해 보는 그런 학교들을 나온 거죠. 그리고 미국인들 사이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기도 합니다. 다름 아닌 CBS 리얼리티쇼 ‘서바이버’에 출연해 최종 우승자가 됐던 거죠. 최근에는 미국 공영방송 PBS의 미국을 알리는 4부작 다큐멘터리의 진행자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으로 미국 공직에 진출하고 변호사가 되고 돈을 많이 버는 기업가가 되신 분들도 꽤 있지만 권율만큼 이름을 많이 알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권율이 공영방송의 진행자가 됐을 때 그와 공식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 펴낸 책에도 일부 나와 있지만, 어린 시절 미국 백인 아이가 자신의 엉덩이에 오줌을 싼 뒤로 화장실에 가지 못할 정도로 소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대가 되면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고도 했습니다. 유색인종이 미국에서 성장할 때 겪을 수 밖에 없는 성장통이기도 하죠. 그런 과정을 거쳐 권 율은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제 부모님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저를 낳으셨죠. 자라면서 PBS를 보며 영어를 배웠습니다. 제가 커서 이제 그런 방송의 진행자가 된다는 일은 분명 멋진 일입니다. 무엇보다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종합방송사의 진행자가 됐다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한국계 미국인의 위상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을 포함해 아시아 출신 미국인들에 대해서 백인 주류 사회는 일종의 통념, 혹은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할 거다, 그러니 미국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식의. 혹은 2차대전 이후 한국전과 월남전의 여파로 아시아인들을 자신들의 잠재적 위협자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제가 서바이버에 나갔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들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 하겠다는 것이었죠. TV에 나간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굉장한 일입니다. 저 같은 아시안들, 한국계 미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한 스펙을 갖춘 권율은 그래서 한국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언젠가는 한국인들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될 수 있겠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의 미래에 대해서 권율은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로 되돌아가서 일할 수도 있을 겁니다(오바마 선거캠프에서 일하기도 했던 권율은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부국장으로 2년 가까이 일하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제가 정치를 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하든, 확실한 저의 꿈은 어린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일종의 역할 모델이 되고 싶다는 겁니다. 저같은 시행착오를 그들이 겪지 않게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빨리 인식하고 뿌리를 자랑스러워 하도록 하는... 어린 시절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갖고 가면 그걸로 백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됐던 아픔, 자신들을 위해 이민을 감행하고 고생하시는 부모를 위해서라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과 압박감, 이런 것들을 지금 어린 코리안 아메리칸도 그대로 겪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자신이 갖고 있는 힘과 자부심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갓난 아기가 있는 만큼 좋은 아빠가 되는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저의 또 다른  꿈을 말씀드리면...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코리안 아메리칸의 비서실장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정치적 파워가 가장 부족한 집단이 바로 아시안들입니다. 제가 오바마를 지지하고 그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대통령이 된다면 아시안들도 '우리도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솔직히 오바마가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변화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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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과 함께 만났던 또 다른 젊은 코리안 아메리칸 중에 마이크 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이크 김도 CKA의 일원으로 백악관 사람들을 만나고 왔는데요,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 자리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날 저녁 워싱턴의 건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경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만찬장에서 만났습니다. 마이크 김과의 인터뷰도 SBS뉴스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마이크 김에게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미국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한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탈북자들을 도왔던 경력 때문입니다. 재정 전문가로 여유있게 살던 그가 중국 여행길에 우연히 한 탈북 소녀와 만났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4년 넘게 탈북자를 도왔다는 사실이 신선했습니다. 젊은이의 순수하면서도 유치한 열정으로 보기에는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그 일을 묵묵히 해낸 집념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조지타운대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전도양양한 젊은 금융전문가가 탈북자 지원 전문가로 변신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중국에 여행갔을 때 저는 탈북자라는 말도 몰랐고 한국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16살 소녀가 북한을 탈출한 뒤 인신매매범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끝내 1천 달러에 57살 중국인에게 팔려가야 했던 사실이 저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아이 말고도 그런 소녀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도움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카고로 돌아온 뒤 제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가는 편도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돈이 필요해서? 유명해 지고 싶어서? 저는 그냥 사람들을 돕고 싶은 순수한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말고도 다른 누군가를 돕고 싶은 열정 하나로 자원봉사자로 나서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몸 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죠. 2001년 제가 중국에서 그 어린 소녀를 만났을 때 제 나이 또래 미국인들 중에는 누구도 북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저를 움직이게 만든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마이크 김은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도왔던 경험을 담아 책을 펴냈고 그 책으로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며 유명세를 쌓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담은 대작 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해 숱한 위험과 고비를 넘어가며 중국을 지나 태국등 안전지대까지 가는 6천 마일의 대장정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영화.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 가장 필요한 영화제작비 마련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았습니다.

“4년 넘게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도우며 저는 어느새 중국 정부의 요시찰 인물이 돼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탈북자 지원 단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결국 논의 끝에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을 도왔던 시간들은 오히려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처음에 바깥 세상을 전혀 몰랐던 탈북자들이, 의심하고 불안해 하기만 하던 그들이 자신들의 지갑을 털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자신들 같은 또 다른 탈북자들을 도와달라며 제 손에 쥐어줄 때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건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한 인간이 조금씩 상황을 개선시켜 나가면서 시나브로 또 다른 이를 돕게 되는 그 놀라운 전이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합니다.

그런 감동을 존 스튜워트 쇼에 나가서 얘기했더니 헐리우드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 얘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꽤 영향력 있는 제작사였습니다. 영어로 만들어지는 영화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 미국에서 탈북자들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그 건 탈북자들을 도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한국을 소재로 만들어지는 첫 헐리우드 영화가 된다는 점도 저를 움직였습니다.

솔직히 진행 속도가 생각만큼 빠르지 않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보통 3-4년 길게는 5년 넘게도 걸리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습니다.지금은 이 영화에 공감하는 투자자들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제작사에서 같이 뛰고 있죠. 이 영화에는 유명한 한국 배우들도 출연하게 될 겁니다. 안젤리나 졸리같은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와 그녀의 소속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제 꿈이 꿈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주기자님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워싱턴DC 거리를 걸어 조지타운에 있는 극장에 가서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와 한국 배우들이 출연해 탈북자들의 고통스럽고 감동적인 얘기를 다룬 영화를 보는 장면을... 탈북자들의 얘기는 생존과 희망, 꿈, 목숨을 건 탈출과 추격, 용기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는 거죠. 저는 그 날을 생각하며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마이크 김은 그러면서 은연중에 이 영화가 만들어지면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지도와 이해도가 무척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탈북자 하면 부정적인 인상이 들 수도 있지만 그 탈출 과정이 보여주는 감동은 미국인들을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갑자기 권율 얘기를 꺼냈습니다.

“권율이 서바이버에서 우승한 뒤로, 제가 대학생이었는데요, 백인 여학생들이 부쩍 저와 데이트하려고 했었습니다.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바뀐 거죠. 멋진 이미지로 말이죠. 그 전에는 저는 쳐다보지도 않던 백인 아이들이 권율과 같은 한국계 미국인인 저에게 관심을 갖게 됐던 데는 권율의 역할이 컸습니다. 제가 만드는 영화도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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