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교과서에서 한번쯤 봤음직한 이 시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육사의 '절정'(絶頂)이다. 1940년 '문장' 1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암담했던 우리 민족의 현실이 잘 담겨 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광야'와 달리 미래의 '초인'(超人)을 기다리는 희망과 의지조차 없다.
◈ 비박 주자,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지금 새누리당 내 비박계 대선 주자들이 처한 현실이 딱 이 상황이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당권은 친박계가 완전히 장악했고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볼 대선 경선 마저 친박계가 짜준 틀대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경선 규칙 협상의 전례를 들어 경선준비위 구성을 촉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경선관리위원회 출범이다. 경선관리위원회는 당규에 규정된 당 선거관리위원회를 말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관리'만 하는 기구다. 경선의 준거 틀인 경선 규칙은 논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황우여 대표가 말한 것처럼 경선 규칙은 당 지도부, 그러니까 최고위에서 결정할 걸로 보인다. 8(친박계) : 1(비박계)로 구성된 최고위에서 비박계 목소리가 반영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논의를 놓고 벌어진 최고위원회의 풍경이 이를 잘 대변한다.
비박계 주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건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이다. 경선준비위 구성을 통한 경선 규칙 협상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현행 경선 방식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완전국민경선제가 더 좋을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실행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아무리 좋은 방법도 해당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못한다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 마지막 몸부림… 소리 '있는' 아우성
오는 11일 경선관리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는 당 지도부의 결정에 비박계 주자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각 주자별 대리인들은 황우여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완전국민경선제 필요성과 경선준비위 구성의 당위성을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시한도 못박았다. 경선관리위 출범 전인 오는 10일까지다.
배수진도 쳤다. 요구사항을 거부할 경우 경선이 무산되는 파국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집단 경선 불참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친박계 입장에선 가장 곤혹스러울 수 있는 카드요, 비박계에선 유일하게 남은 카드이기도 하다. 아무리 주류라고 해도 추대할 게 아닌 바에야 혼자서 경선을 치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마지막 카드, 경선 불참… 실현 가능성은?
실현 가능성은 어떨까? 물론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몇 가지 대전제를 살펴보면 큰 흐름은 가늠해볼 수 있다.
우선 비박계 주자들이 내세운 대의명분이다. 김문수, 이재오, 정몽준 세 후보 모두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요구하는 이유는 정권재창출이다. 현재의 경선 방식으로는 흥행이 어렵고 표의 확장성이 떨어지니 정권재창출을 위해선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논거다.
하지만 경선 불참은 당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분당이나 대규모 탈당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후보로 나선다해도 정권재창출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비박계가 완전국민경선제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정권재창출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진다.
결국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거부를 이유로 경선에 불참할 경우 그 대의명분으로 내걸었던 정권재창출을 어렵게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애초에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요구가 정권재창출보다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유리한 현행 경선판을 뒤흔들기 위한 정략적 꼼수였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또 양대 정당 구도로 짜인 현재의 대선판에서 경선 불참은 대선 레이스 포기를 의미한다. 제3지대도 이미 안철수 원장이 차고 앉은 상태다. 실리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당내에서 싸워볼 일이지 밖으로 나와서 될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대선 레이스는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또 이번 대선을 끝으로 정계 은퇴에 나설 생각이 아니라면 대선 이후 정국도 고려해야 한다. 유리하든 불리하든 당내 경쟁은 나름의 지분을 챙길 수 있는 기회다. 당은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정치력을 뒷받침해주는 최소한의 울타리다.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경선 불참은 쉽게 내지를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 '힘의 정치', 그 끝은 파탄
다만 예외가 있다. 주류의 태도다.
주류 친박계가 비박계와 그 주자들을 힘으로 몰아 세울 경우 경선 불참이나 나아가 탈당의 명분과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국민은 탄압 받는 쪽에 동정적이게 마련이다. 주류가 당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정치력이다. 당내 다른 요구와 목소리, 혹은 욕심까지도 적절히 조율해낼 수 있어야 한다. 힘으로 해결하는 건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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