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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차세대 전투기, 왜 비싸게 사려 하나

[취재파일] 차세대 전투기, 왜 비싸게 사려 하나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2.06.04 11:21 수정 2012.06.05 07: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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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투기 FX 3차 사업이 이제 시동을 걸었습니다. 정확히 2주 후(6월 18일)면 FX 3차 사업의 참여업체들이 방위사업청에 제안서를 제출합니다. 10월 말 기종을 최종 선정하니까 채 5개월도 안 돼 8~9조 원의 '목돈' 쓸 데를 결정해야 합니다.

일정이 참 촉박한데 엄정하게 평가해서 제대로 선정할 수 있을까요? 왜 이렇게 촉박하게 물건을 사려고 할까요? 치열하게 '밀당'하면서 천천히 사면 안 되는 걸까요? 이런 질문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먼저 왜 기종 선정 시기를 10월 말로 정했는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볼까 합니다. 예를 하나 들면 우리가 전셋집을 구할 때 부동산 중개사에게 "다음 주 월요일 입주해야 한다"고 말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부동산 중개사는 갖고 있는 물건 중에 제일 비싼 걸 내놓을 겁니다. 입주 시기가 딱 정해져 있다는 건 전세집 구하는 사람이 급하다는 건데 부동산 중개사가 싸고 좋은 물건 내놓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FX 3차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정부는 10월 말까지 기종을 최종 선정한다고 공포했습니다. 전투기 제조업체들이 물건 싸게 내놓을까요? 상거래의 상식상 안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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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우리 정부는 굳이 10월 말을 고집할까요? 군은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들이 노후해서 하루 빨리 새 전투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노후 전투기 교체가 그리 시급하다면 차세대 전투기 도입 시기를 2020년까지로 늘려놓아서는 안 되죠. 그것도 한 해에 몇대 들여놓고 다음 해는 쉬고, 그 다음 해에 몇대, 또 한해 쉬고, 그 다음 해에 몇대 식으로 들여올 일이 아닙니다. 차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는 타임 테이블을 놓고 보면 우리 정부는 느긋합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할까요? 일본도 인도도 기종 선정 시기를 못박지 않고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했습니다. 전투기 제조업체를 두고두고 괴롭혔습니다. 그 나라들은 전투기 도입이 한가한 일이어서 날짜를 안 정하고 사업 한 것이 아닐 겁니다. 날짜 못 박으면 자신들이 불리해지니까 그런 겁니다. 시장에서 '갑'은 구매자입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도 '갑'은 우리 정부란 거죠. 우리 정부도 마음대로 하면 됩니다. 전투기 제조업체들을 갖고 놀면서 '단물'만 빨아내면 됩니다.

'밀당'하면서 좋은 구입조건을 만들 수 있는 기회도 많았는데 다 놓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초 스티브 오브라이언 록히드마틴 부사장이 "한국이 록히드마틴 전투기 구매에 동의했다"고 말했다고 미국의 한 지역신문이 보도해 논란 된 일이 있습니다. 록히드마틴은 "기자가 실수했다"고 해명했고, 방사청도 '실수했다는' 기자가 수정한 기사의 일부분을 보고 록히드마틴의 해명을 수용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한두 달쯤 뒤에 방사청은 록히드마틴과 보잉, EADS의 임원을 소환했습니다. 방사청은 그 자리에서 이 유력 3사에게 "공정경쟁하라"고 준엄히 통보했다고 합니다. 군대에서 병사가 잘못했다고 동기들 모두 불러서 '단체 기합' 주는 것도 아니고......  방사청은 록히드마틴을 '조준 타격'했어야 했습니다. 명실공히 FX 3차 사업의 선두주자가 록히드마틴이지만 F-35의 가격, 기술이전, 인도시기 등 조건은 영 아닙니다. 그렇다면 록히드마틴이 명명백백 실수한 일이 있으면 이를 기회로 모질게 공격했어야 했습니다. "가격 한 푼이라도 더 내려라" "기술이전 한 톨이라도 더 해라"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방사청은 '단체기합' 주고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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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마틴을 긴장시킬 수 있는 기회는 또 있었습니다. 5월 말 주한 스페인 대사가 방사청의 '공정경쟁 원칙'을 지지한다며 방사청을 방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방사청은 스페인 대사의 지지 방문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방사청의 공정경쟁 원칙 지지는 감사하지만 유럽국가 대사의 방문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였습니다. 스페인이 유로 파이터를 만드는 EADS의 소속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방사청은 스페인 대사의 방문을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우리 무기체계가 미국 업체 위주로 짜여졌고, FX 3차 사업도 그렇게 되리라고 보는 시각이 절대 우세한 상황에서 유럽 국가에게 힘을 실어주면 미국 업체들은 위축됩니다. 미국 업체를 코너로 몰면 가격 한 푼이라도 더 내려줄 수 있고, 기술 한 톨이라도 더 이전해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공정경쟁'은 사업 참여자에 대한 형식적인 평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싸고 좋은 전투기를 사기 위한 원칙이 돼야 합니다. 초유력 주자 미국을 견제하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공정한 겁니다.

적은 돈이 아닙니다. 8조 3천억 원. 차세대 전투기 도입한 뒤에도 부품값, 훈련비가 또 천문학적 액수입니다. 요령껏 평가하고 협상하면 많이 깎을 수도 있을겁니다. 방사청 직원들, 요즘 외국 출장 많이 다니시던데 다른 나라들 어떻게 비행기 값 깎았는지를 집중적으로 보고 오시기를 권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건데 적은 돈이 아닙니다. 돈 좀 아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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