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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칸의 각별한 한국 사랑

- 칸영화제 취재기2

[취재파일] 칸의 각별한 한국 사랑
칸 영화제 폐막식이 열리던 지난 27일 오후 1시.

조마조마한 마음에 로밍해 간 핸드폰을 꺼내 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기를 수 차례. 2시, 3시가 넘어가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점점 안타까움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영화사 홍보 직원 분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 SBS 류란인데요, 아직 연락이 없는 건가요?”
“네, 기자님. 아마 저희 올해는 아닌가 봐요.”

윽... 아쉬운 마음에 한숨부터 절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두 ‘상수’ 감독의 칸 ‘수상’은 물 건너가는구나. 어쩌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올해 우리 영화들은 ‘경쟁부문 진출’이라는 위대한 성취에 ‘수상’까진 더하지 못했습니다.

칸 영화제가 폐막하는 날 저녁, 그해 진출작들을 대상으로 한 시상식이 열립니다. 이날 영화제 측은 심사위원들의 격론을 통해 결정된 수상자에 한해 오후 1~2시쯤 미리 연락을 줍니다. 폐막식 때 참석해달라는 겁니다. 만약 칸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경우 트로피의 주인공이 없는 상태에서 시상식이 진행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상의 종류를 말해준다거나 직접적으로 상을 주겠노라 언급하는 건 아니고요, 스리슬쩍 안부를 물으며 어디 있는지를 확인하는, 결과적으로는 수상 여부를 알려주는 전화를 줍니다. 제가 폐막식 당일 점심시간 즈음에 영화사 쪽에서 칸의 전화를 받았는지를 살핀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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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가 경쟁부문 영화들에게 수여하는 상의 종류는 모두 7개. 이중 한국 영화의 수상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 칸은 공식적으로는 황금종려상을 제외한 여타 부문에 등위를 정해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심사위원대상을 2등상, 심사위원상을 3등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황금종려상 -1등상에 해당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나온 적 없고요,
심사위원대상 -2등상. 우리나라에선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2004)’로 수상한 바 있죠.
심사위원상-3등상. 역시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가 수상한 적 있습니다.
감독상- ‘임권택’감독이 ‘취화선(2002)’으로 수상한 적 있습니다.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칸의 여인’ 전도연 씨가 ‘밀양(2007)’으로 수상한 적 있습니다.
각본상-‘이창동’ 감독의 ‘시(2010)’가 수상한 적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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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주요부문 수상인 임권택 감독의 2002년작 ‘취화선’에 이어 최근 이창동 감독의 ‘시’까지. 이제 우리 영화는 한 두해 걸러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칸 영화제 단골 국가가 됐습니다. 올해는 특히 ‘이란’의 세계적 명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제외하면 아시아에선 우리나라 단 두 편의 영화가 유일하게 경쟁부문에 진출했습니다. 대단한 기록이죠.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경쟁부문 진출 자체를 엄청난 성취로 보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이 같은 한국영화의 선전은 칸 현지에서 더욱 더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 기간동안 제가 만난 외신 기자들과 평론가들을 하나같이 한국을 ‘One of the most important Cine-Country'로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흐름이 시작된 계기로 ‘칸이 한국영화에 주목하면서’를 꼽았습니다. 칸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한 번 더 느낄 수 있죠. 이들이 세계적이라고 언급하는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임상수 모두 칸에서 수상했거나 경쟁부문에 진출해 본 감독들입니다. 칸이야말로 우리 영화와 감독이 세계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최고의 창구인 셈입니다. 미국의 아카데미가 자국의 상업 영화를 중심으로 경쟁작을 결정하고 시상하는 것에 비하면, 칸 영화제가 유럽과 비 북미권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대하다는 점에서도, 칸은 우리 입장에선 특히나 의미 있는 영화제입니다. 

초기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영화들이 칸에서 주목받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서양인들이 아시아 세계에 막연히 갖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했다는 게 통설입니다. (1993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패왕별희’가 대표적이죠.) 특히나 서양인들이 봤을 때 고전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영화들이 혜택을 본 게 사실이었죠. 하지만 근래 우리나라 진출작들은 비교적 세계 공통적인 소재와 주제로 어필하고 있습니다. 올해 ‘돈의 맛’은 천민자본주의와 이주민을 대하는 현대인들의 이중적 태도를 다뤘고요, ‘다른나라에서’는 타지를 여행하는 프랑스 여성과 이 여성이 조용한 시골마을에 일으킨 파장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영화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 소속된 사람이라도 이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룬 점에서도 우리 영화의 미래는 밝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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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희망적인 이야기만 했나요? 물론, 대전제를 흔들 수도 있습니다. ‘칸에 진출해야만 좋은 영화인가’라든지, ‘칸이 좋은 영화에 대해 기복 없는 공정한 심사를 보여주고 있는가’라든지, ‘과거 특정한 시기에 중국과 일본이 그랬듯, 우리 영화도 단순히 주목받는 시즌을 맞이한 것일 뿐이지 않는가’ 등등등 말입니다. 하지만 성취라고 할 수 있는 성취는 마땅히 함께 즐거워하고 공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속적으로 칸으로 대표되는 세계영화계가 주목하는 영화를 만들어내고 수상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분명 우리 역사 어느 때보다, 그리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가까운 미래에 아직 한 번도 수상해 보지 못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나온다면 바랄 게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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