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 근대미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술가들을 배출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화의 화풍을 이으며 새로운 서구미술을 받아들인 선구자들이 있었습니다.
아픔과 희망을 담고 있는 그들의 작품 세계를 권란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안갯속에 파묻힌 경복궁과 굳게 닫혀있는 광화문.
안중식 작가가 1915년에 완성한 백악춘효는 일제 치하 암울한 시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궁궐 뒤 당당한 백악산의 모습은 내일의 희망도 담고 있습니다.
[서윤희/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 백악춘효. 그러니까 봄 새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빨리 우리 민족에 봄 새벽이 오기를 기대하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쌀알처럼 점점이 찍은 전통 화법과 함께 명암으로 표현한 입체감과 원근감 등 서양화법의 특징도 나타납니다.
1914년 그려진 채용신의 '운낭자상'은 초상화엔 여자를 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깼고, 고희동의 자화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화로 그린 자화상입니다.
이인성 작가는 1930~40년대 서구의 다양한 화법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조선의 향토색'을 확립했습니다.
[박수진/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 한국적인 회화를 만들기 위해서 향토적인 소재 또는 향토적인 정서, 한국적인 감성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일본과 서구의 문화가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 이들 작가들은 새로운 문물 속에서도 우리의 중심을 지키며 한국 미술의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우리 근대 시기 미술 작품들 속에는 암울했던 시대를 살아가던 화가들의 고민과 함께 밝은 세상을 향한 그들의 꿈과 희망도 함께 녹아 있습니다.
(영상취재 : 공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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