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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애견 등록칩(2) 석연찮은 추진 과정, 잇따르는 문제점

[취재파일] 애견 등록칩(2) 석연찮은 추진 과정, 잇따르는 문제점
애견 등록칩 사업은 주민 번호처럼 강아지 고유 번호가 입력된 마이크로 칩을 강아지 몸 속에 넣어서 관리해 유기견을 줄이겠다는 취지의 사업입니다. 반려동물등록제를 담은 동물보호법에 포함된 내용입니다. 이렇게 동물 몸 속에 넣는 마이크로 칩 자체는 생소하긴 하지만 과거부터 몇 차례 해 왔던 사업입니다. 시민단체인 애견협회가 강아지 혈통 관리를 위해 2000년대 초에 영국에서 2000개 정도를 사와서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진돗개, 삽살개, 말 등 일부 동물을 관리하는데 사용돼 왔습니다. 다만 진돗개, 삽살개 등에 사용됐던 칩은 종류가(FDX-A 타입) 현재 사용되고 있는 칩 종류(FDX-B 타입)와 다릅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칩 종류의 큰 틀은 농림부가 200년 8월 시범사업을 실시하면서 만든 겁니다. 당시 이 시범 사업과 관련해 동물보호단체 등도 참여해 논의를 했었는데 그때 참여했던 분의 말로는 회의에서 당시 한참 미국과 영국에서 문제가 됐던 칩 시술 개들의 부작용 문제를 거론했더니 농림부 담당 공무원이 면박을 줬고, 이후 회의 소집 자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제거된 애견 등록칩 시범사업은 성남에서 처음으로 시행됐고 당시에도 지금 드러났던 것과 같은 칩 시술 후 종양 발생 등 부작용도 보고됐지만, 농림부는 역시 이를 무시했습니다.

석연찮은 이 과정은 2010년 검찰수사를 통해 궁금증이 풀리게 됩니다. 애견 등록칩 사업을 기안하고 추진했던 농림부 공무원이 동물 등록칩 관련 업체 사장으로부터 35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내용을 보면 이 공무원은 동물등록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며 업자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고, 뇌물을 강요했으며 돈 받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계좌로 돈을 돌려주고서 현금으로 다시 받기도 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정부 부처에서 이런 사업이 추진되다가 이 정도 문제가 생기면 일단 중단하고 문제점을 살펴봐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절차인데도 애견 등록칩 사업은 계속 속도를 냈고, 지난해 마침내 농림수산식품부 주도의 정부 입법으로 동물보호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동물보호법 개정을 심의했던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의원과 보좌관들을 상대로 취재를 해 보니 이들은 반려등록제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농림부로부터 마이크로 칩에 관한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반려등록제를 하면 과연 어떤 등록을 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일 텐데 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농림부는 이후 지난해 말 개정된 법률의 시행규칙을 만들면서 ‘반려동물 등록을 위해선 의무적으로 마이크로 칩을 사용해야 한다’ 는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는 격언처럼 이 중요한 사항을 이렇게 처리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이크로 칩의 부작용과 실효성에 관해 문제를 제기해 왔던 애견협회 등의 단체가 총리실 규제개혁심의위원회에 문제점을 알렸고, 결국 규제개혁위원회 심의에서 ‘마이크로 칩(체내/체외) 또는 인식표’ 를 등록 수단으로 삼도록 바뀌었습니다. 다만 등록은 수의사를 통해 하도록 해 시범사업에서 잘 나타난 것처럼 대부분 마이크로 칩을 등록 수단으로 사실상 사용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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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재 시범사업이나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마이크로 칩 가운데 상당수가 등록칩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결함을 앉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견 등록칩이 목걸이 형태의 인식표 보다 유기견 방지라는 취지에 더 적합하다고 농림부가 밝히는 이유는 “목걸이는 누군가 개를 버리거나 훔쳤을 경우 그냥 떼어내 버릴 수 있기 때문” 이라는 겁니다. 반면 애견 등록 칩에 저장된 고유정보는 없앨 수 없으니 누군가 나쁜 의도가 있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SBS 취재진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무선주파수 장치(RFID) 관련 기기와 프로그램으로 고유 등록번호가 있는 칩들을 실험해 봤더니 너무 쉽게 고유등록번호를 삭제할 수 있었고, 심지어 고유 번호를 지우고 같은 번호로 여러 개의 등록 칩을 복제할 수도 있었습니다. 혹시 체내에 칩이 들어있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지 강아지 피부보다 두꺼운 제 손바닥과 삼겹살을 놓고 했을 때에도 역시 결과는 같았습니다. 누군가 목걸이를 떼어낼 만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번호를 지우고, 등록번호를 조작해 혈통까지 속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농림부 관계자는 “아주 전문적인 사람만 가능할 것” 이라고 추정했지만, 현실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안에 구멍이 뚫려있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애견 등록 칩을 시술한 강아지가 만약 MRI 촬영을 하게 될 경우 등록정보가 지워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초 CT를 찍었을 때도 등록정보가 삭제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직접 2차 동물병원에서 실험을 해 봤더니 CT의 경우 입력 값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대체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반면 자기장을 이용하는 MRI는 주파수를 이용하는 등록 칩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서 MRI가 등록 칩 정보를 지우거나 칩의 주파수가 MRI에 간섭효과를 일으켜 정확한 진단에 어려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칩 시술을 받은 강아지가 MRI를 받으려면 몸 안에 있는 칩 제거 수술을 먼저 해야 되는 셈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정부 부처 내에서도 파악이 안 돼 있지만, 현재 애견 등록칩 시술 대상으로 농림부가 추정하는 개는 250만 마리입니다. 2010년 설문조사를 통해 추정한 결과입니다. 시장에서는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500~700마리 정도가 대상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농림부가 고시한 애견 칩 가격(시술포함)이 2만원이니까 최소 500억 원~1400억 원 규모의 사업입니다. 그만큼 애견 주인들이 금전적 부담을 해야 됩니다. 일부 업체들은 시장에 벌써부터 “더 좋은 칩” 이라며 5~6만원 수준에 팔기도 합니다.

세금으로 진행되는 시범사업은 전체 대상의 20% 정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책정된 예산이 100억 원은 되는 셈입니다. 물론 실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것보다 낮은 가격에 집행할 가능성은 있지만 세금이 투입되고 국민에게 부담도 주게 되는 사업이라는 뜻입니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이런 사업에 대해 국내외에서 부작용이 잇따라 보고 됐고, 실효성에 결정적 영향을 줄 보안상 문제까지 드러났다면 문제점과 부작용을 최소화 할 방안을 찾기 위해 전면 실태조사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농림부는 어떻게든 “별 일 아니다” 라며 축소하는데 급급합니다. SBS 보도 이후 마지못해 앞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될 때 동물병원에서 시술하기 전 애견 주인에게 등록 칩의 부작용을 설명하고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할 뿐입니다. 과연 등록 칩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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