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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천광청과 보과과…두 중국인의 미국 체류기

[취재파일] 천광청과 보과과…두 중국인의 미국 체류기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작성 2012.05.26 14: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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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천광청과 보과과…두 중국인의 미국 체류기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심각한 외교 대치국면을 감수해가며 신경전을 벌인 끝에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이 뉴욕에 입성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뉴욕대 기숙사에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보금자리를 마련한 천광청은 자신의 멘토이자 미국내 최고의 중국법 전문가인 제롬 코언 교수의 지도 아래 법학공부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해 온 천광청은 이른바 적각율사(赤脚律師), 우리말로 하면 ‘맨발의 변호사’입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중국의 사법시험을 통과한 정식 법조인이 아닌 기초적인 법률지식을 지닌 채 농민을 위해 일하는 기층 법률인을 뜻합니다. 시각장애인인 천광청은 난징에 있는 중의학대학을 졸업한 뒤 뜻한 바 있어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했지만 정식으로 법학 교육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미국 체류기간동안 뉴욕대 로스쿨에서 중국법과 미국법, 국제법 등을 공부고 싶어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초 1년 정도 유학한 뒤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었지만 천광청이 자신의 바람대로 1년 뒤 귀국할 수 있을 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처자식들은 함께 미국으로 올 수 있었지만 자신의 가택연금 탈출과 미 대사관 진입을 도왔던 다른 가족들과 후원자들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상당한 고초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천광청의 신변에도 위협이 예상되는 바, 미 연방수사국 FBI가 천광청 가족을 24시간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야 공식적으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관변 단체나 언론매체들은 천광청을 고국을 배신하고 혼자 도망간 매국노 취급하면서 천에게 중국에 돌아오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나가는 건 네 마음대로였지만 돌아오는 건 네 마음대로 안 된다. 네가 그토록 원했던 미국에 살면서 평생 잘못을 반성해라’ 뭐 이런 식입니다. 그렇다고 지인들이 사실상 볼모로 잡혀 있는 처지에 천광청이 중국 정부를 상대로 비방을 하거나 미국 내에서 반 정부 활동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코언 교수도 “수업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면서 “천광청은 중국에 돌아가길 원하고 있고 또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천광청의 미국 체류기간은 예상보다 많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 돌아가고 싶어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비자발적 망명자’가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천광청의 신병처리를 놓고 줄다리기를 했던 미국과 중국이 양측 모두의 체면을 살려 준 ‘유학’이라는 묘안을 내며 그 뒤에 어떤 밀약이 있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애초에 천광청의 앞길은 이렇게 정해졌었는지도 모릅니다. ‘인권’ 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한사코 감싸 쥐기를 거부하는 미중 양국의 전략적인 타협 혹은 묵인 속에 천광청의 운명이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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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청 사건으로 한창 떠들썩하던 그 때, 또 한 사람의 중국인도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모든 것을 다 갖춘 중국 최고의 '엄친아' 보과과(薄瓜瓜)입니다. 중국의 혁명 원로 ‘八老’의 한 명인 보이보(薄一波)의 손자이자 중국 최고 지도부인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하던 보시라이(薄熙來, 위 사진) 전 충칭시 당서기의 아들로 영국 옥스포드 유학을 거쳐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재학 중이던 보과과에게 올 봄은 한 겨울보다 더 추웠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아버지 보시라이가 지난 3월 실각한 후 당 기율 위반 혐의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고, 중국판 힐러리로 불리던 야심만만한 변호사, 어머니 구카이라이(谷開來)는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면서 귀공자 보과과는 졸지에 딱한 처지가 됐습니다.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보과과를 페라리를 몰고 다니며 파티장이나 출입하는 생각없는 오렌지로 묘사했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사교성도 뛰어나 또래 여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보과과는 미국 망명을 고민하는 신세가 됐고 교제 중이던 천샤오단(陳曉丹)과도 결별설이 나돌았습니다. 천샤오단은 보과과의 할아버지인 보이보와 마찬가지로 ‘八老’ 가운데 한명인 천윈(陳雲)의 손녀이자 중국국가개발은행장인 천위안의 딸로, 두 혁명 원로 자제들의 결합으로 눈길을 모았었습니다.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통을 겪고 있을 보과과가 어제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부모님도 ‘꽃 순이’도 없었습니다. 때맞춰 싱가포르 언론은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해 보과과가 중국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보겔 교수는 “보과과가 부모의 상황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보과과는 원래 학업을 마친 뒤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현재로서는 중국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으며 미국에 머무르면서 법률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보과과가 '자발적 망명자'임을 선언한 겁니다. 옥스포드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케네디 스쿨에서 정책학을 공부한 보과과가 왜 법률 공부를 선택했는지, 어느 학교로 진학할 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보과과는아마도 어머니를 따라 법률가가 되고 싶었던 건 지도 모릅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최대의 권력투쟁으로 불리는 이번 보시라이 사태를 중국 당국이 어떻게 처리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경우에 따라 보과과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뜻하지 않게 미국에서 법률 공부를 하게 된 두 중국인.
돌아갈 곳을, 또 돌아갈 때를 기약하기 어려운 두 중국인의 미국 체류기가 그들의 사뭇 달랐던 삶의 궤적만큼이나 판이하게 쓰여질 지 찬찬히 지켤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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